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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ug 07. 2020

'작가병'에 걸리고 말았다

나다운 글쓰기로 나, 돌아갈래


책 출간 후,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처음에는 쓰기 싫어서 안 썼다. 몇달간 원고 작업을 하면서 출근을 제외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갖다 바쳤기 때문에 조금 지쳐있었다. 아니 질려있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지만. 


그렇게 몇달 간 선뜻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신나게 놀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할텐데.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고. 회사 업무가 많아지고 사람은 없고 하면서 일이 몰려, 집에 오면 침대에 눕기 바빴다.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글을 못 쓰게 되다보니 이놈의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했다. 자연스레 글이 쓰고 싶어졌다. 


마침 남편이 나에게 새 노트북을 사주었다. 책이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왔음을 축하하는 의미로 본격적으로 쓰고 싶은 글도 마음 껏 쓰고 훨훨 날아보라는 의미였을 거다. 꽤 비싼돈을 주고 사양도 좋은 것으로 고르고 골라주었다. 그때만 해도 필명이지만 내 이름을 단 책이 나왔고 주변 사람들은 다들 멋있다며 비행기를 태워주니까 정말 새로운 인생일 열릴 것만 같았다. 내 비록 직장인이기는 하지만 작가로의 삶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던 그때, 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

그래. 그랬지. 


그런데 정작 새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려고 보니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좋았던 건 '필사적으로'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 '필사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즐거울 수가 없다. 죽을 힘을 다해 하는데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겠어? 말이 안되지. 그동안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썼을 뿐이다. 물론 보여주는 글이니 정성을 다해서 썼지만 딱 그정도까지 였다. 그래서 글쓰는게 재밌었다.


그런데 출간을 하고 나니까 그 후로 글 하나를 쓰려 하면 신경쓰이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닌 거다. 내가 쓰는 글이야 일상에서 나오는 글이 전부인데. 너무 시시한 거 아닌가? 어떤 교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좀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한 글자 적기가 버거웠다. 자꾸만 마음이 필사적으로 변하길래, 몇줄 끄적이다 폐기해버린 글이 몇개인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시시하고 별 것 없는 이야기를 써왔다. 그런 이야기들로 책도 냈다. 교훈? 내 삶을 통해서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이란 없다. 그저 공감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 내가 글을 써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 소름돋아. 쓰다보니까 정확히 알았다. 

난 '작가병'에 걸렸던 거다. 

다들 이 마음 알죠


댓글 읽기를 참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역시 공감했다는 말 그리고 위로가 되었다는 말. 그 말에 나야말로 위로받는다. 책을 내고 가장 좋았던 것은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여러 방면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신감이 0에 수렴하는 나로서는 처음에는 댓글 하나에도 후덜덜, 몸둘바를 몰랐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매일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새로이 올라온 리뷰가 없나 보는 일이 되었다. 행복했다. 모두가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감사한 일이고(물론 악플 말고), 내가 글 속에 감춰두었던 것을 찾아내주는 분들을 만날 때면 '와.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적 친밀까지 쌓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소통이구나.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않아도 저 깊은 내면을 맞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반면,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 부작용도 스며들었던 것 같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부담이 쌓였고 욕심이 되었다. '더 좋은 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분명 나에게 필요한 욕심이지만 아직 이런 마음을 어르고 달랠 수 있는 단단함이 없는 나에겐 이른 욕심이었다.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글감, 제목, 문장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


다행이다. 내가 글을 정말 잘 썼다면 그런 욕심도 여기저기 담아보고 눈치껏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찾아내고 했을텐데. 능력밖의 일이라서. (좋아해도 되는 건가...?) 그런 글을 쓸래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는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일단 글이 너무 쓰고 싶어져서 하고 싶은 말부터 쓰기로 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눈치보지 말고 더도 덜도 말고 딱! 하고 싶은 말들만. 그래서 회사 얘기도 썼다가 가족 이야기도 썼다. 어느 매거진에도 끼워 넣을 수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고 말았다.

기존의 구독자분들이 기다렸던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안한 건 아니다. 그치만 작가병 걸려서 쓰는 글보다는 적어도 내가 즐겁게, 나답게 쓰는 글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도 쭉쭉 적어 나갔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쓰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다. 기분 참 좋다.





>> 그나저나 퇴사병, 작가병. 병에 참 자주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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