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아바나

- 국립미술관과 레스토랑, 그리고 호스텔

by Annie


아침에 안주인 메이가 내준 커피와 빵, 그리고 바나나 한 개를 먹고는, 10블록을 걸어서 호텔 앙겔라레따 앞으로 갔다. 그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인터넷 접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9시면 한국은 밤 11시 반 정도인데 그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아바나에서 돌아볼 수 있는 투어들, 워킹 투어, 올드 카 투어, ‘아바나에서 놓쳐서는 안 될 10가지’ 등등. 그리고 맛 집 정보도.

올드 카 투어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그 차를 타고 아바나 여기저기를 두 시간 동안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매력이었다. 그래서 2시간에 50 쿡으로 비싸지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함께할 누군가가 있다면 25 쿡씩 반값이면 되는데, 난 거리를 걸으며 권해 볼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마땅히 혼자인 사람도 없었고, 설혹 있다 해도 말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치 삐끼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그와 접속하지 못하고 난 그곳을 떠나야 했다. 봄이에게 보고타 숙소를 대신 예약했는지 묻는 톡을 보내 두었다. 거의 한국인들만 묵는다는 그 호스텔을 택한 것은, 앞으로의 남미 여행에 대한 정보와 대충의 밑그림을 그곳에서 그려가야겠다는 생각에서이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곳을 원치는 않았지만, 나름 편리한 점도 많을 것 같기는 했다. 멕시코 시티의 호스텔에서도 그랬다. 한국인 룸메이트들이 있어서 마음도 편했었다. 석 달 여행 중에 그럴 때도 있어야지 싶었다.


지나고 보니, 한국에서 검색해 사진으로 찍어 둔 몇 가지 정보를 왜 지금껏 점검해보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아바나에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냥 인터넷 소통을 포기하고 이곳 일정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인터넷에 접속하면, 봄이가 콜롬비아 숙소를 예약했는지 살피고, 이메일을 열어 항공권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찍어두어야겠다.


살사 강습을 위해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청과 시장에서 파파야 반통과 아기 바나나 한 손을 샀다. 그러나 내가 산 아기 바나나를 보고 집주인 메이가 그것은 요리용 바나나라며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진짜 바나나를 하나 주었고, 난 그 요리용 바나나 한손을 그녀에게 다 주었다.


오늘의 살사 레슨은 트리니다드에서와 달리, 춤을 출 수 있는 넓은 홀에 거울까지 있어서, 춤추는 나를 보아가며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강사도 훨씬 더 프로다웠고, 춤도 기본 스텝에서 더 나아가 맘보 스텝까지, 그리고 턴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을 배웠다. 춤추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그 기운을 받아 밖으로 나가 힘차게 걸었다.




다시 올드 카 흥정을 해보고, 또 함께할 짝을 거리에서 찾아보았으나 실패했다. 달리 할 일을 찾지 못해, 한낮의 더위도 피할 겸해서 국립 미술관에 들렀다.

한 층밖에 없나 했더니 전시실이 4층까지 있어서, 모처럼 차분하게 미술관 관람을 했다. 온통 시끌벅적한 도심 가운데 그곳만은 섬처럼 고요했다. 마치 아바나 안의 또 다른 아바나에 와있는 것 같았다.


관람객도 몇 명 되지 않아서 진짜 관람다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로마 관, 이집트 관 등으로 작품들이 분류된 곳도 있었지만, 쿠바만의 색깔을 지닌 것들도 있어서 좋았다. 지금껏 가보았던 미술관(유럽과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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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다. 멕시코의 그 많은 미술관 중 몇 개를 골라 갔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곳은 워낙 많은 관람객들로 붐비고 긴 줄을 서야 해서, 엄두도 내지 않았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급 피곤해졌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시간이 맞으면 말레콘 해변의 노을을 봐야지. 정우가 추천해준 식당은 내가 전에 갔던 그 O'reilly 카페가 아니라, ‘304 O'reilly’였다.

과연 그런 데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O'reilly가를 걷다 보니 과연 그 식당이 나왔다. 작지만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2층 창가의 2인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의 요리가 몇 가지 칠판에 적혀 있었다. 랍스터는 20 쿡으로 비쌌다. 그래서 12 쿡짜리 오늘의 피시와 맥주를 주문했다.

