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저 너머의 재미와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

04.jpg


자사 애니메이션의 스핀오프를 단편으로 선보였던 디즈니 픽사는 <버즈 라이트이어>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단편이 아닌 장편에 도전하면서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버즈를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극중 장난감 버즈의 모델이 등장하는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주인공은 버즈지만 장난감이 아닌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로 색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새로운 무대에서도 관객들이 추억 속 버즈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끈다. 극의 전개는 버즈의 캐릭터 성향을 바탕으로 한다. 우주전사에 대한 자부심이 큰 버즈는 완벽주의 성향과 타인에 대한 높은 기준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실수로 우주선이 미지의 행성에 고립되자 탈출 미션에 열을 올린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는데 그 원천에는 버즈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겪는 충격이 작용한다.


우주전사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활약을 선보일 것이라 여겼던 버즈의 실패는 클리셰를 부수는 충격을 준다. 탈출 미션 역시 마찬가지다. 버즈가 우주에서 보내는 건 몇 분이지만 돌아올 때마다 행성의 시간은 몇 년이 흘러있다. 시간의 차이를 두고 버즈가 같은 우주전사인 알리사와 함께 미션 성공의 기쁨을 누릴 것이란 예측과 달리 알리사가 노환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버즈는 실패를 거듭한다.


02.jpg


버즈가 겪는 좌절은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 버즈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을 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스스로를 특별한 우주전사라 여겼던 버즈가 장난감 매장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들을 바라볼 때의 충격은 강한 상실감을 유발한다. 상실에 빠진 주인공은 절망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릴 게 예상되지만 이 작품의 플롯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안내를 시작한다. 뒤늦게 미션에 성공한 버즈는 다시 돌아온 행성에서 로봇군단 저그의 표적이 된다.


이들에게서 버즈를 구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건 알리사의 손녀 이지와 그녀의 동료들이다. 보통의 조력자들과 달리 이들은 낮은 능력을 지니고 있고 버즈의 성향은 협력을 거부하는 흐름을 이끌어낸다. 이들이 하나로 엮이는 전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는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이지의 동료 모이다. 모는 연달아 실수를 하며 작전을 어렵게 만든다.


이때마다 이지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며 모를 다독인다. 이런 이지의 모습은 과거의 실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버즈에게 일종의 구원과도 같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메시지는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등장한 마법과도 같은 주문인 ‘하쿠나 마타타’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을 잇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메시지가 다소 나이브해졌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08.jpg


<소울>, <엔칸토> 등 근래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은 삶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를 통해 힐링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버즈 라이트이어> 역시 이 흐름을 따른다. 다만 이 연결고리는 점점 더 나이브한 상황을 연출한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반복되는 실수에 따뜻한 시선을 고정한다는 점은 지나친 낙관처럼 보인다. 현대인에게 이런 낙관적인 위로는 익숙한 재질이며 더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현란했던 전반부와 달리 액션과 어드벤처의 묘미가 강화된 후반부 연출은 단조로운 경향이 강하다. 위기상황은 격렬하게 탈출은 단조롭게 구성하며 효과적인 강약조절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에 웃음을 담당하는 로봇 고양이 삭스를 제외하고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내지 못한다. 캐릭터의 개성을 발산할 만한 사건과 모험을 효과적으로 구성하지 못하면서 우주에 표류한 듯한 느낌을 준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디즈니 픽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나이브한 인식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토이 스토리>의 세계관을 스핀오프로 확장시키며 이후 우디 캐릭터 솔로무비의 가능성 역시 기대하게 만든다. 다만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인사이드 아웃>, <소울>이 한 단계 진보한 주제의식으로 어른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던 순간을 재현해내지 못한다. ‘우주 저 너머’라는 버즈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