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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ug 09. 2019

그래도 40배는 좀 심하잖아요.

그와 나의 임금격차 이건 나의 열폭 일기 


드라마 일을 하면서 가장 현타 오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떠오르는 한 순간이 있다.



작업실에서 작가들과 함께 대본 회의를 빙자한 티타임을 갖고 있을 때였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였고 모두 지쳐있을 때였다. 시청률도 생각보다 나와주지 않았고 여러 외부의 압박(매거진 이전 글을 참고하시면 좋아욧)에 시달리면서 이걸 계속 가니 마니 하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 A작가가 이런 말을 꺼냈다.

"그래도 한 달만 버티면 끝나고 돈도 들어오고... 조금만 힘내죠? 끝나면 푹 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으쌰으쌰가 필요했기에 그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현타가 왔단 말입니다.


혼자 있고 싶어 졌다...



나는 이분들의 페이를 다 알고 있었다. 계약서 검토를 했으니까 회당 받는 금액, 계약기간 다 알고 있을 수밖에. 그중 A작가는 특히나 좋은 케이스였던 것이 이 드라마가 편성이 나고 급하게 투입되었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딱 3개월의 기간이 그의 고용조건이었다. 기획도 이미 되어 있었고 1,2회 대본도 나와 있고 편성까지 된 상태에서의 투입이었다. 더럽게 힘들어도 3개월만 버티면 대기업 직원 연봉 몇 년 치를 벌어갈 수 있기에,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거다.



물론 모든 작가가 이런 케이스는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저렇지 않다. 작가가 계약으로 묶인 이후 드라마의 방영이 끝날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A작가는 3개월 일하고 돈을 받아가지만 함께 일한 B작가는 이 드라마의 기획부터 시작해서 3년이 넘게 이 드라마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 같은 돈을 받더라도 B작가는 일한 기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사실 만족스러운 페이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는 그냥 빌어먹을 월급쟁이다. 저분들과 함께 24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며 함께 피똥 싸며 일을 하는데 손에 쥐는 건 너무 달랐다. 아니, 우스갯소리로 동료들이 그랬다. 일하는 시간 계산하면 시급 1000원도 안될 거라고. 100원 아니냐고.(눈물) 지금이라도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돈 더 받을 거라고. 웃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웃기지 않았다. 진짜거든. 저게 맞거든!



게다가 작가는 계약서에 의해 움직이는 계약직인만큼 드라마가 끝나면 그걸로 해방이다. 뭐하고 쉴지 어딜 여행 다녀올지 행복한 고민들을 늘어놓으며 그 고난의 시간들을 버티곤 했지만, 나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여행 계획은 사치이기도 했고 일단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드라마가 끝나고 딱 하루를 쉬었다. 그것도 휴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방송 날까지 촬영을 했고 그날 새벽까지 작업을 했으니까- 그냥 밤을 새웠으니 오랜만에 우리 집 내 침대에서 잔 걸 휴가라고 칭하면 곤란하지.



이러니 저 말을 들었을 때, 같은 공간에 있는 작가들과 나 사이에 갑자기 높이 5미터쯤 되는 벽하나가 솟아난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그래도 산전수전 공중전 다 같이 겪어낸 기분이라 작가들과 내가 한 팀이라고 느꼈었는데. 대체 뭔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나 싶었다. 그렇지. 물론 아무리 같이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하더라도 중요한 대본을 내는 일은 작가가 하는 거니까. 너무너무 고생하고 계신 것도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는데... 나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같이 일하는 3달 동안의 보수 차이가 약 40배에 달했으니까.(하아)


 

저분들은 그만큼의 보상이 다 따라오는구나. 저게 이만큼 힘들어도 버티는 동기부여가 되는구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말 처절하게 부러웠다.  

열폭인 거 압니다만. 꼬우면 네가 작가를 해야지! 말하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나에 대한 처우가 정말 눈물 나게 서러웠다.  

나,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내가 이러려고 기획 PD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서글펐다. 






드라마의 작가, 감독, 배우 이들은 그야말로 슈퍼 계약직이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불릴만한 사람들은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다. 단순하다. 경력이 많고 대박 작품이 있고 탑스타이기 때문이다. 회당 몇 천만 원의 원고료, 연출료, 회당 억이 넘어가고 경쟁하듯 올라가는 배우들의 출연료 모두 마땅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방송사든 제작사든 절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로 인해 벌어들일 수입이 보장되어 있다고 판단하기에 저 정도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걸 테지. 



그걸 인정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40배? 에이, 회당 억을 받는 작가, 배우, 감독들도 있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뭐.. 40배는 애교일 거다. 그리고 그것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닥의 수입 격차가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그들의 수입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라 몇몇에게 그렇게 대우를 할 거라면, 스태프들의 처우도 좀 어느 정도 살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방송 쪽은 다 그래. 영화 쪽은 원래 그래. 모르고 왔어?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는 배짱 좀 안 부렸으면 좋겠다.

다 그렇다고 그게 맞는 건 아니니까!


거 계산 좀 제대로 합시다


내가 기획 PD로 입사하면서 팀장으로부터 월급이 100만임을 통보받을 때 들었던 말이 있다.

"처음엔 이렇지만 조금만 버티면 많이 오를 거야." 

팀장은 표정이 굳는 신입을 달래려 그냥 한 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믿었다. 저 말 하나 믿고 6개월간의 수습을 버텼고 30만 원을 올려주었을 때도 더 기다리면 되겠지 또 버텼다. 그렇게 3년을 버텼는데 내가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하며 일해서 벌어가는 돈은 집에 오는 길, 가로등에 붙어 있던 호프집 알바 구함 전단지의 알바 월급보다 적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대체 얼마인 걸까.

괜히 그 전단지만 빤히 노려보다 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 성폭행 혐의로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배우가 회당 7천만 원, 총 14억 원의 출연료를 이미 지급받았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실 그 기사를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큰 금액을 출연료로 받아놓고 그 배우는 드라마에 엄청난 똥물을 튀게 만들었고, 그 수습은 그때의 나와 같은 이들이 밤낮을 지새워가면서 하고 있겠지 싶어서... 



드라마 기획PD 잔혹사는 안개의 첫 직장생활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제 경험에 따른 것이기에 몹시 주관적이며,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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