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뮌헨의 미술관으로

-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by Annie


우리 룸에는 낮부터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침대에 누워계신다. 아들하고 여행 중이란다. 사는 곳은 보르도, 바르셀로나 여행 후 뮌헨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라고 한다. 65~70세 정도 되어 보이는데 저 연세에 호스텔에 묵으면서 여행을 하다니, 좀 의외다. 더듬더듬 영어로 말하는데, 어쩔 땐 내 영어도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곳의 시설은 괜찮은 편이다. 특이한 것은 이곳 자물쇠가 종이 딱지 위에 새겨진 바코드라는 것. 신기하게 열린다. 아침 식사로 차려진 요거트는 마음껏 떠먹을 수 있게 나온다. 카푸치노 두 잔에 슬라이스 식빵 4개로 푸짐하게 먹고 빵 두 조각과 버터를 챙겨가지고 나오니 든든하다.


버스를 타는데 손잡이를 돌리려고 하니까, 옆에 있던 청년이 버스 손바닥 그림에 손바닥을 댄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문이 자르르 열린다. 이곳은 다른 관광 도시들보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데서나 뭘 먹기도 미안하고 떠들기도 미안할 것 같고, 노년층이 많이 눈에 띈다. 멋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여행 다니며 하이킹하는 노부부들도 많다.


피나코텍 미술관에 다시 갔다.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함께 듣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독일인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곳 미술관에 많이 있다.

방대한 컬렉션이다. 여기는 미술관 내의 의자에 끈 달린 책이 비치되어 있다. 독일어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다.


아우구스트 레델(August Redel)의 ‘유디트'는 유디트의 당당한 포즈와 얼굴 표정이 압권이다. 한 손에는 장검을 들고 한 손에 자기가 벤 적장의 머리를 든 위풍당당한 모습이 유디트를 그린 그림 중에 가장 영웅적인 풍모로 그려진 것 같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아름드리 위키 - 위키 독 (wikidok.net)에서 이미지 인용



르느와르의 붓질은 참 좋다. 풍경은 인간의 살갗 표현처럼 부드럽게 뭉개진다. 드가의 붓질도 그렇다. ‘다림질하는 여인’. 로트렉은 그냥 좋다. 방에 두고 보기엔 그렇지만, 미술관에서 만나는 로트렉은 항상 좋다.

고흐는 역시 멋대로다. 그의 그림에서는 나무 둥치도 코발트블루다. 모처럼 화사한 빛깔을 한 고갱의 그림 두 점을 발견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일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인 것 같다.


검은 재킷에 흰 바지, 금발을 단정하게 묶은 여성이 데려온 4~5세쯤 된 남자아이가 미술관 안내도를 들고 계단에 앉아 이리 보고 저리 본다. 귀엽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가자는데 아이는 안 가려한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도 저렇게 애들 데리고 미술관에 다녀야지.


구스타프 클림트 - 몽환적인, 늘, 그러나 좋다. 이렇게 생생한 그림들을 보다가 화집을 보게 되면 정말 짜증 날 것 같다. 눈에 담아 가고 싶은 그림들이다.

Leapold von Kakkeuth의 그림. 아기 손을 잡고 밤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 갸웃한 고개 앞의 얼굴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다른 곳에 대한 열망은 아닐까?


이제 그림이 좀 보인다. 가는 도시마다 그림의 특색도 보인다. 파리나 런던 미술관이야 워낙 종합 판이지만 베네치아, 피렌체, 뮌헨은 각기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의 분위기가 다르다. 이제 다시 오르세, 루블, 테이트에 가고 싶어 진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행복한 미술관 순례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루체른에서 끊겨버린 스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