먼저 맥주와 바나나 칩이 나왔는데, 벌써 그 맛이 예사롭지가 않다. 한참 후 등장한 요리는 플레이팅부터 다른 근사한 모습이었다. 맛도 정말 훌륭했다.


구운 생선이 정말 맛있었는데, 곁들인 매쉬드 포테이토, 하물며 당근 찜, 바나나 찜까지 고유의 간과 풍미가 배어서 환상적이었다. 식전에 나온 바나나 칩도 다 먹었는데, 한 접시 가득 나온 요리와 야채, 구운 파인애플까지 깨끗이 비웠다.


가격에 봉사료가 포함되어 15.5 쿡이었는데, 차마 그냥 나오지 못하고 웨이트리스를 위한 별도의 팁, 2 쿡을 두고 나왔다. 좀 후한 팁이긴 했다. 하지만 음식이 너무 좋았고, 게다가 꽃도 한 송이씩 나누어 주어서 꽃값이라 치자 싶었다. 이 꽃은 호스텔 안 주인 메이에게 갖다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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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착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다 어둑해질 무렵, 너무 추워하며 돌아왔는데 그녀가 따뜻한 티를 내주고 거기다 가족들이 먹는 뜨끈한 수프까지 한 그릇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이곳은 룸이 도미토리인 것만 빼면, 호스텔이라기보다 약간 까사의 느낌이 난다. 먹고 난 그릇도 절대 못 씻게 하고 자기네가 씻었다.


오늘도 과일을 사들고 갔더니, 할아버지가 쟁반이며 칼, 포크까지 다 챙겨주었고, 먹고 난 접시랑 포크도 바깥주인인 요세르가 자기가 한다며, 기어이 쟁반 째 뺏어갔다. 저녁에 돌아와 루프 탑에 올라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다시 내려오는데 어찌 알고 요세르가 올라와 문을 열어주고 불을 켜주었다.

티를 마시겠냐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생선 요리를 먹은 후라, 호스텔에 가면 따끈한 티 한 잔 마셔야지 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한참 후 메이가 쟁반에 티를 준비해서 올라왔다. 오늘 빵을 사두었다며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종일 못 마신 물을 보충이라도 하듯 한 주전자 째 티를 우려 마시고 있다. 메이와 요세르 모두 너무 잘해주고, 이 집 친척 할아버지도 정말 다정하다.


거리를 걷다가 그 할아버지와 마주쳤는데, 너무 반가워하며 내 볼에 입 맞추었다. 이 호스텔은 유흥은 없지만, 내게 아바나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다시 돌아온 아바나는 친숙하고 따뜻하고 활기가 넘쳤다.


어제 함께 도착한 룸메이트, 페프니는 독일인 비행기 승무원이었다. 너무 또박또박 예의가 발라서 아주 편하지는 않았어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아침에 내가 일찍 나서는 바람에 오늘 떠나는 그녀와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또 다른 룸메이트는 차이나 걸, 로즈. 비행기를 놓쳐버려 다시 표를 끊어야 했고, 그 비행기를 탈 때까지 이곳에 더 묵게 되었는데, 엄마에게 혼이 난데다 화난 엄마가 용돈도 끊어버릴지 모른다고 걱정이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여행했는데, 그는 기말고사가 있어서 먼저 캐나다로 돌아가서 혼자 남았다고 했다. 쿠바에 머문 지 한참 되어서 별달리 구경하러 돌아다닐 일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제 새벽 내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거의 날이 밝을 무렵에야 자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함께 돌아다닐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며칠 째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그래서인지 자꾸 그에게 여행 얘기를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그립다. 그의 모든 것이, 무엇보다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이 너무 그립다.


쿠바의 거리와 건물들은 무너져 가는 듯 보이지만, 오늘 호스텔 옆집에 있는 댄스 룸에 가보니, 겉은 그래도 속은 내실 있게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며 다른 집들도 다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겉모습으로만 판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 식당에서 식사하다 밖을 보니, 건물마다 한 단씩 작고 낮은 돌계단이 있는데, 쿠바인들은 모두 도로가 앞마당인 듯 그 단 위에 나와 앉아 있었다. 레스토랑의 주방장도 그 단에 나가 앉아, 잠시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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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하다. 다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것, 최대의 것을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은 이 호스텔 식구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뭔가를 사 오고 싶은데,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쿠바에는 워낙 파는 것이 없다. 케이크를 팔기는 하던데 그걸 사 올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