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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Jul 27. 2020

님아 그 채찍질을 멈추어 다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더 잘 뛸 거라는 착각  


요새 나는, 아니 나를 포함한 회사의 모든 실무진들은 흡사 달리는 말과도 같다. 분명 두세 달 전만 하더라도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 직원들은 감봉, 회사는 대출을 받아 명줄을 이어가는 처지였는데 상황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대체 이 일들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난 거야? 매일같이 영업팀 전화는 불이 났고 좁은 사무실 안은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누구 것인지 모를 한숨 소리만 바쁘게 오고 갈 뿐이었다. 



나도 양심이 있는지라 처음 한두 달은 그래, 일 없을 때보단 일에 치여 죽을 동 하는 게 백배는 더 행복한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회사의 존폐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니까. 일이 없는 동안 나날이 수척해져 가는 대표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고. 

그러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하다 감사해!' 스스로 최면을 걸며 이럴 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으로 버텼다. 대표님 눈치에 죄인 같이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내 머리와 몸이 고생하는 게 나았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야근과 꼭 한 번씩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늘어놓고 끊는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어느덧 가슴속은 화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게다가 약속이나 한 듯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뭐 하나 평탄하게 흘러가는 것이 없었다. 

코로나 쇼크로 프로젝트도 쇼크먹은 거 아냐? 뭐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하나 같이 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우리 팀은 일손도 부족했다. 그 사이 팀원 한 명이 퇴사를 했다. 

진짜 죽을 맛이 아닐 리가? 


어느덧 우리는 갈기를 휘날리며 골인 지점도 모른 채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일하고 있었다. 

이히히힝. 더 이상 사람이 아니 무니다. 


 나는 자주 울었다 이히히힝 하고 



이 상황에서 행복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니. 급속도로 활력을 찾고 계신 유일한 사람. 

우리 대표님.

어느덧 수척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로 어두웠던 낯빛이 돌아왔다. 대표실에서 수시로 밖에 나와 물끄러미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흐뭇한 미소는 덤. 밥 안 먹어도 배부른 사람의 얼굴은 저런 거겠지? 대표님의 얼굴을 볼 때면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이 자주 한숨을 토해내고 사무실 공기가 갑갑해져 올수록 기분 탓인지 몰라도 대표님은 생기가 돌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 중이었다. 사원급 직원들은 모두 퇴근을 하고 팀장급만 남아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능하면 사원급은 칼퇴를 시켰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우리가 그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였다. 모두 예민한 상태였다. 아닐 수 없었다. 충분히 지쳐 있었고 누구 하나의 키보드 소리가 삑사리만 내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사님이 방에서 나와 잠시 머뭇대다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안 하면 대표님이 직접 하시겠다고 해서...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는 있는데 회사 사정이 워낙 어려워. 일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그러니 다들 지금보다 더 힘을 내서 일을 진행해줬으면 좋겠어. 야근을 좀 더 하더라도...무슨 말인지 알지?



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다 쳐내지 못해서 외주로 돌리는 일을 대표님은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걸. 사원들이 야근을 하지 않고 먼저 퇴근하는 것도 못마땅해하신다는 것 쯤은 모를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다. 어떤 말들이 오고 갔고 저런 말을 팀장들에게 전달하라고 했는지 빤히 그려졌다. 


-일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여전히 어렵다는 말만 하면 어떻게 힘을 내요? 다들 쥐어짜면서 일하고 있는 거 알면서 고생한다는 말보다 더 하라는 말이 우선인 게 맞아요?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와 연차가 되었다.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야 하는 것이 회사에서 기대하는 나의 역할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터졌다. 이미 이성적인 판단은 날아갔고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다.

이러지 말자, 하면서도 속사포처럼 마음을 뱉어버렸다. 다른 팀장들도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잔뜩 흥분해서 저마다 울분을 토해내고 말았다. 마무리는 뭐, 조만간 우리끼리 술자리라도 갖자는 걸로 끝났고. 



회사는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던 해에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했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7년 동안 사정이 좋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 올해 코로나 때문에 위기였다는 것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일을 몇 달 동안 해도 겨우 정상궤도로 올라가는 것일 뿐 낙관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들 묵묵히 달리고 있었던 거다. 한 번을 당근 달라고 울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가 고생하는 것 정도는 알아줄 줄 알았다. 고생한다 수고한다는 말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진짜 치사해서 이런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나는 최근 야근을 하면서 한 번도 저녁을 사 먹지 않았다. 저녁먹을 시간에 빨리 일을 마치겠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회사를 생각한 처사였다. (참고로 나는 배고픔을 못 참는 편이다!) 하도 회사가 어렵다. 대출이 늘었다 하니 내 저녁값이라도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뭐 이런 의미였는데 저 말을 들으니까 나는 대체 뭘 위해 그랬나... 싶더라. 내놓을만큼 내놓은 것 같은데 이놈의 회사는 더 내놓으란다. 쉬지 말고 더 달리란다.



내 앞에 당근을 가져다주었으면 힘이 풀려 주저앉더라도,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갈 참이었다. 나뿐만이 아니고 동료들 모두 그랬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은 내 자리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시키지 않아도 이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근을 기대하던 우리들은 별안간 채찍을 맞았다! 

채찍을 때리는 이는 말 잘 듣는 착한 말이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명백한 착각이다. 그 순간 경로를 이탈해버릴까? 멈춰 서 버릴까 하는 생각뿐. 더 이상 앞으로 곧장 달리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아 초원으로 떠나고 싶어 졌다.



그러니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지 마세요. 

말발굽에 차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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