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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No.1 스타일리스트 만난 전도연의 킬러 변신

넷플릭스 [길복순]


“선배님은 이미 구겨져 있어서 빳빳하게 펴고 싶다” 감독 변성현이 배우 설경구에게 한 말이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공공의 적’ ‘실미도’ ‘해운대’ 등에서 보여준 설경구의 이미지는 동네 옆집 아저씨 또는 똘끼가 느껴지는 꼴통에 가까웠다. 이런 이미지가 고착화 된 중년 배우에게 변성현은 포마드에서 쓰리피스라는 멋을 스타일링해 주었다. ‘불한당’ 이후 설경구는 슈트와 제복이 잘 어울리는 미중년으로 연기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다.     


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 할 수 있는 변성현이 택한 다음 타겟은 전도연이다.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에게 그가 제안한 스타일링은 킬러다. ‘길복순’은 전도연을 메인으로 내세운 범죄 액션 느와르다.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문제를 겪으면서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렸다. 3월 3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이다.     


전도연의 오랜 팬이라는 변성현은 새로운 매력을 담아내고자 살인은 쉽고 학부모는 어려운 킬러를 준비했다. ‘길(Kill)복순’이라는 이름처럼 살인에 있어서는 최고를 자부하지만 사춘기 딸 재영의 마음은 어떻게 잡아야 좋을지 어려움을 겪는다. 직장과 가정에서 180도 다른 상황에 처하는 복순의 모습은 그 갭차이로 재미를 준다. 더해서 전도연 특유의 애교 섞인 콧소리로 버무린 액션 또한 포인트다.     



도입부 특별출연한 황정민과의 1대1 액션장면을 비롯해 영지와의 스파링 장면, 킬러들과 일대다수의 혈전장면 등은 스타일리시한 영상미에 전도연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강자의 여유까지 담아낸다. 20년도 더 된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수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때의 매력에 완숙미가 더해진 복순의 캐릭터에 반할 것이다. 그만큼 변성현은 완벽한 재단으로 전도연의 핏을 살리고자 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변성현의 페르소나 설경구는 차민규 역으로 극에 힘을 더했다. M.K ent의 대표인 그는 복순을 킬러로 길러낸 스승이자 보스다. 위압적으로 등장할 때마다 울리는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냉정하고 두려운 존재이지만 복순에게는 예외다. ‘역도산’에서 보여줬듯 신체적인 강인함에 슈트를 장착하며 세련된 카리스마까지 장착한 설경구는 사약 로맨스까지 시도하며 다시 한 번 한 단계 도약한다. 순정마초로 변신하며 다시 한 번 지천명 아이돌의 매력을 선사한다.     


‘길복순’의 캐릭터 열전은 구교환과 이솜까지 이어진다. 길복순의 동료 킬러 한희성 역을 맡은 구교환은 그간 상업영화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색으로 무장했다. 바로 사랑에 있어서는 구차하고 질척이는 찌질남이다. 희성은 구교환이 다양성영화계에서 주목받았던 본연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의 오랜 팬이라면 반가우면서도 남몰래 키득거릴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이솜은 배우로 본인을 각인시킨 ‘마담 뺑덕’을 떠올리게 만드는 민희 역을 맡았다. 민규의 여동생으로 M.K ent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유독 복순에게만 관대한 민규에게 불만을 품으며 극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이다. 발칙하고도 앙큼한 모습으로 초반 이솜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덕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도연과 설경구의 에너지에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극적인 재미를 극대화 시킨다.     


‘소년심판’과 ‘약한영웅’을 통해 OTT 대세배우로 떠오른 이연은 영지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준다. 유망주 킬러로 실력에 있어서 승부욕을 지니고 있지만 우상인 복순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갭모에를 보여준다. 참고로 이연은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의 아역을 연기한 바 있다.      



‘길복순’은 박훈정 감독의 ‘마녀’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선사하는 영화다. 만화 같은 질감을 지닌 신선한 장르적인 시도를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세련되게 담아냈다. 배우에 딱 맞춘 캐릭터를 부여한 것에 더해 이들 사이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조합했다. 범죄 느와르에 중점을 둔 비정한 세계관을 설정하면서 순정과 의리를 지닌 캐릭터들을 적절히 배치해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 내는 힘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드라마로 제작하자는 넷플릭스의 제안에도 전도연 설경구와 영화를 찍고 싶어 고집을 고수한 변성현 감독의 찐팬심이 돋보인다. 20년 넘게 충무로에서 사랑받아 온 여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손도끼를 들은 길복순의 모습부터 파격 그 자체다. 올해 ‘일타 스캔들’을 통해 흥행부도수표라는 오명을 벗어낸 전도연이 ‘길복순’을 통해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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