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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따뜻한 믿음과 이해를 담아내다 <증인>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당신은 고민할 것이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영화 <증인>은 살인사건을 통해 만난 변호사와 자폐 소녀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한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정의를 위해 싸웠으나 아버지의 빚과 생계 문제로 대형 로펌에 들어간 순호(정우성 분)는 현실을 위해 속물이 되고자 마음먹는다. 그는 사람을 생각하는 따스한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그 신념이 현실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는 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가정부가 집주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 로펌은 이 사건에서 가정부를 무료 변론 하면 이미지도 높이고 이목도 끌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이 사건이 다른 사건에 비해 특별한 이유는 사건의 목격자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검사 측은 소녀의 진술을 바탕으로 가정부의 살인을 주장한다. 순호는 소녀가 재판장에 나타나 진술을 하면 진술의 신빙성을 잃을 것이라 계산, 소녀를 만나기로 결정한다.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는 남들보다 월등한 지적 능력과 신체적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자폐 증상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순호는 지우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지우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순호는 기본적으로 마음에 따스함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빚과 타협 없는 재판에 남는 건 패배뿐이라는 현실 인식에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며 대형로펌으로 향한다. 그의 이 따스함은 지우를 만나면서 다시 피어나게 된다.

자폐증 환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보고 듣고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우는 순수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않는다.

이는 순호가 사는 세상과 반대에 위치한다. 순호는 법정에서 수많은 거짓과 마주한다. 하지만 변호인의 비밀을 보장해야 된다는 규율에 의해 어떠한 거짓과 변명도 묵인하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교묘한 거짓과 술수를 반복한다.
    



지우는 순호에게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라고 묻는다. 이 말에 순호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피고인을 변호해야 되는 변호사이고 지우는 검사 측 증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우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순호의 모습이 있다. 순호의 아버지는 보증 때문에 많은 빚을 졌다. 또 순호는 이기지 못할 재판에 믿음을 주며 헛된 희망을 키우는 민변 시절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상처와 고통만 줄 뿐이라 여긴다.
 
돈과 성공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이를 위해 사람을 도구로만 보면 자신의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고 자신을 도구로 보는 사람들만 존재하게 된다.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는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이 세계는 남들과 비슷할 수도 어쩌면 아예 다를 수도 있다. 지우의 세계는 남들과 다르다. 그러기에 더 이해하기 어렵고 다가가기 쉽지 않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바라보고 배척하고 무시한다면 세상은 획일적으로 변해간다. 획일화된 세상에 남는 건 같은 가치, 같은 욕심, 같은 소통이다. 돈이 우선이 되며 사회적인 성공이 행복의 기준이 되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에 의해 비정상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 여겨진다. 반면 다른 것을 인정하는 건 소통과 화합을 말하며 인간 사이의 이해와 배려에서 오는 사랑과 행복을 존중하는 걸 의미한다.



순호는 지우와 친하게 지내는 검사 희중(이규형 분)에게 그 비법을 물어본다. 이에 희중은 말한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상대하려면 걸음걸이를 맞춰주듯이, 자폐가 있는 사람을 대할 땐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야 된다"고 말이다.

그 한 걸음이 소통의 시작이고 다른 걸 바라보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증인>이 법정에서 순호와 지우를 만나게 한 이유는 돈이 죄를 면해주는 시대적인 배경에 있다.

변호사는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피고인은 무죄라는 가정 하에 최선의 재판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의뢰인의 죄의 유무보다는 어떻게 하면 적은 형량을 받을지, 어떻게 하면 본질을 흐리고 무죄를 선고 받을지에 대해 고심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악마 같은 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변호해 낮은 형량이나 무죄를 이끌어내는 변호사들은 세간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 '변호'가 누군가를 짓밟는 일이 돼선 안 된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순호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지우를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우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한 순간 그의 마음 속에서 잊힌 줄만 알았던 인간에 대한 따스한 '믿음'이 피어난다. <증인>은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다. 좋은 사람에 대한 이 작품만의 생각과 정의, 그리고 이를 통한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이 관객들의 마음에 깊이 남을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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