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
인간은 동물 중 유년기간이 가장 길다. 사회가 정한 성인의 기준인 만 19세가 될 때까지 20년 가까운 기간을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인 동물이 된 이유는 이런 오랜 유년기간에 있다. 누구나 가정이라는 버팀목이 필요하고, 보호와 사랑을 줄 울타리를 원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 울타리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거부로 자수성가한 J.D. 밴스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예일 대학에 다니는 현재를 교차로 진행한다. 제목에 들어가는 힐빌리(hillbilly)는 애팔래치아 산맥에 사는 가난한 백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밴스는 무력함과 패배주의가 만연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취업과 관련된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출신을 밝힌 밴스는 이유 없는 조롱을 당한다. 그만큼 힐빌리 지역은 ‘열심히 살지 않고 가난에 찌든’ 백인들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취업 면접을 앞둔 밴스는 중요한 순간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연락을 받는다. 어머니 베브가 약물중독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병상 부족을 이유로 베브를 내보내려 하고, 베브는 요양이 필요하다며 퇴원을 거부한다. 밴스가 마주한 베브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다. 베브는 소위 말하는 철이 없는 엄마다. 어린 시절 갑작스런 임신으로 홀로 밴스를 낳은 베브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약물에 손을 댔다.
망가진 어머니의 폭력과 폭언은 자식들을 향했다.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아픔을 먼저 배운 것이다. 밴스와 누나 린지의 기억 속에는 슬픔만 가득하다. 밴스가 베브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웃집으로 도망치고, 이웃집이 베브를 경찰에 신고한 에피소드는 그들 모자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 가정이 망가지지 않은 이유는 할머니의 역할이 컸다.
할머니의 메시지는 여느 가족영화가 주는 신파와 거리가 있다. 보통의 가족영화는 ‘그래도 가족이니까, 같은 핏줄이니까’라는 이유로 애증이 용서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이 영화가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은 단단한 매듭을 묶고자 하는 의지와 결의다. 할머니 역시 ‘힐빌리’ 지역에서 자란 만큼 불우한 과거를 보냈다.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낳았고, 남편의 잦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할머니는 베브 자매를 보호하기 위해 남편과 맞서 싸워야 했다. 심지어 남편의 몸에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 베브는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한 그녀의 마음에 생긴 건 짙은 패배감이다. 자신 역시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약물에 중독된다. 할머니는 베브가 엄마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장의 역할을 자처하는 건 할머니다. 할머니는 베브의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난다. 걸걸한 입담과 빠른 상황판단으로 밴스와 린지가 상처받지 않게 만들고자 한다. 크지 않은 체구에 굽은 몸을 지닌 할머니가 최전선에 서서 싸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은 이후 남겨질 딸과 손주들을 걱정한다.
그래서 밴스가 엇나가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할머니는 어린 밴스에게 ‘네가 이 가정을 지키는 울타리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한테 사랑받은 적 없는 아이에게 네 엄마를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말하는 건 큰 부담이자 강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정이란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또 다른 베브가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배분은 공정하지 않다. 누군가 많은 부를 누린다면 누구는 가난해져야 한다. 허나 패배의식과 무력감은 다른 이야기다. 지갑이 가난하단 이유로 인간마저 가난해져 버린다면 안정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현재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아동소외와 학대, 이로 인해 정서적인 불안과 트라우마를 겪으며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이자 유년시절을 책임지는 일종의 교육기관이자 양육기관이다. 패배의식과 무력감으로 무너지는 가정이 많을수록 사회의 어두운 이면은 짙어진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인 미국이 지닌 빈부격차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런 정서적인 측면에서 비롯된다. 할머니는 자신이 구멍 낸 가정의 울타리를 고치기 위해 밴스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이 간절함을 알게 된 아들은 차마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한다.
밴스가 지닌 감정은 애증이다. 증오는 애정이 있어야 피어난다. 사랑한 만큼 상대를 더 미워하게 된다. 베브에게도 밴스를 향한 애증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아들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그 감정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고,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약물에 손을 대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고향에 내려와 고장 난 울타리를 고친다.
론 하워드 감독은 한 개인이 이룬 눈부신 인생역전에서 그 찬란한 꽃이 아닌 단단하게 내리박은 뿌리를 바라본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기 위해 완벽한 보금자리를 찾아다니듯,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택했듯, 울타리는 한 개인의 성장은 물론 가족이란 구성원을 보호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왜 내가 울타리를 수리해야 하는지 불만을 지니지 말자.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오랜 시간 묵묵히 울타리를 지켜왔으니.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