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레이스]
4월 비교적 잠잠한 한 달을 보냈던 디즈니+가 5월을 맞이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스’를 공개했다. 오피스 로맨스 장르의 이 작품은 열정 만렙 대행사 직원 박윤조가 우연한 기회로 대기업 홍보실에 취직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스펙이 우선이고 무한열정은 기본이 되어버린 직장인들의 일과 사랑을 보여주며 재미를 줄 예정이다.
‘레이스’는 두 가지 방향성으로 오피스 라이프를 그린다. 첫 번째는 경쟁의 레이스다. 마케터 윤조는 자신의 일에 진심이며 직장에서 인정받는 걸 우선시 하는 타입이다. 인문계 대학교도 나오지 못해 스펙 미달이 아닌 스펙 아웃에 가까운 그녀는 열정과 실력으로 그 간격을 줄이고자 전력질주 한다.
도입부 워라벨을 중시하는 신입사원과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윤조의 캐릭터를 각인시킨다. 주말에도 마케팅 연구에 열을 올리며 일과 일상 사이에 경계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노력을 하늘에서 바라본 듯 대기업 세용에 입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다. 신입사원 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8년차 경력직인 그녀는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힘차게 질주한다.
두 번째는 페이스 메이커와 함께하는 레이스다. 오피스 장르의 경우 업무를 통한 개인의 성장을 함께 담아낸다. 그 관계가 공생이건 적대이건 주변 인물들은 성장을 꿈꾸는 개인에게 페이스 메이커가 된다. 앞으로 시작될 윤조의 대기업 생활기와 인정을 받기 위한 도전기에는 이 페이스 메이커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조의 절친이자 워라벨을 중시하는 재민은 상반된 스타일을 지닌 조력자다. 그의 제안으로 대기업 세용은 스펙을 보지 않는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고 윤조가 행운의 주인공이 된다. 한 회사에 근무하게 된 두 사람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줄타기는 물론 업무에 있어서도 협력 관계를 맺을 것으로 보인다.
윤조의 우상이자 PR스페셜리스트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 구이정과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라이벌 업체 대표 서동훈이 가세하며 함께 트랙 위를 달릴 예정이다. 이제 막 출발선에서 발을 뗀 ‘레이스’의 시작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낮은 기대치를 역전할 만한 장면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본격적인 전개를 앞둔 3화가 크게 기대되지 않는 이유는 1, 2화가 보여준 뻔한 그림과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의 부재다. 소위 말하는 MZ세대 신입사원과의 갈등, 을도 정도 아닌 병에 해당하는 위치에서 당하는 서러움 등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전개이다 보니 신선한 매력이 부족하다. 물론 이 지점은 대다수의 드라마들이 직면한 공통된 과제다.
이 문제를 극복해내는 힘은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이들 사이의 케미다. ‘레이스’의 반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전작 ‘하이에나’에서 김혜수, 주지훈을 주연으로 내세워 섹시한 법정물을 완성했던 김루리 작가의 존재감이었다. 그 위력을 이번에는 발휘하지 못하면서 무색무취의 인상을 남긴다.
이연희, 홍종현, 정윤호는 이미지와 분위기에 있어서는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만 연기에 있어 개성이 부족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리는 힘이 좋은 배우들이 아니다. 훌륭한 조력자와 함께할 때 더 힘들 내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놨다는 점도 아쉽게 다가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기 부족한 모습이다.
디즈니+의 ‘레이스’ 공개 타이밍이 아쉬움으로 남는 건 메인이 아닌 밑반찬으로 공개하는 편이 작품에 더 좋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형사록’-‘3인칭 복수’, ‘카지노’-‘사랑이라 말해요’ 때처럼 메인을 먼저 시작하고 함께 관람하기 좋은 작품으로 공개했다면 큰 주목과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을 받는 위치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카지노’가 최악의 결말을 내며 구독자들을 실망시켰고 4월 한 달을 한국 오리지널 작품 없이 보낸 디즈니+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인디쉬로 ‘레이스’를 꺼낸 선택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 드라마의 페이스 메이커들을 따라 끝까지 레이스를 완주할 시청자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