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지난 주 월요일 오후 6시 26분. 월요일부터 야근을 해야 했던 불쌍한 나는 요새 라디오 방송에 빠져 있다. 많이는 아니고 딱 하나, 저녁 6시~8시에 하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구형 회사 차를 끌고 다니다 보니 블루투스로 음악을 켤 수 없어, 29년 인생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 2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버스 조수석, 자가용 차 조수석에 앉기 좋아했던 나지만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인 적은 물론이요 자가용 차의 라디오 방송을 켜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라디오 방송에 사로잡혀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그 라디오 방송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시작 후 약 20분 경이 지나 진행하는 음악 퀴즈 때문이다. 음악 퀴즈를 맞추면 1등한테는 꽤나 큰 선물을, 나머지 몇 명한테는 커피 쿠폰을 준다. 여름에는 워터파크 입장권, 11월에는 리조트 입장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달 동안 별 생각 없이 라디오를 들으며 회사 차를 몰던 내가 언제였는지 메시지를 보낼 번호를 헷갈려 정말정말 아깝게 1등 당첨의 기회를 놓친 이후(물론 다른 사람이 들으면 보내지도 못했으면서 뭘 아깝다 타령이니 말한다), 오기가 들어 한 번이라도, 커피 쿠폰이라도 좋으니 당첨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 월요일, 야근을 하며 방송을 듣던 도중 오늘따라 당첨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약 2분 정도 업무 시간을 써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키만큰 님, 축하드립니다! 커피 쿠폰 드리겠습니다!'
하는 DJ의 당당한 목소리가 라디오 너머로 들렸다. 그 날, 나는 집에 가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부분을 다시 듣기로 몇 번이나 들었다. 마치 얼마 전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전에서 황희찬 선수가 결승골을 넣은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봤듯이.
당첨된 직후에는 몰랐지만 집에 와 그 부분을 다시 들으니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이름 석자를 방송에서, 한 자 한 자 친절하게 불러주다니. 그것도 웃으면서! 온몸이 오그러져 괜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 있는 나의 모습이 베란다 창문에 비추어져 있었고 나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순간의 나는, 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웃음이 더 터져나왔다.
'당첨된 그 순간부터 나는 순수한 영혼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맞은 편의 신입 직원이 나를 쳐다봤다면, 필히 저런 사람이 내 사수라니 라는 생각에 그만둘까 하는 충동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가림막에 감사하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저런 웃음을 지을까 싶은 사람들. 난 최근들어 제대로 웃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에 미소를 지으니 안면 근육이 하지 않던 행동 왜 지금에서야 하냐라고 따지듯 떨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당첨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순수한 웃음이 나왔을까. 내 이름 석 자를 누군가가 그렇게 따뜻하게 불러줬다는 그 사실에 감동을 받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커피쿠폰을 받아서 5천원을 아꼈다는 다분히 경제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몸의 부가효과였을까.
오늘날은 웃음을 잃은 사회라는 표현을 많이들 한다. 나 역시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하루, 이리저리 차는 인간들, 고공행진하는 물가 속에서 웃음을 잃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웃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통에, 잠시 감춰졌을 뿐이다. 우리 스스로는 웃음을 감출 수도 있지만 웃음을 들출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