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인전>
최근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MCU'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아니라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마동석의 영화가 여러 편 개봉하면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행>과 <범죄도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동석은 우람한 덩치에 강렬한 외모, 이와 상반된 귀여운 매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마동석을 주연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줄을 지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액션 또는 마동석의 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들이었다. <챔피언>, <동네 사람들>, <성난 황소> 등의 작품들은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비평적인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건 물론 반복되는 마동석의 캐릭터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악인전>은 이런 MCU(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위기를 한 번에 날려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악당 대 악당'의 대결을 다룬 기존의 작품들이 지니는 문제점을 영리하게 피해갔다. 영화 <악인전>은 칸영화제 초청을 받은 건 물론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되면서 화제가 됐다. 세 명의 악당이 등장하는 이 작품의 중심내용은 익숙함과 색다면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극 중 지역 일대를 장악한 조직 보스 장동수(마동석 분)는 연쇄살인범의 습격을 받지만 목숨을 건진다. 그런 장동수 앞에 강력반 '미친개' 정태석(김무열 분)이 나타난다. 맡은 사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려는 정태석은 범인 K를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장동수는 조직원들을 이용해 K를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정태석에게는 K의 얼굴을 본 장동수가 꼭 필요한 상황이고 장동수는 습격 사건 이후 자신에 대한 명성에 흠집이 나서 사업이 위기를 겪자 정태석의 손을 잡아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고자 한다.
영화는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불사하는 폭력 형사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조직 보스, 이유도 감정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K의 대결을 다뤘다. 이처럼 <악인전>은 세 '악당'의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며 지옥 같은 대결을 성사시킨다.
작품은 도입부에서 세 악인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K의 경우 무차별로 접촉사고를 낸 뒤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장면을 통해 그의 잔혹함을 부각시킨다.
정태석은 출동 중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장동수가 운영하는 불법 오락실을 찾아가 조직원들을 폭행하고 체포한 조직원에게 오토바이 운전을 시킨다. 장동수가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때리는 장면과 팔을 가득 채운 문신은 그의 강한 파워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이보다 더 강렬한 지점은 샌드백을 벗기니 그 안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들어있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이후 장동석이 보여주는 코믹하거나 귀여운 면모 속에서도 악랄함과 잔혹함이 숨어있음을 확실하게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영화는 세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사투로 이끈다. 조직 보스와 손을 잡으며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형사 정태석, 한 번의 습격 때문에 부와 명성을 모두 잃게 생긴 조직폭력배 두목 장동수, '미친개' 형사와 조직 보스의 추격을 받게 된 연쇄살인범 K는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악랄해지고 독해진다. 이런 세 사람의 감정 심리는 강렬한 액션과 분노의 폭발, 피가 낭자한 살인을 통해 스크린을 강렬하게 뒤덮는다.
이런 극한의 감정 속에서 극의 강약을 조절하는 힘은 '마동석 활용법'에 있다 볼 수 있다. 마동석은 강인하고 잔혹한 조직 보스의 면모와 동시에 팬들이 사랑하는 '마블리'의 면모를 함께 선보인다. 살인과 폭력이 반복되는 분위기에 축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한 유머로 살려낸다. 위압적이고 두려운 면모를 계속 보여주기 보다는 귀엽고 웃기지만 잔혹하고 살벌한 지점들을 잡아내 효율적으로 표현해낸다.
여기에 액션 장면에서 강력한 무게감을 통해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특히 장태석 역의 김무열과 함께 펼치는 다수의 적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마동석이 한국 영화계에서 특별한 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악인전>은 '진짜' 나쁜 놈들의 지독한 대결을 그려내기 위해 캐릭터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설픈 선한 역할로의 전환이나 어두운 과거를 통한 감정이입으로 캐릭터의 밸런스를 붕괴시키지 않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이를 위해 각자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이 욕망을 따라 폭주기관차처럼 달려 나가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2019년 다시 시작된 'MCU'의 첫 번째 작품 <악인전>은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 또 그가 한국영화계에서 지니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범죄영화가 지닌 잔혹함과 스릴감, 여기에 지독한 악인 세 사람이 펼치는 추격전, 포인트가 되는 강렬한 액션 장면은 관객들에게 어두운 매력이 지닌 쾌감을 보여주는 '지옥행 특급열차'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