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츠부르크에서 홍수를 만나

- 마흔의 내가 나에게 선물한 유럽여행, 2002

by Annie


화사한 잘츠부르크를 기대했었는데, 뮌헨처럼 여기도 비가 오나보다. 잘츠부르크까지 역 하나를 앞두고 기차가 더 이상 진행을 못한다. 홍수로 선로가 물에 잠겨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단다.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여행자들은 엄청 많았다. 버스 정류장에 무리 지어 함께 기다리던 우리는 그곳이 정류장이 아니라는 말에 또 다른 곳으로 떼 지어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 버스 기사의 말로는 길도 물에 잠겨서 다리가 경찰에게 봉쇄되었다고, 그래서 버스는 다리 앞까지만 운행을 할 거라고, 승객들은 다리 앞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또 우우 몰려서 역 앞으로 돌아왔는데, 오늘 중으로는 가기 힘들 거라고 한다. 할 수없이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려는데 역무원이 달려와서 말하기를, 버스가 다른 길로 돌아서 운행을 한다고 한다. 역에서 마련해준 버스에 여행자들이 가득 탄 채로, 버스 안은 야단법석이었다.


기차에서 만난 흑인 흑인 여성은 어린 아들과 유럽 여행중이었는데 무척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빗속에 걸으면서 그들에게 우산도 씌워주고, 가방도 들어주며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잘츠부르크에서 내려 걷고 있는데 택시가 빵빵거려서 비켜섰더니, 그 모자였다. 꼬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의 엄마는 창문을 열더니 나더러 타라고 했다. 호스텔에 가는 길이라고. 난 호스텔에 안 간다고 했더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간다. 함께 사진이라도 찍었더라면 좋았을 걸. 아들은 안경을 낀 귀여운 꼬마였다.


나는 미라벨 정원을 지나 구시가로 향했다. 구시가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아뿔싸! 다리도 봉쇄됐다고, 경찰이 저 아래 두 번째 다리로 가랜다. 그래서 또 걸어 걸어 두 번째 다리에 갔더니 거기도 봉쇄되어있었다. 관광객들은 못내 아쉬워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강가에 서서 맞은편을 쳐다보고 있다. 나도 강 이쪽에서 언덕 높이 솟아있는 성인지, 수도원인지 모를 뾰족한 건물을 바라보다, 그것이 잘츠부르크 성이라는 것만 알고는 발길을 돌렸다.


강 바로 옆에는 산책로가 있는데 그 옆을 지나는 강물의 위세가 무척 위협적이다. 비가 좀 심각하게 내렸나 보다. 시내 은행 건물에서도 사람들이 호스로 물을 뿜어낸다. 가족여행을 하는 그룹중에 어린애들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팀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이쁘다.


뮌헨행 기차의 텅 빈 콤파트먼트에서 어젯밤에 산 빵에다 버터를 발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남는 것을 보니 무지 큰 빵이긴 하다.


뮌헨으로 돌아와 숙소에 들렀는데, 그곳 라운지는 외국인들로 가득 차서 지네들끼리 신나 있었다. 그냥 나와서 시내 구경을 좀 할까 하다가 할인점이 있다길래 들어가서 먹을 걸 잔뜩 샀다. 3유로 정도 남기고. 그게 무거워서 다시 숙소를 들어갔는데, 그때까지도 외국인들이 안 나가고 있어서 다시 나왔다. 남은 3유로로 인터넷이나 해야지 하고 로비에 앉아 있는데 한국인 학생이 지나간다.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 얼른 가서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낮에 만난 일행과 함께 맥주 마시러 간단다. 잘됐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현금 인출기에서 10유로를 인출해서 그들과 함께 로벤 브로이에 갔다. 호프 브로이의 떠들썩함과는 달리 차분한 곳으로 관광객들이 아닌 그냥 독일인들, 젊은이들이 아닌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직장인들이 고객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은 호프브로이의 느낌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나름 즐거웠다.


숙소에서 만난 그 학생은 고대 영문과 대학원생이었고 영어도 잘했다. 다방면에 고루 지식이 풍부했고 지금까지 만났던 대학생들 중 제일 박학했다. 두 여학생 중 한 명은 참 착하고 밝았다. 내 얘기에 더러 감탄의 표정을 보이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내 팔짱을 끼고 걸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해서 사진도 찍고 이메일 주소도 돌려 적었다.


내가 잘츠부르크에서 폭우 때문에 그곳 특유의 환한 모습을 못 본 것에 대해 그녀는 애통해했다. 나는 그래도 재미있었노라고, 평상시 그곳의 예쁜 모습은 언제라도 다시 가서 볼 수 있겠지만, 잡풀이 뭉텅이로 떠내려 오고 황토색 물살이 위협적으로 흐르는 잘츠부르크의 강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의 시각이 정말 다르다며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침에 로비에서 그 여대생이 나가고 있길래, 불러서 주스와 모차렐라 치즈, 맥주 한 캔을 주며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그 세 명은 오늘 함께 퓌센에 가기로 했단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중에는, 막 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있어도 주기 싫은 사람이 있다. 어제 만난 이 학생에게는 아낌없이 주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뮌헨의 미술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