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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10. 2021

-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 스페인과 포르투갈



  한 달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쉬운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사람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과 다 뜻이 맞아 어우러질  수는 없는 법이지만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서, 때로는 오만하여, 다가가지도, 나를 열어보니 지도 않았던 적이 많았다. 



바르셀로나



  그래도 여행지에서의 내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유롭고 사교적이었던 것은 큰 발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그 분위기가, 나의 전 직장에서처럼 나를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 안에 잡아두는 무엇이 있었다. 당장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도, 모기만 한 소리로 인사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그 어색한 분위기에 스스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의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강한 나의 자의식 때문인지 모른다. 봄이만 봐도 그렇지 않은데. 봄이는 작고 낯선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조차도 밝게 만들어 버린다. 특유의 밝고 가벼운 톤으로 인사하고 애들이 탈라치면 항상 너무 이쁘다고, 너무 귀엽다고 감탄한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여행 중에 마주친 사람들에게 했듯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말 거는  것부터 잘해봐야지. 


  다음은 언어 문제다. 언어는 사람을 어디까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정말 중요한 척도가 된다.

  사실 나 정도의 영어 구사력이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데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보통의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언어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낀다. 


  내가 사람들의 말을 보다 완벽하게 알아듣고 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망설임 없이 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을 대하는데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그만큼 더 깊이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하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그들과 더 깊고 넓게 얘기를 나누는 데는 분명 제한이 있었다. 

  


바르셀로나



  또 한 가지는, 탐험 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름 이 여행도 파격적인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헐거운 부분들이 있었고, 좀 더 속 편하고 몸 편한 쪽을 택해버림으로써 놓친 것들이 있었다. 

  첫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에서, 그리고 비행기 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포르투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던 것. 톨레도에서도 하루 정도 일정을 단축했더라면, 대신 마드리드에서 하루를 더 보낼 방법을 찾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문제는 한 도시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게을렀다고 해야 맞다. 아니 한 달의 여행 일정에서 그 정도 쉬어가기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해 스스로 위로하는 말일뿐이고, 만일 그 휴식이라고 할 시간을 흥미진진함으로 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았더라면, 난 몸의 피로가 따르더라도 기꺼이 그쪽을 택했을 것이다. 



포르투

 


  이번 여행에서는 유심카드를 사지 않아 구글 맵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길을 찾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가는 도시마다 호스텔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호스텔은 택시 운전자조차도 잘 모른다.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많고 대부분 유쾌한 기억들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 혼자 모험에 나서는 데는 장애가 되곤 했다. 그래서 아예 첨부터 엄두를 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리스본에서 밤에 호스텔을 찾을 때 친절하게 문 앞까지 에스코트해 주었던 중년 신사, 마드리드에서 자정이 다되어 택시를 탔을 때 호스텔을 찾지 못한 택시 운전사가 택시를 한쪽에 세워두고 함께 찾아 나서 준 것, 톨레도 대성당 근처 가게 아저씨는 메모지와 펜까지 동원해서 스페인어로 열심히 길을 설명해 주었지만 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하지만 어쨌든 바디 랭귀지를 통해 결국 호스텔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귀국 직전 바르셀로나에 다시 들러야 했는데 착오로 엉뚱한 호스텔을 예약해 버려 찾느라 고생했을 때, 이 호스텔에서 반드시 좋은 일이 있어야 한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었던 것, 그래서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기 때문에 알렉스와 함께 풍성했던 마지막 이틀 등. 

  이런 귀한 경험들은 나에게 구글 맵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었던 좋은 일들이었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서 계획이 어그러지는 곳에 항상 큰 행운이 따르곤 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계획하지 않았거나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내게 더 큰 경탄과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아니 내게 그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남다른 순발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글 맵이 정말 편하고 그 필요성을 이 여행에서 통감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없음으로 해서 내게 주어졌던 돌발적인 행운들이 얼마나 근사했던가.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이번 여행에서처럼 구글맵 없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여행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쉬운 길인, 구글 맵을 선택할 것인가.

  몸은 편하라고 하는데 정신은 불편을 감수하라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이 감탄하고, 더 많이 놀라고, 더 많이 즐거워하라고 한다.


  호스텔 생활은 불편하고 고달플 때도 많다. 밤이면 지친 몸을 누이고 혼자서 여유롭게 피로를 풀고 싶기도 하다. 일정을 짜고 호스텔 검색을 하고 버스나 기차 예약을 하고 이런 모든 과정들이 복잡하고 힘들게 여겨질 때면 그냥, 패키지여행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은 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편하려면 집에 가만히 있어야지. 다행히 난 편한 여행을 할 만한 돈이 없다.


  마지막 하나, 택시에 돈들이지 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자. 바르셀로나에서 공항으로 이동할 때, 공항까지의 거리가 멀고 이른 아침의 러시아워였다.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을 두 번씩 갈아타며, 많이 걷기까지 해야 하는 조건이라 택시를 타긴 했지만, 60유로 가까운 택시비를 내며 정말 아까웠다.

   조금 더 보태면 포르투에서 마드리드까지 가는 저가 비행기 티켓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니까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은 변명일 따름이다. 3유로면 끝날 일을. 비용과 관련해서라면 구글맵이 택시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이번 여행이 라오스 여행을 넘어설 수 있을까? 떠나기 전에 이것이 하나의 의문이자 과제이기도 했었다. 결론은 Absolutely (완전 넘어섰음)였다. 기간도 각각 2주와 한 달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스케일이나 다양성, 모험의 강도 등에 있어서도 그랬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어디를 가든, 낯선 사람을 만나도  흔연히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포르투



  여행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거기에 임하는 태도와 마인드가 그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이 여행에서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컸던 것은 일상에서 나를 괴롭히던 집착, 그로 인해 한없이 작아지고 좀스러워지며 스스로를 갉아먹곤 하던, 그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마음도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커진 마음 때문에, 조금 넓어진 시각 때문에, 조금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어떤 것이 내 생활과 마음속에서 90%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다쳤을 때,  몸과 마음이 얽매여서 일상이 온통 암담해지곤 했었다. 이제는 30에서 80% 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하여 현재를 더 즐기고 미래를 보다 다양하게 설계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의 세계가 넓어짐으로써 나를, 애들을, 주변 사람들을 가두거나 닦달하지 않고, 그냥 내 삶을 돌보는데 나의 에너지를 더 쏟게 된 것. 이것들이 내가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참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10에서 100%까지를 진정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다음에, 또 그다음에도 내가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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