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라
새로운 치즈를 찾아서 떠나라
지금 머물고 있는 리조트도 너무 좋다. 조용하고 예쁘고. 그냥 하루를 이곳에서 늘어지게 있어도 좋겠는데, 11쯤 나가는 차편이 있다고 하니 나가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택시 타고 돌아와야겠다.
저녁까지 시간이 너무 길기는 하다. 피곤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가서 산책 1시간, 점심 1시간, 커피 2시간. 그래 봐야 4시간밖에 안되는데 하루는 너무 길다. 그래, 밤은 이틀 돌아다녀 봤으니 그냥 돌아오고 싶을 때 오자.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긴 시간에 리조트에서 추천하는 태국 마사지를 경험하며 휴식도 하고 시원한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빠이의 리조트 여주인, 노이는 인상적인 여인이다. 그녀가 가운데 가르마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긴 붉은 꽃무늬의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처음 나타났을 때는, 부유한 태국 여성의 이미지였다. 51세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집업 점퍼 차림으로 아침 식사하는 투숙객들을 맞이할 때는, 수더분하고 털털해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었다.
그리고 빠이를 떠나는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줄 때는, 흰색 긴팔 니트에 검정 바지, 흰색 프레임의 선글라스, 흰색 네일의 패셔너블한 모습이었다.
11년 전, 그들 부부는 이곳에 땅을 사서 직접 나무와 꽃을 심고 정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정말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정원 벤치에 발 뻗고 앉아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이런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정원의 리조트를 운영하며 살면 어떨까?
노이는 늘 눈을 크게 뜨고 정원의 어디를 손볼지, 또 어떤 싱싱하고 질 높은 음식 재료를 구할지 탐색한다고 남편 아트가 말한다. 아내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부부는 외모 상으로는 최소한 20년 이상의 나이 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안정되어 보이는 것은 남녀 커플의 나이 차이나 인종 차이에 대한 나의 편견일까?
작은 수첩을 살 수 있으면 하나 사야겠다. 거의 다 쓴 이 노트로는 조금 부족하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정말 쭉쭉 뻗은 서양 여자들을 보면서 남자들의 행복감을 알 것 같다.
남자 친구나 남편은 절대 혼자 여행 보낼 일이 아니다. 도처에 유혹이 너무 많다.
12시부터 3시까지 강변의 레스토랑에 있었다. 너무 한적하고 자유롭고 좋았다. 아무리 예쁜 카페도 이런 탁 트인 자연 안의 것만 못하다.
우선 사람이 적어 아무도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다. 닫힌 카페라면 아무래도 주변의 힐끗대는 시선에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틀 안에 갇힌 느낌이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강과 푸른 나무와 바람을 즐기면 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다. 1월 23일에 출국했으니 딱 한 달 만이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충전이 되었을까? 충전이라는 것도 휴대폰 충전과 같아서 한 번 했다고 계속 유효한 것은 아니다. 늘 정기적으로 해주어야 하는 것이지. 한 번 업데이트는 된 걸로 하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는다. 강가 카페에서.
읽다 보니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 바로 내가 변화해야 할 때이다.
변화가 두려워서, 사라진 치즈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헛되이 기다리는 햄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기에는 난 너무 늙었어. 그리고 내가 길을 잃고 바보짓하는 것에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않을 거라는 게 두려워.”
햄의 말에,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던 호우도 다시 이런 기분에 빠지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호우에게 다시 찾아오고, 새로운 치즈를 찾고자 하는 희망은 희미해졌다.”
뭔가 새로운 희망을 갖고 애써 시도해보려 했다가도 작은 말 한마디, 작은 걱정 하나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 우리를 주저앉히곤 한다. 현실의 벽이란 이런 거라며.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벽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두려움의 그림자 때문이다.
호우가 말한다.
“하지만 난 그들이 다시는 그 자리에 어제의 치즈를 갖다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어. 이제 새 치즈를 찾아 떠날 때가 됐어”
그러자 햄이 말한다.
“밖에도 치즈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 설사 있다 해도 네가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여기서 햄과 호우는 우리 안에 있는 두 개의 자아이고, 그 두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불안과 의구심으로 가득 찬 지금의 내 마음과 똑같을까?
“그는 미로 속에서 때때로 길을 잃게 될 자신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새로운 치즈를 찾게 되리라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호우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익숙한 그곳을 떨치고 떠난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에 빠진다.
“호우는 미로 안으로 떠나면서 자신이 있었던 곳을 뒤돌아보았다. 순간 그곳이 참 안락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 익숙한 터전에 다시 마음이 이끌리는 자신을 느꼈다. - 한동안 그곳에서 치즈를 발견하지 못했다 해도.”
변화는 운명처럼, 그러나 엄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그러니 늘 촉각을 세우고 그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그것을 털어내고, 재빨리 옮겨가는 것이다.
“예전의(상한) 치즈를 더 빨리 놓아버릴수록, 더 빨리 새로운(신선한) 치즈를 찾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치즈가 없는 구역에 남아있는 것보다, 치즈를 찾아 미로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낡은 믿음은 너를 새로운 치즈에게로 이끌어주지 못한다.”
- 위의 인용 문구들은 “Who Moved My Cheese?”, Spencer Johnson, Vermillion, 2003. 중에서.
나의 지금 상황을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책이다. 적시에 가장 적합한 책을 만났다.
지금은 변화하고 움직여야 할 때이다.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내 인생에 사랑은 더 없을 거라는 생각. 그와 함께 있으면 누릴 수 있는 것들. 떠나면 그것들마저 잃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이 익숙한 것들을 떠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 그냥 지금 가진 것을 고마워하며 가끔 몰려드는 의구심 따위는 그냥 잊어버리라는 생각.
그런 낡은 믿음 따위는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 새로운 치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믿음을 가질 것.
그것이 이 여행에서 내가 갖고 돌아갈 명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