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턴 투 서울>
유태오, 리키 리, 김보라 감독 등 유명한 셀럽들이 반했다는 화제의 영화가 있습니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당시 한국인 입양아 친구의 한국 가족과의 만남에 동행에서 시작했다는 그 영화.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낯선 영화 <리턴 투 서울>이 그 주인공입니다.
5월 3일 개봉을 앞둔 <리턴 투 서울>은 데이비 추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겪은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했다고 해요. 지금까지 입양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보여준 클리셰를 완전히 벗어난 서사를 통해 호평을 자아내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데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초청,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6% 달성, 메타크리틱 올해의 영화 TOP10에 선정된 이 영화를 웰메이드 무비 선정으로 유명한 키노라이츠가 놓칠 리가 없겠죠?
이 작품의 감독 데이비 추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경험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해요.
직접 한국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느꼈던 일화와 감정들을 영화에 담아냈다고 합니다.
전작 <다이아몬드 아일랜드>에 이어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이유, 해외에서 받은 기억에 남는 부정적인 평가, 감독님의 장인정신이 담긴 컷 하나하나까지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이제부터, 감독 데이비 추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해외 다수의 영화제와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는데요.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긍정적인 반응 하나와 부정적인 반응을 하나씩 언급 드리고 싶어요. 긍정적인 반응은 호주, 미국, 홍콩, 한국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시는 관객 분들이 꼭 한 분씩은 계셨어요. 젊은 관객 분들 중에 프레디가 내 이야기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꼭 있으시더라고요. 저에게는 이 반응이 신기했어요.
프레디는 특정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자 관객 분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도발적인 캐릭터인데 그녀가 겪는 감정에 공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상실감, 길을 잃은 기분 같은 프레디의 감정상태가 국적을 불문하고 젊은 관객 분들에게 공감을 불러온다는 점이 긍정적인 포인트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러면 부정적인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것이었나요?
정말 행복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리턴 투 서울>에 대해 좋은 리뷰를 많이 올려주세요. 열기가 뜨겁다 보니 트위터에서 사람들 반응을 많이 찾아보는데요. 특히 프랑스에서 많이 나오는 반응이 프레디 성격이 상냥하지 못하다, 까칠하다. 흔히 말하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지닌 상냥함이 아닌 까칠함에 대해 언급을 하시더라고요. 까칠해서 마음에 안 들었다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까칠해서 매력적이라는 평도 있어요. 이런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이슈는 캐릭터 자체보다는 관객 분들의 기대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요. 만약 프레디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까칠한 성격이라는 것이 이슈가 되었을까요? 7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안티 히어로 성향의 남성주인공들이 큰 인기를 얻었어요.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등의 배우들이 선보이는 반사회주의적인 인물들은 까칠한 성격임에도 긍정적으로 수용이 되었죠. 세계의 관객 분들은 여성 주인공에 대해서는 상냥함으로 기쁨을 주는 그런 존재를 기대하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앞서 언급하신 까칠한 캐릭터 프레디가 아주 인기인데요. 이 개성 강한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이 영화는 제 프랑스 입양인 친구와 한국에서의 경험이 출발점이었어요. 이 친구 이름이 로르 바뒤풀인데 한국 이름이 박아름이에요. 2011년에 부산국제영화제로 한국에 왔을 때 이 친구가 진주로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동행했어요. 영화처럼 생부, 할머니가 있었고 통역이 함께 했어요. 그때 로르가 통역 분에게 “잘 들어. 저 사람(생부)한테 메시지 보내지 말라고 해. 멈추지 않으면 다시는 보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통역 분은 최대한 예의 있게 순화시켜서 전했지만, 전 불어로 말하는 걸 들으니까 그 친구의 분노가 느껴지더라고요. 영화 속 프레디가 까칠하게 보이는 이유는 내면의 분노가 표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저는 이 분노의 감정에 개인적으로 놀랐어요. 이 감정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본질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이 영화에서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봐요. 그런 강렬한 분노는 영화를 만들 때 이야기의 서사적인 동력으로 아주 강렬한 동기를 주거든요. 이런 상황에 접해있는 인물들은 타인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걸 거부해요. 정체성의 틀 안에 자기를 가두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요.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모르는 그 생명력이 이야기에 큰 힘을 부여하죠.
