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이틀 전 이웃에 사는 친구로부터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극세사 수건을 하나 받았다. 하루쯤 지나 이걸 찾으니까 어디 있는지 없다. 뭘 하든 써보려니 없어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던 차에 아침약을 먹으려고 약선반을 열었더니 그곳에 가지런히 개켜져 있다. 분명 남편이 넣어두었을 것이다. 아무 투정도 하지 않고 가족 중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으로서 책장 선반을 닦았다. 그것만 닦아도 반짝이는 선반의 나무가 집안 분위기를 살려 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작이 반이랬던가. 기타 치는 연장 피크 하나를 길에서 줍거나 누구에게서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을 기점으로 기타도 사고, 기타 교본도 사고, 학원에도 가고, 거기서 친구도 사귀고, 잘 치다 보면 공연도 하러 가게 되기도 할 수 있겠다.
그런 것처럼 극세사 수건 한 장 만난 후로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간에 허리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로봇 청소기가 다 해준다는 이유로 방치했던 소파밑. 침대아래. 장롱 구석구석. 책장 바닥의 틈새들. 냉장고와 주방사이. 그리고 장식장에 쌓인 우유를 쏟은듯한 먼지 그런 게 온통 극세사 수건을 만나야만 했다. 제일로 창피한 부분은 화초들이 살고 있는 화분 근처와 바로 옆에 자리한 책꽂이 아랫칸에서 거미줄을 발견했을 때이고, 거기다 거미줄은 그냥 생기나 했는데 닦아내다 보니까 이를 눌러 잡는 느낌의 무엇인가가 있어 자세히 보니까 그것은 작은 거미였다. 생것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종교도 있지만, 거미를 그냥 두기는 아닌 것 같아 이내 박멸하였다.
하루는 이렇게 끝냈다. 고단하니까 영화나 보면서 쉬었다. 비누 칠해 깨끗이 빨아 샤워실 유리에 걸어 두었던 극세사 수건은 자꾸 눈에 띄었다. 드디어 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적당히 스트레칭을 해도 가족 중에 일등이라 평소 잘 정리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침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문갑. 장식장. 즐겨 보기만 했던 티브이. 장롱문. 우리 창틀. 화장대를 순서 없이 다 닦아냈다. 수고의 덕분이겠지만, 지금 모르긴 해도 집안에 최소한 거미줄은 없는 것 같다. 음 다행.
이 집에서 산지 20년째다. 처음 이사 와서의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곳저곳 작게 작게 고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도배도 하며 살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폼은 유지하고 있지만, 불량한 청소상태는 집에 오는 좋은 기운을 죄다 막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한파가 얼추 지나가면 주방창문 교체작업을 해야겠다. 창틀사이의 찌든 곰팡이가 늘 바라보는 주부인 나에게 먹색의 맘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문득 집이건 사람이건 사람 마음이건 간에 그 어떤 것이더라도 조금씩 매만지고, 다독이고, 손 보고 그러면서 살아갈 일이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극세사 수건 하나가 단초가 되어 설날 이후로 환해져 가는 우리 집의 분위기는 내 맘과도 닮아져 있다. 수건 세 개라고 이웃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준 그 친구가 참 귀하게 여겨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