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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채환 씨의 가위눌림

정말이지 이상한 경험이었다. 유년 시절, 까닥하면 두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왜소했던 채환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동네 형을 따라 운동장엘 따라갔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를 가진 형을 따라 철봉을 하다 보면 그 어깨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공부든, 게임이든 무엇하나 끈질기게 매달린 적 없었던 그는 손바닥에 잡힌 물집이며 터질 듯이 죄어오는 팔뚝을 회피하려 하나 둘 요령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터득한 방식이 '거꾸리'였다. 있는 힘껏 땅을 차고 철봉 위로 올라간 후 다리를 걸고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 방식이야 조금 다르겠지마는 철봉을 '하는' 것만은 확실하잖냐~     


사고는 늘 그렇게 발생한다. 사람 머리는 땅에, 다리는 하늘에, 거꾸로 보는 세상이 신기해 아무 곳에서나 매달린 게 화근이었다. 채환은 어느 날, 아파트 복도에 서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다 계단 손잡이에 매달렸다. 오금으로 잡히는 두툼한 계단 손잡이가 나름 안정적이구나... 생각하는 찰나, 302호 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꺅" 아주머니는 대낮에 박쥐라도 마주친 듯 소리를 질렀다. 화들짝 놀라는 아줌마의 기괴한 얼굴을 보며 채환도 소리쳤다. "끼약" 목에 힘을 주니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떨어졌다. 스르륵스르륵     


'안개 자욱한 풀숲에 누워 꽃잎이 내 볼을 스치는 기분이랄까', 채환이 눈을 떴다.  뺨을 핥던 흰 고양이가 총총걸음으로 달아났다. 커다란 추를 매달아 놓은 듯 뻐근한 뒷목.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세우니 눅눅한 공기가 입안 가득 들어왔다. 콘크리트로 도배된 잿빛 공간. 오른편 벽면에 힘껏 누른 모양의 납작한 창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빛의 전부였다. 그때, 채환은 자신의 몸이 아파트 지하실로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종종 아파트 입구를 드나들 때마다 1층 집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자그마한 창문으로 고양이가 드나드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거친 숨소리가 지하실 가득 울린다. 엄습해오는 두려움. 재빨리 달아나야겠다고 생각해 계단을 찾아 뛰어가는데     


방이 있었다. 아니 방은 방인데 벽이 없었으니 정확히는 지하 캠핑장이라 표현함이 적절할 것 같다. 침대가 있었다. 하늘색 솜이불이 종잇장처럼 올라가 있었다. 주전자도 있었다. 조폭에게 심하게 두드려 맞은 듯 낯짝이 찌그러져 있었다. 시계도 있었다. 숫자를 보라는 건지, 로고를 보라는 건지, '새마을금고'가 대문짝 하게 박힌 시계였다. 땅 속에 지렁이나 두더지가 말고 사람도 산다는 데에 심히 충격을 받은 어린 채환은 더욱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계단을 찾아 달렸다.  그리고 아저씨를 만났다. 단발머리처럼 찰랑거리는 밀대 걸레를 쥔 아저씨를.     


아저씨가 말했다.

“뭐야.”

“네?”

"왜 왔냐고"

"네?"

"어떻게 왔냐고"     

어떻게 왔냐는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채환은 그냥 되물었다.

"아저씨 여기 살아요?"

"왜"

"아저씨 여기 살아요?"

"왜 물어"

"아저씨는 여기 왜 있어요?"     

왜 여기 있냐는 아저씨의 물음에, 아저씨는 왜 여기 있냐고 되물으니, 아저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니 채환도 아무 말이 없어졌다.     


초침 소리가 맥박처럼 울렸다.     

아저씨가 말했다.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라"

"왜요. 말해야 아저씨도 탈출하죠"

"말하지 마라면 말하지 마라"

"왜요. 아저씨는 안 나가고 싶어요?"

"네가 말하면 이마저도 사라진다"     


눈을 떴다. 엄마는 물수건으로 채환의 이마를 닦으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채환이 생각했다. 말해야겠는데, 그 고양이 드나드는 지하실에 청소 아저씨가 살고 있다고 말해야겠는데, 말하지 말아야겠는데, 청소 아저씨가 쫓겨날 수도 있으니 말하지 말아야겠는데, 말해야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하실에 사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말하지 말아야겠는데, 그 왜소한 침대마저도 잃는 것도 좀 아닌 거 같은데... 채환은, 커다란 두 날개가 몸을 칭칭 감싼 듯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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