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이 다 똑같지는 않을 테지만, 들여다보면 그 줄기는 비슷한데 저마다 디테일들이 다를 뿐인 것 같다. 비슷한 유년기를 겪고 모순되는 자아가 충돌하는 청소년기를 겪고 성년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이어지는 삶 가운데 한 단계씩 뛰어오르게 되는 변화의 지점들이 있고 그 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또 자잘하게 많은 것들이 변화하게 된다.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의 주인공 루시와 그녀의 엄마를 보면 그 안에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보인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드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단계마다 얻게 되는 깨달음이나 시기마다 겪게 되는 삶의 양태를 보면 그들의 삶 또한 큰 틀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실 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루시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슬픔이란 없는 그저 동화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엄마는 키우던 금붕어가 죽으면 금붕어가 산호초에서 살고 싶어 떠난 거라고 딸에게 말한다. 또 키우던 강아지 도로시가 떠났을 때도 도로시는 염소 떼를 지키는 개가 되고 싶어 떠났다며 그가 먼 곳에서 쓴 것처럼 루시에게 엽서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는 슬픈 현실마저 아름답게 포장해 버린다.
루시가 스무 살 성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암에 걸린다. 그러나 엄마는 이를 숨기고 딸을 바깥세상으로 내보낸다. 아마도 막 자기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딸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무렵 펠리니의 영화에 푹 빠져있던 루시는 그동안 자신의 세계였던 엄마와 집을 떠나 펠리니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떠난다. 성년이 된 자녀들이 모두 그렇듯이 자기의 꿈과 삶을 찾아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 제목에도 등장하는 펠리니는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을 5회나 수상한 영화사에 빛나는 거장, 바로 그 페데리코 펠리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의상, 소품 등 그에 대한 오마주들이 가득하다. 또한 베로나, 베네치아, 로마 등 이탈리아의 풍경들과 함께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면서 화면에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엄마가 보여주던 세계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선 루시는 행선지였던 로마로 가지 못하고 짐 가방도 잃어버린 채 엉뚱하게 베로나로 흘러든다. 갓 세상 밖으로 나선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루시는 순진무구한 자신을 노리는 많은 위험들을 줄타기하듯 통과해 나간다. 때로는 잘 피하면서, 때로는 한쪽 발을 삐끗하면서. 그러다가 그곳에서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미지 출처 : 펠리니를 찾아서 | 다음영화 (daum.net)
이미지 출처 : 펠리니를 찾아서 | 다음영화 (daum.net)
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의 사랑 안에 머물기보다 그녀가 추구하는 꿈, 펠리니를 찾아 계속 나아가야 했다. 로마로 떠나는 루시에게 그 남자는 말한다.
“나의 펠리니는 너야.”
그에게 루시는 그가 안착하고 싶은 그의 펠리니, 그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두발을 딛고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는 루시에게는 그 남자 너머에 있을 세상이 궁금하고 아직은 한 곳에 머물 때가 아니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펠리니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난 루시는 이번에도 로마에 가지 못하고 베니스로 흘러든다. 베니스는 베로나보다 더 위험한 곳이다. 베로나가 그나마 그녀의 순수함을 인정하고 지켜줄 수 있는 곳이었다면 베니스는 사람들의 욕망과 악이 들끓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사람에 대한 믿음도 잃고, 그나마 있던 작은 손가방도 잃고, 입고 있던 코트마저 잃은 채 얇고 늘어진 옷차림으로 차가운 거리에 내몰린다. 그녀의 마음도 그 옷처럼 얇아지고 늘어진 채로.
이미지 출처 : 펠리니를 찾아서 | 다음영화 (daum.net)
삶은 때로는 무방비 상태의 우리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상처받은 우리를 조롱하고 야유를 퍼붓는다. 모든 것을 잃고 남루해진 그녀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은 펠리니를 찾아 로마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간에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지체해 버려 펠리니와 만나기 어려워진 루시에게 펠리니는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보지만 실은 그것이 아주 가까이에 있을 수 있어.”
펠리니를 열망하는 루시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가진 돈도 없는 그녀는 히치하이킹으로 어렵게 로마에 도착해서 펠리니의 집 앞에 서게 된다. 그의 집 문을 두드리는 루시는 과연 그곳에서 펠리니를 만나게 될까?
헐벗은 루시가 펠리니의 집 앞에서 마주하게 된 사람은 환한 햇살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펠리니였다. 그와 함께 햇살 가득한 식당에서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옆 테이블의 사람들과 미소를 나누는데, 앞에 앉은 펠리니의 얼굴이 이내 베로나에서 사랑에 빠졌던 그 남자의 얼굴로 바뀐다.
그때 티브이에서는 2주일 동안 혼수상태에 있던 펠리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 방송이 나온다. 그녀가 펠리니의 집 앞에서 마주하게 된 사람은 펠리니가 아니라 펠리니의 환영인, 베로나의 그 남자였던 것이다. 결국 루시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루시의 진정한 펠리니는 그 남자였던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너무 안일한 엔딩이 아닌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루시가 그렇게 힘들게 찾아 헤맸던 삶의 목표와 의미, 펠리니로 상징되었던 그것이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꿈꾸던 것을 결국 찾게 될까?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 어느 곳으로 흘러들고, 주변 사람들과 상황 안에서 소용돌이치다가, 그 소용돌이가 잦아드는 어느 지점을 만나면 그곳에 안착하게 될까? 그렇게 안착한 곳은 그들이 꿈꾸었던 것과 얼마나 가까울까? 펠리니는 우리 모두의 꿈일까, 아니면 신기루일까?
인생은 저마다의 펠리니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다양하고 풍부한 디테일들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엮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펠리니는 그곳 어딘가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펠리니의 어떤 영화 속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존재하는 목적이 있어. 이 돌도 그렇고 저 별도 그렇지. 너도 그래.”
그의 말처럼 자기 존재의 목적을 깨닫는 순간이 각자의 펠리니를 찾게 되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