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프릴의 딸>, <헝그리 하트>, <더 차일드>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게. 너희는 너희 인생을 살아가렴."
2005년, 내게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을 처음 알려준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의 이 잔인한 대사는 큰 충격을 주었다.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에게 어머니는 자기 인생을 살아갈 테니 너희는 너희 인생을 살아가라 말한다. 아키라 밑에 남겨진 세 명의 동생과 홀로 동생들을 책임져야 되는 아키라. 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손을 벌리지 않는 아키라의 모습이었다.
아키라는 동생들과 함께 살아간다. 자신들을 원하지 않은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마저 자신들을 버린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에 그 어떤 어른도 믿지 못한다. 모든 부모가 착실한 책임감과 믿음직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부모에게도 욕망이 있고 때론 이 욕망이 자식을 향한 애정보다 더 클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욕망을 너무도 잔혹하게 그려낸다.
"엄마가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갈 거야"라는 강렬한 문구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 <에이프릴의 딸>은 여성이 지닌 모성과 욕망 사이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언니 클라라와 함께 사는 17살 발레리아는 호텔 주인의 아들 마테오와 사랑을 나누다 덜컥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자매는 혼날 것을 각오하고 경제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어머니 에이프릴을 부르지만 예상 외로 에이프릴은 발레리아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마테오가 집에서 쫓겨나면서 함께 지내게 된 다섯 사람. 발레리아는 아이를 돌보는데 점점 지쳐가고 그 책임을 에이프릴에게 미루기 시작한다. 에이프릴은 자신이 버는 돈으로도 생계를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마테오의 부모와 상의,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이에 발레리아는 화를 내고 에이프릴은 집에서 나가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클라라와 발레리아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들이 사는 집이 부동산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는 에이프릴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놀랍게도 에이프릴은 마테오를 유혹하고 그와 함께 아이를 키우게 된다. 에이프릴은 부족한 돈을 집을 팔아 충족시키고자 했던 것. 이 순간 에이프릴의 모성은 상실되게 된다. 허나 이 모성의 상실은 에이프릴에게만 있지 않다. 아이를 귀찮게 여기고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려던 발레리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에이프릴과 발레리아는 지나치게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고 이는 서로의 자식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에이프릴의 딸>이 욕망과 애정 사이에서 '욕망'에 깊은 초점을 두었다면 <헝그리 하트>는 그 사이의 중심을 잡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뉴욕의 한 차이나 레스토랑 화장실에 우연히 함께 갇힌 주드와 미나는 서로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결국 결혼까지 골인한 두 사람.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부부 앞에 임신과 함께 예기치 못한 문제가 펼쳐지게 된다.
그 문제는 미나가 비건, 엄격한 채식주의자라는 점이다. 미나는 이 채식주의를 아기에게도 강요하려 한다. 문제는 아기가 채식만 해서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고 심각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주드는 또래보다 훨씬 작은 아기를 걱정하고 미나를 설득하지만 미나는 요지부동이다. 주드는 미나 몰래 아기에게 고기를 먹이고 주드의 어머니가 미나를 설득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미나는 우리 가족끼리 행복하자며 주드의 어머니가 가정에 끼어드는 걸 막고자 한다. 또 주드에게 아기에게 고기 준 사실을 알아냈다고 말하는 섬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미나의 욕망 이면에 담긴 모성 역시 이 작품은 주목한다. 미나는 아기를 낳기 전 점집을 찾아가 행복한 대화를 나누고, 제왕절개 수술 후 성치 않은 몸으로 아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도 한다. 영화는 미나가 스스로 살아온 길이기에 아기에게도 해주고 싶은 고집이 결국 슬픈 애정 때문임을 보여준다.
<에이프릴의 딸>과 <헝그리 하트>가 욕망에 중점을 둔 결말을 택하는 반면 <더 차일드>는 애정에 방향을 둔 희망찬 결말을 이야기 한다. 20살 브루노와 18살 소냐는 소냐의 연금과 브루노와 그 패거리가 저지르는 도둑질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빈곤한 나날 속에서도 서로가 있기에 행복했던 이들 앞에 새로운 운명이 펼쳐진다. 소냐가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기에게 사랑과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브루노는 아기에게 어떠한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 훔쳐온 물건을 팔아 돈을 벌던 브루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기를 팔아 버린다. 그저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기쁜 브루노와 달리 소냐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제야 브루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그저 둘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브루노는 사랑하는 소냐를 위해 아기를 되찾아 오기로 결심한다.
철없는 10대 남녀가 아기를 갖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사회 속에서 '윤리'의 문제에 주목해 온 다르덴 형제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윤리는 법과는 다르다. 법은 그 구속력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시킨다. 반면 윤리는 욕망에 의해 쉽게 파괴되고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브루노에게 돈은 생존의 문제인 반면 아기의 생명은 윤리의 문제이다. 그에게는 돈이라는 욕망이 아기에 대한 애정보다 더 컸던 것이다.
이는 브루노가 아직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철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을 했던 브루노는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소냐의 보물마저 도둑질해 버린다. 다만 이 작품은 서로를 향한 애정을 통해 이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욕망은 순간이지만 애정은 영원하다. 서로를 향한 친밀감과 따스함은 이 부부가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성장은 나이와 상관이 없고 욕망은 역할에 따라 제한되지 않는다. 때론 미성숙한 부모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부모의 욕망이 애정을 짓누르고 발현되기도 한다. <에이프릴의 딸>과 <헝그리 하트> <더 차일드>는 미성숙한 부모의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도 가족, 그리고 자식을 향한 애정이 있음을, 그 애정이 욕망을 절단시키고 서로를 향한 끈끈한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