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와 함께하는 스트레스 인터뷰 1
고민은 항상 내 안에만 맴돈다. 심사숙고하여 답을 내려도 그게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후회할까봐 선택을 번복하기도 하고, 남들을 통해 내 생각이 옳다는 걸 확인받고도 싶어 한다. 학생 때나 할 줄 알았던 진로 고민을 서른 중반의 성인이 되어서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요즘은 사춘기 때보다 더 요란한 내적 방황을 겪고 있다.
기분 전환도 하고 새롭게 진로 탐색도 할 겸 취미활동 앱을 뒤적이다, 눈에 쏙 들어오는 활동이 하나 있었다. ‘한의사와 함께하는 스트레스 인터뷰’ 이게 어떤 활동인지는 활동 소개 글에서 짧게 따오겠다.
‘고단한 나의 삶과 힘겨워하는 나의 몸을 통해 인터뷰하듯 차분히 마주하는 마인드 액티비티’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내가 왜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데 당신은 그게 마음처럼 되냐고 되묻고 싶어질 때가 많다. 개개인에 맞는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일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먹는 행위나 활동적인 취미, 운동 등으로 해소하는 게 과연 효과적인 방법일지 의문이 들었다. 다시 일터에 가면 말짱 도루묵인데.
이 인터뷰는 왠지 답을 알려줄 것 같았다. 그동안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나 했지, 스스로 인터뷰이가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가족도, 친구도 아닌 생판 초면인 한의사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니. 다신 볼 사이가 아니니까 내 속에 있는 어떤 고민도 거리낌 없이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결제하고 예약을 확정했다.
한의원은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있었다. 3호선 매봉역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그곳은 예전 EBS 본사가 있던 자리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나름 열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30초짜리 예고 한 편 만드는 데도 며칠 밤을 샐 정도로 욕심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뚝심 있게 이어나가지 못하는 내 탓인 것 같아 잠깐 울적해지기도 했다.
눈물이 날 뻔한 걸 간신히 참고, 한의원에 들어갔다. 마치 카페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내부 공간. 나와 같은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많았는지, 한의사는 ‘카페처럼 생겼지만 한의원 맞습니다’라며 차분하게 맞이해줬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내 안에서만 맴돌던 고민거리를 다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이 일이 재밌고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남들에 의해서 방향이나 일정이 좌지우지되는 게 싫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쭉 겪었던 일이지만 잘 참았어요. 근데 요즘에는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아서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스트레스 받아요. ‘왜 이런 것도 못하지?’ 싶어서 불쑥불쑥 화가 나요. 그래서 이 일을 더 이상 하기 싫어요.”
스트레스 받았던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저절로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났다. 이야기를 하다 우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한의사는 별말 없이 티슈를 건네주고 말을 이어나갔다. 한의사는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일들이 ‘다른 직종에서도 무수히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했다. 내가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못 참는 내가 문제인가? 참고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이런 말을 덧붙여줬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건 시간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버리는 시간이 제일 아까운 것’이라고. ‘스스로 이미 답을 내린 것 같다’며,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했다. 당장 일을 그만두면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비싼 시간을 매일 버리는 것보단 낫다고 말이다.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을 눈치껏 해준 걸 수도 있지만, 듣고 싶은 말을 들어서 힘이 됐다. 답정너가 고민을 털어놓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옳은 결정인지 아닌지 확신은 없지만 이미 마음은 기울었고, 그 선택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고, 스트레스를 다스리기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 자신을 스트레스 상황에서 아예 떼어놓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된다’,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젠 일을 그만둔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다. 한의사는 상담 전 설문지를 통해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은 무엇인가요?’ 나는 ‘가을’이라 답했고, 새롭게 펼쳐갈 내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