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랜 꿈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던 작품”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이자 1961년 영화화가 이뤄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 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2살 때부터 단편영화를 만든 70대의 노감독은 그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뮤지컬 장르에 도전하며 또 한 번 성장을 이뤄냈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스필버그는 뮤지컬에도 능통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원작 뮤지컬은 제롬 로빈슨(안무와 연출), 아서 로렌츠(극작), 레너드 번스타인(작곡), 스티븐 손드하임(작사)까지 뮤지컬의 전설로 불리는 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작한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61년 영화 역시 작품상을 비롯해 오스카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 저력을 인정받았다. 때문에 스티븐 스필버그 입장에서 이 작품을 택한 건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와 스크린에서 모두 인정받은 원작을 굳이 현대에 다시 가져왔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높은 경외심을 지닌 스티븐 스필버그는 각색 대신에 원작을 다시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이야기와 주제의식은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뒷골목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 재개발이 한창인 미국 맨해튼을 배경으로 라이벌 관계의 두 갱단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을 다룬다.
폴란드 이민자들로 구성된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이룬 샤크파는 매일 다툼을 반복한다. 한때 제트파의 일원이었지만 이제는 새 삶을 살고자 하는 토니는 무도회에 참석했다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의 동생 마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라이벌 갱단 출신에 속해 있다는 점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 서게 된다.
고전에 기안한 원작의 스토리가 지닌 힘도 있겠지만 따로 각색이 필요 없을 만큼 현대의 트렌드에 맞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인종갈등은 물론 마리아와 베르나르드의 여자친구 아니타가 주체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여성서사의 측면도 지니고 있다.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토니 쿠슈너가 각색을 맡으며 과거와 현재 모두를 담아낼 수 있는 캐릭터를 고안해냈다.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 녹음을, 토니상 수상자인 테소리가 보컬 감독을, <시카고>, <드림걸즈>의 맷 설리반이 총괄 음악 프로듀서를 맡으며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메인 주제곡 ‘Balcony Scene (Tonight)’을 비롯해 ‘Maria’, ‘America’, ‘Somewhere’ 등 큰 사랑을 받은 OST를 최고의 수준으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이를 위해 배우 캐스팅에만 1년을 거쳤고 토니 역의 안셀 엘고트와 마리아 역의 신예 레이첼 지글러를 발탁했다.
안셀 엘고트와 레이첼 지글러가 예상했던 대로 기대감을 충족시켜준다면, 아니타 역의 아리아나 데보스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아니타의 캐릭터가 지닌 정열적인 에너지는 청춘 갱단의 다툼과 복수의 에너지가 느껴지게 만든다. 여기에 50명에 달하는 젊은 배우들이 펼치는 뮤지컬 무대가 지닌 역동성과 청춘의 불안과 낭만이 극 전체를 아우른다. 노장의 여전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 오랜 꿈이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지는 미지수다. 최근 <인 더 하이츠>, <디어 에반 핸슨> 등 뮤지컬 장르의 작품들은 흥행실패를 경험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환호하지만 아닌 관객에게는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비싼 뮤지컬을 높은 수준의 세트와 안무, 음악을 통해 극장에서 영화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 관객들이 열광했지만 공연실황이 많아진 현재 그 이점은 사라졌다.
높은 수준의 연출력과 훌륭한 원작을 담아냈다는 점은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내는 요인이지만, 원작을 본 이들이라면 굳이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영화에 얼마나 즐거움을 느낄지 모르겠다. 더구나 뮤지컬 장르는 다른 장르물에 비해 리메이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지 않다. 팬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스토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브로드웨이 공연작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뮤지컬 팬들이 실망감을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흥행에서의 불안요소는 있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느꼈을 황홀함에 공감할 것이라 본다. 젊은 청춘들의 비극적인 로맨스는 가슴을 울리며, 이들의 춤과 노래가 주는 메시지에는 낭만이 있다. 여기에 ‘Balcony Scene (Tonight)’ 등 OST가 지닌 울림은 시대를 뛰어넘는 힘을 통해 3대에 걸친 마력을 발산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