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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9. 2021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생긴 일

- 바르셀로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다음날 암스테르담과 북경을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떠났다. 화물을 부치려고 하는데 직원이 이-티켓을 보더니, 암스테르담에서 갈아탈 때 짐이 자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니까 짐을 찾은 후에 다시 탑승수속을 하라고 했다. 암스테르담까지는 자기 항공사이지만, 거기서부터는 중국 남방항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 때도 서로 다른 항공기로 경유지들을 거쳤지만, 그때는 화물이 자동으로 옮겨져서 그런 번거로움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내려 북경행 비행기로 갈아탈 시간이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비행이 지연되지 않고 제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가능할 거라고? 안될 수도 있단 말인가?’


  만일 시간이 촉박해서 다음 비행기를 놓치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그곳 직원이 도와줄 거라고 했다. 뭔가 개운치 않았지만 직원이 그렇다면 그렇겠지 하며 돌아섰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그 직원이 말한 것처럼 짐을 찾아 다시 탑승 수속을 하러 갔다. 혹시 시간이 부족할지 몰라 화장실에도 들르지 않았다. 


  화물을 부치러 갔더니, 그곳 직원이 이 비행기 화물 수속은 이미 마감이 됐다며 부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한 젊은 여직원을 불러서 뭐라 지시하고는 그녀를 따라가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고객센터로 데려가더니,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아니 비행기 출발 시간이 30분도 안 남았는데 언제 번호표까지 뽑고 기다리느냐고 했더니, 그녀가 또 다른 직원에게 무어라 물었다.


  그러더니 창구 직원들이 도와줄 거라고 여전히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내 번호표에 해당하는 줄만 번호가 줄지 않을뿐더러, 담당 직원도 표정이 유난히 경직되어 있어서 불안했다. 기다리다 못해 결국 대기 손님이 없는 다른 창구에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그럼 저쪽에 남방항공사 데스크가 있으니 거기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한 곳에 갔더니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옆 다른 항공사 데스크에 동양인 직원이 보여서 그녀에게 물었더니, 남방항공 직원들은 오늘은 안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 번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해보고는 내게 두 가지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새 티켓을 구입하든가, 아니면 내일 아침 10시 30분까지 이곳으로 다시 오라고.


  ‘뭐라고? 이건 내 실수가 아닌데 내가 왜 티켓을 새로 사며, 낼 아침에 오려면 여기서 하루를 자야 한다는 건데 그럼 그 비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들이었다. 내가 자세한 사정을 말하자 내 티켓은 수화물이 바르셀로나부터 한국까지 연동되어 있어서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화물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고, 바르셀로나에서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 직원의 실수이니 네덜란드 항공사에서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 다시 그 창구로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좀 전에 그 경직된 표정의 창구직원에게 가서 아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번호가 지나버려 다시 뽑았다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냉정하게 이 번호표의 순서를 기다리라고 했다. 다시 청해보려 했더니 더욱 경직되고 화난 표정으로 기다리라고 했다. 도저히 고객을 대하는 직원의 태도라고 볼 수 없고 마치 난민을 대하는 공무원 같은 태도였다. 

  마음속에선 이미 나쁜 말이 발사되었다. 모멸감을 참으며 기다리다, 다행히 내 번호표는 가운데 유능해 보이는 직원과 연결이 되어 상담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라고 미안하다며, 오늘 밤에 서울로 가는 직항이 있는데 그걸 타겠느냐고 했다. 북경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도착 시간이 더 빠르고 갈아타야 할 번거로움도 없었다. 내가 거듭 고맙다고 하자, 자기들이 오히려 미안해야 할 일이라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옆 창구 직원한테 받았던 수모가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 직원에게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잠자코 내 순서를 기다렸어야 할 일이었다.  


  수화물을 부치고 나니 밤 비행기 출발까지는 5시간 정도 남았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짐을 부친 후 암스테르담 시내까지 나갔다 올까 했지만, 일단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라운지에서 뭘 좀 먹고 정신을 차리자 싶었다. 간단한 스낵을 먹고 나서도 공항 라운지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공항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도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었다. 검색대 통과 등의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잡았을 때, 내게 1시간 조금 더 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 버스를 타는 거야.’

  돌아 올 30분을 남기면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탔는데 풍경이 참 좋다. 큰 호수와 숲을 지나서 아담한 마을이 보였고, 작은 도랑들에는 한가로이 보트들이 떠있었다. 20분쯤 지났을 때 역시 도랑이 보이는 다른 마을의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몇 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인지 기사에게 물었더니 20분 간격이라고 했다. 맞은편 도로에 내가 탄 버스와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지난 걸로 보아, 내가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딱 20분인 셈이었다.







  개울가에서 한 젊은 청년이 보트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그 옆에 진갈색 강아지 한 마리가 돌아다니다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었다. 난 씩 웃으며 그들을 지나쳐 마을 공원인 듯싶은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너른 풀밭이었다. 개울은 그곳까지 이어져있고 그 위로 오리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축구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역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축구장이 연이어 세 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연이어 3개, 그렇게 나란히 여섯 개나 있었다. 이건 삶의 차원이 다르다. 이런 데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금방 시간이 흘러서 버스 올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 탑승까지 정말 레고 맞추듯이 시간이 딱딱 맞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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