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카 투어
같은 룸의 차이나 걸, 로즈와 올드 카 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다.
살사 댄스 강습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 달라는 정우의 청은 좋은 생각이었다. 기본 스텝을 이용해 살사를 추는 나는 조금 흐느적거리고 있었지만 풋풋하고 귀여웠다.
공원에 앉아 로즈를 기다린다. 어제는 추워서 스웨터에 패딩까지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날이 풀려서 노란 민소매 티에 흰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다닌다. 난 이 차림이 좋다. 남들도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으나. 로즈는 전에 묵었던 숙소에 짐을 가지러 갔으니, 아마 늦게 오기가 쉬울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이 선선한 그늘에 앉아 글을 쓰기로 한다.
아바나에 도착한 첫날, 구 아바나의 상가 골목을 처음 보았더라면, 아바나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충족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름 괜찮은 거리들, 골목마다 음악이 흐르고, 꽤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한 거리들을 먼저 보았더라면.
그러나 내가 첫날 오후 내내 마주했던 것은 서민 주거 구역의 폐허 같은 모습이었다. 첫날의 충격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 보고 있는 활기차고 화려한 구 아바나의 모습이 어쩐지 거짓처럼 다가온다. 여행하면서 우리는 늘 여행지의 거짓만을 보고 오는 건지도 모른다. 관광지구의 포장된 모습들만.
라오스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도 그리고 멕시코, 심지어 스페인까지도.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와 레스토랑, 상점, 음악, 조명들. 그런 것들만 보다가, 그런 낭만과 환상에 젖어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지역의 진짜 얼굴을 보기보다, 그 지역의 정부나 지방 정부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구축한 인프라만 보고 즐기다 오거나, 여행 기분에 젖은 사람들과 그들의 그 순간 모습만 공유하고 오는 건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바라고 여행을 가는 건지도 모른다. 여행조차도 현실의 연장이라면 누가 여행을 떠나겠는가. 현실을 떠나 이렇게 색칠된 것들을 누리려고, 그런 것을 기대하고 떠나는 것이 여행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올드 카 투어는 생각보다 근사했다. 오픈카로 시내를 신나게 질주하고, 지나가는 바이크맨들의 환호에 즐겁게 손을 흔들어주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혹은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던 곳들을 넓게 돌아볼 수 있었다.
혁명광장 앞에 차를 세우고, 건물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체 게바라 캐리커쳐 앞에서, 그리고 가는 곳마다, 로즈와 나는 서로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함께 환호하고 깔깔거릴 수 있는 동행이 있어서 너무 신이 났다. 말레콘 비치에서 먼발치로만 보이던 요새까지도 가볼 수 있었고, 그곳을 걸으며 로즈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현재의 중국은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상관도 하지 않는다고, 그저 돈이 중요할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올드 카 투어를 한 후에 로즈는 먼저 들어가고, 나는 번화가인 오르비스 골목을 향해 혼자 걸었다. 입구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밖에 있는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한 나이 든 남자가 “It's good. Come." 하며 들어간다. 이 레스토랑 직원인가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내부는 테이블마다 하얀 테이블 보가 깔려 있어서 깔끔하고 좋아 보였다. 밖에서 메뉴를 보니 비싸지는 않았다.
빈자리를 둘러보다 모두 4인석이라 망설이고 있는데, 저쪽 끝자리에 아까 그 남자가 혼자 앉아있다. 주춤주춤 그쪽으로 갔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더니 반긴다. 내가 그와 합석할까 하는 의미로, May I...?” 했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자기가 먼저 청할까 했었다고.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왔는데, 원래 퀘벡 출신이라고 했다. 두 지역 모두 불어를 쓰는 곳이기 때문에, 그의 영어는 캐나다인 치고 약간 어눌하게 들렸다. 캐나다가 너무 추워서, 쿠바에 6개월 일정으로 아파트를 하나 얻어놓고 지낸다 했다.
10년 전에 이혼했는데, 전 부인과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했다. 딸이 하나 있고 손주도 있다고, 현재는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결혼 생활을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고 했다. 평생을 한 사람과 산다는 것은 아주 안 좋은 일이라며, 계약이 좋다고, 몇 년간의 계약을 맺은 후, 괜찮으면 갱신하고.
우린 이런 이야기들에 서로 동의하며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술을 끊은 지 20년 됐다고, 젊었을 때 알코올 중독이어서 한동안 치료를 위한 모임에도 나갔었다고, 연금도 있지만 일은 계속한다고, 앞으로 남은 생은 이렇게 여행하면서 자기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쓰며, 일도 계속하며 살 거라고 했다.
결혼 생활은 답답했다고, 때로는 혼자이고 싶은데, 아내는 늘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숨이 막혔다고 했다. 남자들은 모두 그런 것 같다.
반면 여자들은 항상 남자만 바라보며,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어쩐지 배척당하는 것 같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지는 것 같다.
여자들은 의존성을 타고나는 것일까, 그렇게 키워지는 것일까? 남자들은 여자들의 그런 의존성을 버거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그런 여성성에 끌린다. 단 자기 아내만 안 그랬으면 하는 것이다.
쿠바에 대한 얘기, 일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며 유쾌한 저녁 식사를 했다. 난 맥주를 한 잔 곁들였기 때문에 말을 좀 많이 했다. 좋은 저녁 식사였다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지만, 이후로는 서로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늘 좋은 추억으로 회상한다고 했더니, 그가 그럼 우리도 페이스북 친구 하는 거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난 잉글레리따 호텔 앞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할 일이 있다고, 거기서 헤어지자고 했다. 내가 내일 아침에 떠난다니 참 유감이라고, 조금 더 아바나에 머문다면 나를 더 만나보고 싶은데 안타깝다며, 함께 셀피를 찍자고 했다.
우린 작별의 포옹을 했고 그는 내게 볼 인사를 했다. 나중에 함께 찍은 셀피를 보니, 그는 정말 나이 든 할아버지 같았다. 어쨌든 동행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던 좋은 시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아바나는 곳곳에서 이벤트 공연이 펼쳐지고 카페와 레스토랑 골목에는 악사들의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중심가의 큰 도로에는 위풍당당한 건물들 사이로 아바나의 명물, 올드카들이 알록달록한 색들을 뽐내며 질주하거나, 관광객들을 기다리며 서있다. 반짝이고, 유쾌하고, 요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