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떠나는 날

by Annie


아침에 호스텔에서 소동이 있었다. 로즈가 빵 봉지 안에 인터넷 카드와 돈(17 쿡)을 넣어두고 깜빡했는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냉장고에 있던 그 봉지가 없어졌다고 했다. 아마 봉지 안의 빵 때문에 기름기가 많아 누군가가 버렸을 수도 있는데, 혹시 청소하는 아가씨에게 확인해볼 수 있는지 주인인 메이에게 물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메이는 완강하게 “노, 노, 노”를 연발했는데, 그 ‘노’의 옥타브와 데시벨이 점점 높아갔다. 주인으로서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을 테지만, 그 반응이 좀 과하지 싶었다.

조금 침착하게, 그럴 리는 없지만 확인해보겠다던가, 내가 그 봉지를 버릴 때 봤는데 그 안에 돈은 없었다, 이렇게 좀 더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대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는 거의 절규하다시피 했다.

“Money? No, No!”

급기야 그녀는 로즈에게 항의하듯 물었다.

“Do you want me money?"


로즈는 당황해서 눈물을 흘렸다. 로즈는 단지 한번 확인해보아 주길 바란 건데, 너무 격렬한 메이의 반응과, 마치 자기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에 당황했던 것이다.

메이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나와 로즈, 그리고 룸메이트인 올리비아(프랑스)는 공항으로 떠나는 택시를 함께 타기로 해서 기다리던 참이었고, 그렇게 셋이 함께 있는 앞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그랬을 수 있다.


옆에서 보던 룸메이트 올리비아가 로즈에게 말했다.

“그냥 이것도 배움이라고 생각해.”

나도 말했다.

“사실 이 집주인이 책임질 일은 아니야.”


그랬다.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갓 스무 살 된 애한테 그렇게 과하게 반응할 일도 아니었다. 그녀의 이런 반응은 그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방어 기제를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표출할 때, 조금 더 순화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을 볼 때 우리는 성숙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그날 아침, 메이에게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부엌에 있는 메이에게 가서 말했다.

“로즈도 누구 탓을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야. 어린애잖아.”


그러자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우는 그녀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이런 일만 안 일어났더라면 정말 좋은 추억을 남겼을 호스텔이었는데...


메이, 요세르 커플과 포옹 인사를 나누고, 내려와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주인 네 친척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그는 한없이 다정하게 나를 안고 내 볼에 입 맞추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올리비아는 내게 이 호스텔에 얼마 동안이나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틀 있었어.”


아마 내가 이 집 식구들과 매우 가까워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로즈가 돈을 잃어버린 데다 감정적으로도 패닉 상태에 있어서, 나는 그녀 몫의 차비를 내가 내겠다고 했다. 올리비아에게도 그냥 다음 여행지인 멕시코 시티에서 맛 좋은 커피를 사마시라며, 내가 택시비 전액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10 쿡을 내밀었다. 계산대로 하자면 1 쿡을 남겨주어야 하는데 내게 동전이 없어서, 괜찮다는 것을 마침 멕시코 동전이 있어서 기쁘게 그것을 주었다. 나중에 보니 멕시코 지폐 20페소가 있었던 것을.






마이애미행 델타항공. 승객들이 많지 않아서, 좌석 3개가 나란히 붙은 내 줄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난 담요 아래의 다리를 옆 좌석에 올리고, 아주 쾌적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I love Delta!’

마이애미에 도착하면 5시간 후에 갈아탈 비행기가 출발하므로 최소 3시간은 확보가 될 텐데, 밖에 나가서 근사한 커피나 피자, 샌드위치 같은 거라도 먹어야지 했다. 정우는 내가 마이애미를 경유한다는 말을 듣고 좋아했다. 내게 꼭 해변에 들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입국 수속에만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긴 입국 수속 중에, 아메리칸 에어라인으로 갈아타려고 다시 탑승 수속을 하는데, 콜롬비아에서 돌아오는 리턴 티켓이 있어야 한단다. 멕시코에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경유할 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그들은 저쪽에 가서 알아보고 오라 했고, 저쪽에 가니까 다시 이쪽으로 보낸다. 결론은 리턴 티켓을 사라는 것이었다. 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최종 여행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이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미의 다른 나라를 떠나는 티켓이 아니라, 콜롬비아를 떠나는 티켓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콜롬비아에서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할 수 없이 칼리에서 페루의 리마로 가는 티켓을 알아보니, 칼리-보고타-리마 순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100만 원이 넘었다. 다른 날로 싼 것을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30만 원짜리를 찾았다. 어쩐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여행자를 봉으로 만드는 술책 같아 몹시 찜찜했다.


그러나 가격이 10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떨어지니 엄청 싸게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것도 처음 비싼 가격을 불렀다가, 싼 가격을 제시하여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게 하는 속임수인 것 같았다.

내가 타게 될 보고타행 비행기는 탑승 시간이 변경될 수도 있으니, 4시 40분까지 게이트로 가라고 했다. 결국 밖에 나갈 시간은 확보되지 않았다.


창가 좌석이어서 이륙 직전부터 창밖을 보는데,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마이애미 공항 활주로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륙한 후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이애미는 정말 근사했다.

그냥 바다 위의 섬처럼, 육지와 연결된 크지 않은 타운들은 실제로 가보면 정말 멋진 곳일 것 같다. 구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연초록 바다는 마치 깨끗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하늘의 구름이 내게는 늘 예쁘다. 마이애미 상공에서 내려다본 구름들도 그랬다. 비행기를 타면 의례 보곤 하는 풍경이려니 하지만, 사실 그 풍경들은 어떤 도시의 야경이나 이벤트를 통해 보는 풍경보다 근사하다.

오늘 본 마이애미는 환상이었다. 공항에서의 나쁜 기억이 다 녹아버리고, 마이애미에 한 번 와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했다.


지금 나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