-이 분노라는 감정을 감독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는지 궁금한데요. 입양인의 삶을 그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사실 이 분노라는 것이 영화 프로젝트를 끌어오는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입양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잖아요. 한국 영화계 지인 분들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했을 때 다들 회의적인 반응이었어요. 독창적인 게 없을 거라고들 여겼거든요. 헌데 기존에 나온 입양인 관련 작품들에 대해 로르가 실망스럽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를 단순하게 다루고 쉬운 결론을 내린다면서 입양인들의 심정은 이런 게 아니라고. 로르의 이 말이 입양이라는 이슈에 대해 더 많은 문을 열어줬어요. 분노에 가득차서 쉬운 화해로 나아가지 않고 주변 모든 사람들을 들이박는 입양인의 다른 내면을 만들어 보자는 강한 동기부여를 얻었어요.
프레디라는 인물이 모든 입양아들을 대표하는 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어요. 모든 입양인 분들은 각자 서로 다른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요. 입양인 분들을 대상으로 <리턴 투 서울> 시사회 반응을 체크해 본 적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근원적인 트라우마를 다루고 내 이야기 같다고 하셨어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점에 대해 참 감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연출적인 측면에서 한국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거 같아요.
한국의 모습을 어떻게 사실과 가깝게 그려낼 수 있을까가 중요한 과제였어요.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여겼던 건 한글대사였어요. 한글대사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에 대해 여러 단계를 걸쳐 검증하면서 준비했어요. 영화에 먹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한국 분들이 어떤 걸 먹고 마시며 식사자리에서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많은 분들에게 질문하고 확인 작업을 거쳤어요. 이런 사실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입양센터에서의 장면이었습니다. 더 극적인 장면을 위한 할리우드식 연출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실제 행정적인 절차를 그대로 재연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프레디가 한국 가족을 만나는 장면이었어요.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입양 자녀에게는 어떤 요리를 해줄까? 아버지는 식탁에서 어떤 자리에 앉을까? 등등 한국 스태프 분들에게 끊임없이 확인하며 구상했어요. 헌데 아버지(극중 오광록이 연기한)를 100% 사실대로 앉히니까 카메라 앵글이 도저히 안 나오는 거예요. 김선영 배우 분이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고 주눅 들고 소심한 상태니 다른 곳에 앉혀도 된다고 하셔서 촬영에 유리하게 자리를 바꿨어요.
-아무래도 외국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면 이에 따른 어려움이 수반되는 거 같아요.
외국인의 입장에서 다른 나라에서 감독으로 촬영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과정이 있어요. 저도 프랑스인이 아닌 감독이 프랑스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은 걸 보고 “훗, 저게 뭐야? 저거 프랑스 아니야.” 하며 비웃을 때가 있었거든요. 혹 한국 관객 분들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어요.
때문에 연출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많이 썼어요. 예를 들면 할머니가 자기 젓가락으로 삼계탕을 잘라서 프레디에게 주는 장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누가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는 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에요.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에서는 흔한 어른들의 애정 행위지만 프레디 입장에서는 내 영역을 침범 받는 굉장히 폭력적인 제스처로 느껴지죠. 그런 문화적인 차이나 장벽들을 외국인 입장에서 공을 들여 표현했다는 점 언급 드리고 싶어요.
-연출적인 측면에서 데이비 추 감독님의 디테일한 명장면이 가득한 <리턴 투 서울>인데요. 또 감독님이 신경을 쓰신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차이를 섬세하게 담아낸 장면이 있는지 궁금해요.
또 다른 예시로는 미국이나 프랑스 관객 분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어요. 식사를 다 하고 나서 아버지가 프레디를 택시에 빨리 태우는 장면. 미국이나 프랑스 관객 분들은 “왜 저래? 무슨 문제가 있었어? 둘이 싸웠던 거야?” 하며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세요. 그 장면이 아시아 아버지들의 특징이에요.
