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영감, 그 사이에서 건강하게 생각을 채우는 방법
창작물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영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좀처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신선한 생각에 굶주리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엔 핀터레스트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먹음직스러운 타인의 작업들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구한 자료들을 너무나 간편하게 저장해 놓고 맛본다.
그런데 만약, 간편하게 레퍼런스를 구할 수 있는 핀터레스트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급하게 포스터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만들지 고민하던 중에 참고자료를 찾기 위해 핀터레스트를 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이트가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뇌가 정지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마감 시간이 다가와 결국 얼레벌레 진땀을 빼며 시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당연하게도 휴지통에 버려졌다. 나는, 내가 레퍼런스가 없으면 간단한 디자인 하나 못하는 사람인 줄 전혀 몰랐으며 남의 생각을 빌려오지 않으면 괜찮은 작업물 하나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 사건 이후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 후 편입을 결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 ‘핀터레스트 다이어트’를 한다. 말 그대로 핀터레스트를 통한 자료 수집을 천천히 줄이고 모니터 밖에서 얻은 영감들로 자신을 채워 디자인 주관을 키우는 것이다. 당연히 쉽지는 않다. 아이디어가 허기질수록 자극적이고 화려한 레퍼런스를 탐하고 싶어진다. 매번 수많은 실패들을 겪는다. 하지만 비록 오늘 실패하더라도 계속, 계속 천천히 줄여나가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신선한 영감들로 생각들을 채워 나가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건강하게 생각들을 채우고 또 그것들을 얼마나 건강하게 소화시키고 있나. 간편하게 얻어온 타인의 생각들은 온전히 나의 영감이 되기 어려우며, 급하게 얻어와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는 인스턴트 아이디어는 스스로를 체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결국 모방과 영감을 구분하는 힘은 사라지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물들은 ‘표절’이라는 속 쓰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때로는 이 간편함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남길 것이다.
4월, 날씨가 따뜻해지고 거리의 들꽃에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꽃은 자신이 심어져 있는 화분의 크기에 따라 그 성장이 달라진다. 가끔은 모니터를 덮고 주위를 둘러보자. 방 안에 어질러진 볼펜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당신에게 반갑게 손 흔들며 영감을 줄 것이다. 고작 15인치짜리 화면 안에 자신을 심어 두기엔 우리의 가능성은 너무 크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