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밀려오는 파도가 잘 보인다. 비록 하늘은 어둡고 짠 내와 미세먼지가 섞인 바람이 불지만, 김녕에서 풍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천천히 돌아가고 싶어 진다. 쟤들은 매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가는 풍경을 늘 마주 하니까.
작년 11월에 왔던 곳이 맞는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간이 가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장소라도 분위기는 달라진다. 장소도 달라지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매우 다르다. 다른 게 나쁜 쪽일지, 좋은 쪽일지는 잘 모르겠다.
<비밀의 정원>이란 프로그램에서 돈스파이크는 이해는 결코 할 수 없는 부분이니 인정한다고 했다. 요 근래 나에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생각이 없다. 이해를 포기한 건 왜일까? 화가 나서 일까? 존중받지 못해서 일까?
나는 여전히 분노한다. 담아두지 않으려 해도 계속 떠오르는 건 아직 분이 덜 풀려서라고 말하고 싶다. 나쁜 경험 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건 절대 '경험'이라 부르기 싫다. 겪지 않아도 될 사건이었다. 긍정을 이해하는 걸 포기하지는 오래됐다. 어차피 난 긍정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어 가까이 갈 수 없다.
자라면서 유연성은 자리를 감춘다. 점점 닫히고 고착된다. '나'라는 인간의 견고한 성이 세워진다. 우리는 사회에 속해있기 때문에 변화하기보단 타협한다. 그들이 원하는 자아를 가진 척 연기하여 살길을 찾는다. 긍정을 원하는 사회에게 긍정이란 연기를 할 수 없는 건, 더 이상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이런 말들을 내뱉는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못 박는 것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