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PC주의와 뮬란의 오류

영화 <뮬란>

최근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PC다. PC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한다. PC주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인권이 고려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된 건 다인종국가가 살아가는 미국의 상황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대통령이 된 것과 미투 사건이 터지면서 흑인 인권과 페미니즘 등 다양성의 가치가 PC주의로 연결됐다.



이 PC주의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무너뜨리는 쾌거를 이룬다. 여태까지 훌륭한 연기나 작품을 선보여 온 흑인 영화인들을 무시했던 아카데미는 제88회 시상식 당시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했고, 89회 ‘문라이트’, 90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91회 ‘그린 북’ 등 다양성의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작품상으로 택하며 그 가치를 수용했다. ‘문라이트’는 흑인의 삶과 동성애, ‘그린 북’은 이탈리아계 이민자와 흑인 연주자의 우정을 담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농아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비롯해 흑인과 동성애자 등 폭넓게 다양성의 가치를 담아냈다. 이런 아카데미의 변화가 있었기에 제92회에서는 동양권 영화로는 최초로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런 PC주의에 가장 충실한 제작사로는 디즈니를 뽑을 수 있다. 디즈니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와 자신들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PC주의의 가치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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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알라딘’에서는 공주 자스민의 캐릭터성을 강화시켰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로봇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로봇과 인간 사이의 우정을 보여줬고, 흑인 주인공 핀과 중국인 캐릭터 로즈 티코를 추가하며 다양성을 더했다. 히어로 시리즈 ‘어벤져스’의 마지막 편에서는 여성 영웅들이 한데 뭉치는 장면을 통해 페미니즘적인 가치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디즈니의 선택은 세계적인 환호를 받았다. 그 절정은 ‘블랙 팬서’였다. 이 마블의 흑인 영웅은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언급될 만큼 화제였다.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과, 여성 전사들이 등장한다는 점 등 인종문제와 페미니즘 이슈를 적절하게 다루며 영화가 추구하는 다양성과 PC주의에 있어 디즈니가 한 발짝 앞서 있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디즈니의 PC주의는 ‘역차별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북유럽 계열의 미녀 배우들을 배제하고 백인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흑인으로 바꾸는 등 피부색과 인종을 이유로 캐스팅에 잡음을 일으켰다. 특히 디즈니의 대표적인 프린세스 캐릭터인 ‘인어 공주’의 에리얼을 실사화에서는 흑인 배우로 캐스팅하며 논란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래도 할 말은 있었다. PC주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그들의 입장은 적어도 일관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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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란이 남긴 오점



‘뮬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 중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영화다. 최근 디즈니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 그 중에서도 페미니즘에 가장 걸맞는 진취적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모아나’ 이전 포카혼타스와 함께 유색인종 프린세스 캐릭터인 뮬란은 중국 전승 문예 ‘목란사’에 등장하는 화목란을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다. 화목란은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정체를 숨기고 전장에 나가 무공을 세운 인물이다.



디즈니 프린세스가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대다수인 반면 뮬란은 남성의 세계에 스스로 뛰어들어 운명을 개척했단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뮬란’은 주목을 받았고, 루시 리우 등 액션으로 유명한 동양계 할리우드 배우들이 뮬란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 그리고 실사화 된 뮬란은 중국 무협영화에 맞춘 표현과 디즈니의 다양성의 가치를 강화했다.



당시 ‘인어공주’의 흑인 캐스팅 논란과 비슷한 시기에서 ‘뮬란’ 역으로 중국의 미녀배우 유역비가 캐스팅 된 것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다. 원작의 마스코트였던 용과 귀뚜라미를 빼고 뮤지컬적인 요소를 제거한 다음 무협의 장르적 구성을 택한 게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했단 이유다. 배우 캐스팅 역시 공리, 견자단, 이연걸 등 중화권 내에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함께 G2로 불릴 만큼 거대한 경제시장을 형성했다. 할리우드 영화 역시 중국자본의 영향을 받을 정도다. 몇몇 작품의 경우 중국 개봉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한다. 중국의 위력을 생각했을 때 이에 맞춰 흥행을 고려한 작품을 만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더구나 작품의 배경도 중국이며, 원작 역시 중국에서 가져왔다.




문제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터졌다. 뮬란 역의 주연배우 유역비가 홍콩 시위에서 경찰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리며 전 세계적으로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홍콩 시위는 홍콩과 중국 사이의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발하며 일어난 시위다. 중국 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거나 정권의 부패나 비리를 폭로한 인사들이 홍콩으로 도망칠 경우 이 법안을 통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일으켰고, 이에 정권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유역비는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경찰을 지지하는 SNS 글을 올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는 디즈니가 추구해 온 PC주의의 일환이다. 유역비의 발언은 이에 어긋나지만, 개인의 일탈에 머문다. 디즈니 입장에서도 글로벌 흥행을 노리는 영화의 주연배우가 저런 글을 올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그런데 중요한 건 다음이다. ‘뮬란’은 일부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이곳의 정부보안국에게 촬영에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어떤 지역인지 안다면 이 디즈니의 행동이 그들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신장지구 위구르족은 교화 수용소에 약 100만 명 이상이 구금되어 있으며, 이들에 대한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치안 개선 목적을 이유로 이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유는 이들이 무슬림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2017년 중국은 이곳의 800년 된 모스크를 폐쇄했고 많은 유산을 파괴했다. 그리고 위구르 언어를 학교에서 금지시켰다. 이렇게 중국은 민족 통일을 위해 소수민족에 탄압을 가하며, 아무런 잘못 없는 이들을 감금하고 고문해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낼 때, 디즈니는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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