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무빙]
강풀은 대한민국 웹툰계에서 전설로 자리매김한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에는 생소했던 스토리 형식의 장편웹툰을 연재하며 현재의 웹툰 연재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그의 이름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웹툰 시대를 이끈 개막공신임과 동시에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점에 있다. 총 3번의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며 흥행력과 작품성을 동시에 지녔음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라 할 수 있는 강풀은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글로벌 OTT 디즈니+와 손을 잡고 자신의 히트작 <무빙>의 실사화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했다. 총 제작비 650억 원의 이 한국판 히어로물은 치열한 OTT 시장 경쟁에서 승리를 위해 한 가지에 집중했다. 작가 강풀의 모토는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웹툰과 같은 이야기는 식상함을 주기에 세계관을 더욱 확장했고,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해 극적인 묘미를 극대화 했다.
<무빙>은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아픈 과거 때문에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 부모 세대와 초능력을 물려받은 자식 세대가 함께 거대한 위협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초능력이 낙인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부모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숨겨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식들은 꿈과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강풀 특유의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이 설정은 실사화에 있어 몇 가지 우려가 있었다.
먼저 강풀이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D.P.>의 김보통 작가가 원작 시나리오에 참여해 성공을 거둔 적이 있지만 한준희 감독과 공동집필을 했다. 매체마다 그 문법이 다르다는 점에서 드라마 작법은 어설프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웹툰은 독자들이 컷과 컷 사이를 상상으로 메워주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보는 것을 그려야 했다는 강풀은 제작진과 꾸준히 회의를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 노력이 빛을 내며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인 다음 회차를 궁금하게 만드는 쫀쫀함을 갖추었다. 웹툰 연재시스템을 정착시킨 장본인인 만큼 어떻게 하면 본방사수를 하게 만들지에 대한 연구가 철저하다. 이 지점에서 돋보이는 건 오리지널 캐릭터인 전계도와 프랭크다. 은퇴한 초능력자들을 사냥하는 프랭크는 주원-미현 등 부모 초능력자들의 목숨을 노리는 모습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낸다.
전계도는 봉석-희수-강훈의 자식 초능력자들과 연결된다. 계도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번개 초능력이 방해물이 되어 힘들게 인생을 살아간다. ‘번개맨’으로 상징되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진짜 전기 능력자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계도의 모습은 초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자식 세대가 어쩌면 겪을 미래를 암시하며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그럼에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성장담과 성장통은 휴머니즘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다소 오글거리고 직관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봉석-희수-강훈의 청춘담은 강풀의 손길 속에서 부드럽게 각자의 매력과 초능력을 연결지어 보여준다. 비행능력을 지닌 봉석은 맑은 하늘과도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엄마한테 상처를 주기 싫어 몸이 뜨지 못하게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지만, 희수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정의감 넘치는 다정한 소녀 희수는 재생능력의 소유자답게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어선다. 신체의 훼손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흔도 치유하며 타인을 향한 따뜻함을 보여준다. 괴력을 지닌 강훈은 강단 있는 성격이지만 내면의 욕망이라는 힘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희수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봉석에 대한 질투심을 지닌다. 능력을 캐릭터의 성장과 연결 지으며 그 깊이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근사한 드라마에 포인트를 주는 건 액션이다. 넷플릭스 <킹덤2>의 박인제 감독은 MCU를 통해 높아진 히어로물에 대한 대중적인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적인 측면에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통상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VFX 컷이 2000컷이라고 하는데 <무빙>은 7540컷에 달한다. 블록버스터 영화 세 편에 달하는 특수효과를 통해 최상급 퀄리티를 완성했다.
1주차에 공개된 1~7화의 메인 액션인 프랭크와 은퇴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맛보기에 가깝지만 이마저도 높은 만족도를 자아낸다. 화제성에서 다소 불리한 청불 등급을 감수한 고어 액션으로 현실감을 더하며 장점을 극대화 했다. 아직 조인성이 연기한 김두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고 괴력 능력자인 김성균의 이재만은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되는 액션이다.
<무빙>은 한국형 히어로 장르의 지평을 여는 기념비적인 시리즈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평화라는 거창한 슬로건은 이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소시민들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휴머니즘 스토리를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를 지닌 뉴타입 히어로물을 완성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무빙>은 한국 론칭 이후 아쉬운 성적을 이어가고 있는 디즈니+의 위상 역시 움직이게(moving) 만드는 초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