캄보디아인인 저희 아버지도 그래요. 오랜만에 만나 식사나 쇼핑을 여유롭게 끝낸 뒤 택시를 잡아 빨리 가라며 저희를 태우세요. 안전하게 집까지 보내야 아버지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겨요. 그 과정까지가 좋은 아버지의 책임이라는 루틴 같아요.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 낯설어 하는 관객 분들이 있어요. 프레디 입장에서도 왜 나를 쫓아내는 듯하지? 하며 당황하고요. 나중에는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죠.
때로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들이 사실주의가 아니라고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피아노곡을 만들어 딸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전 굉장히 감동적일 거라고 여겼어요. 이 장면을 촬영할 때 김선영 배우가 감동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덤덤하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감정표현을 해달라고 했더니 한국 아빠들은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음악을 안 만든다고 하는 거예요. 혹여 만든다 하더라도 딸에게는 절대 들려주지 않을 부끄러운 일이라 하더라고요.
실제 고모가 봤으면 무시하고 “왜 저래?” 하는 게 한국에서의 리얼리즘이었던 것이죠. 한국적이지 않은 연출에 김선영 배우가 반응을 주셨던 거고요. 그럼에도 감동을 원해서 김선영 배우에게 감정표현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원하는 연출 방향을 위해 리얼리즘을 희생했던 장면이었어요.
-영화를 보면 한국 문화나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혹시 감독님이 한국에서 얻은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인들이 왜 한국을 좋아하냐. 상투적인 답이긴 하지만 밤에 술 한 잔 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한국에 간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워서 혼자 먼저 서울에 왔었어요. 일주일 정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이태원에서 혼자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했는데 그때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외국인이라 말은 안 걸지만 모두가 절 쳐다보고 있다고 여겼는데 한 사람이 질문을 트니 그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한테 친구처럼 말을 걸어왔어요. 한국의 소주 문화가 그런 분위기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밤 문화가 너무 좋았어요. 영화 초반 장면이 진짜 제 경험이에요. 부산영화제 때 옆 테이블 손님들을 제가 다 끌고 와서 한 잔 했어요.(웃음)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박지민 배우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캐스팅 하셨다고 들었어요. 박지민 배우가 꼭 프레디를 연기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박지민 배우를 만난 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프레디라는 캐릭터가 연기하기 정말 어려워요. 극단적인 감정 연기와 색깔을 보여줘야 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연기해야 했어요. 동시에 분노와 슬픔, 깊은 상처, 연약함까지 전문배우도 해내기 힘들었다고 봐요. 여기에 한국인이면서 불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프레디(박지민)를 만났어요. 전문 배우가 아님에도 박지민 배우가 훌륭하게 해냈다는 점이 제게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감독님은 이전 작품인 <다이아몬드 아일랜드>에서도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했는데요. 이런 작업방식을 선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 <리턴 투 서울> 같은 경우는 비전문 배우 분들을 써야지 선택하기 보다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는 프랑스 문화부에는 영화에 불어를 몇 퍼센트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불어를 하는 한국인 배우를 찾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 비전문 배우 분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어요.
태나 역을 맡은 분은 원래는 작가 분이세요. 불어를 굉장히 잘하세요. 입양센터 직원 두 분 중 한 분은 불어선생님이었고 다른 한 분은 실제 입양센터 직원 분이셨어요. 연기자 분은 아니지만 역할에 적합한 분들을 사방에서 찾고자 노력했어요. 여기에 오광록, 김선영 등 관록 있는 배우 분들과 작업한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이 영화에서는 비전문 배우들과 전문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룬다는 점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어요. 이 영화 자체가 이질적인 요소들의 만남이 주제입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인데 프랑스에서 자란 프레디처럼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을 다루고 있죠. 과학시간에 일어나는 화학적이 반응과도 같은 것이 영화에서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요소로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사진제공 : 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