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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Nov 19. 2020

매일 일해야 사는 여자

내가 정말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일하기 싫다. 퇴사할 거다. 놀고먹고 싶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뭐, 습관성 푸념 정도? 그런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듣는 말들이 있다.

-네가? 너는 못 그럴 걸. 노는 것도 사람 나름이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고 해도 어디선가 일을 찾아 할 사람이야. 

-또 그런다. 정작 일 안 하고는 못 배기잖아. 



심지어 남편과 대화 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남편은 내가 아무리 퇴사~퇴사~ 노래를 부르고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내던지고 올 것처럼 씩씩거린다 한들 불안하지 않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외벌이가 될 텐데. 대체 뭘 믿고?

그의 답 역시 맥락을 같이 했다. 나에게는 한량 기질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쉬라고 한들 나는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큰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제 용돈 벌이 정도는 해올 사람이라 걱정이 안 된다는 거다. 아닌데? 나 그런 사람 아닌데? 시켜만 줘봐라. 내가 놀고먹는 걸 왜 못해. 그 쉬운 걸. 종일 거실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쇼핑이나 하며 살 거라는 반론에 제발 좀 그렇게 해보라는 남편의 말이 따라붙었다. 



의아했다. 왜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뭘 보고 그러는 거지? 내가 정말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가? 

그래. 솔직히 내가 잘 놀거나 잘 쉬는 편은 아니다.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천백 프로 공감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쓸데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라 그렇다. ‘멍 때리기’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에도 쉽사리 끼지 못했다. 나는 멍 때리는 것이 어렵다. 언제나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가만히 있는 그 시간에도 무언가 떠올려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일시 정지 상태로 있는다는 건…글쎄, 여전히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아마도 이 땅의 모든 기획자들은 비슷한 고질병을 달고 살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나의 이런 기질은 어릴 때부터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거나 첫 직장에서 물들어버린 거지 같은 노예근성 때문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무튼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것에는 반론할 수가 없네.



그렇지만 나도 늘 퇴사하고 놀고 싶다. 이번 주 점심 먹고 산책하는 길에 동료가 로또를 사귈래 나도 따라 샀다. 당첨운이 워낙 없기에 복권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닌데, 어쨌든 이번 주 소원은 로또 당첨이다. 그냥 하는 말 아니다. 간절하다...


딩가딩가 베짱이가 되고 싶다 (출처 : pixabay)



책에도 썼던 말이지만 나는 늘 ‘퇴사하고 싶지만 퇴사하기 싫었다.’ 프로젝트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열심히 나를 몰아붙이며 일했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터지기가 일쑤여서 그때마다 다 내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직장생활과 작사가 지망생으로의 생활을 병행할 때는 말이 필요 없이 매일매일이 한계였다. 아침시간과 퇴근 후, 끈질기게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럼에도 직장인으로의 삶을 놓지 못했던 것은 10년 동안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는 ‘월급’이 끊기는 것보다는 (물론 ‘돈’도 이유가 된다. 암. 그렇고 말고) ‘일’이 끊길 까 봐 두려운 게 더 크다. 내 삶에 일이 없다는 걸 상상하기가 어려워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나’를 설명하는 것은 ‘커리어’다.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 살고 나이가 몇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분야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다만 내가 이 분야에서 경력이 얼마나 되었는지 어떤 프로젝트들을 성공시켰는지 궁금해한다. 나 역시 일 할 때 그동안 쌓인 ‘커리어’를 내 무기로 사용하고 있고… 포스와는 거리가 먼 나의 외모를 대신해 싸워줄 나의 믿음직한 무기.

커리어는 곧 내 존재 가치의 증명이자 자신감이다.  



그러니 나는 그 자신감이 비워지는 것이 불안하고 무기를 내어놓을 용기가 없어 쉴 수가 없다. 쉬고 싶은 마음은 늘 출근하는 나의 발길을 붙잡고, 개미보다는 베짱이를 꿈꾸지만 아직은 회사를 벗어나서도 일이 끊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없으니까. 회사를 다니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일하기 위해서 출근을 한다. 방금 하나 깨달았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놀지 못하는 거였구나. 씁쓸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당장은 일 안 하고 못 사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될 수 있겠지.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출근하기 싫으니까...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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