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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일요일이란 무엇인가

 눈을 떴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환한 빛이 방안을 밝힌다. 그는 머리 맡을 뒤적여 휴대폰을 잡아들었다. 화면에 “12:50 SUN”이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평일이면 점심을 먹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가 팔을 머리 위로 뻗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텅 빈 자취방에 깊은 탄성이 울려 퍼졌다. 뭐라도 챙겨 먹으려 몸을 일으켰는데 어젯밤 야식을 시켜 먹은 탓인지 속이 아직 더부룩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몸을 누이고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또각또각 시계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그는 가만히 초침 소리를 감상하다 다시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그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무릎을 다친 이후 다신 할 수 없을 것 같던 축구였는데 꿈속에서 다시 뛰고 있었다. 비록 몸은 침대 위에 있었으나 그는 분명 거친 숨을 내쉬었다. 상의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발 뒤꿈치를 따라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팀 동료를 거쳐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전문용어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자리에 누워 꿈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곱씹어 보다가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두 시를 지나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평소 일요일이 되면 못 보던 고향 친구를 만나거나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 약속도 해야 할 일도 없는 날이었다. 일어나려니 일어나는 이유를 모르겠고 계속 누워있자니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도 교수님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무얼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유로운 일요일과 가장 바빠야 할 시간인 두 시라는 이 모순적인 요일 와 시간의 조합은 그를 물먹은 이불 마냥 축 늘어지게 만들었다.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가족 톡방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주말 잘 보내라.” 그는 아버지는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 기억 속 일요일 오후의 고향집을 떠올려보았다. 거실 바닥에는 블라인드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볕이 차분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의 가족은 다 같이 짜장 라면을 끓여 먹은 후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지곤 했었다. 그는 주로 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았다. 그때마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그 햇볕 언저리에 앉아 손톱을 깎으셨다. 별 길어 보이지도 않는 손톱임에도 또각또각 소리는 한 주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의 손놀림 조각공처럼 섬세했다. 손톱을 다 깎은 후에는 빨랫줄에서 손수건과 바지를 가져와 다림질을 하셨다. 분무기로 물을 뿌릴 때면 공기 위에 떠다니는 작은 물방울들에 햇볕이 비쳐 반짝이곤 했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에는 기존의 잔주름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기품과 같은 굵은 바지선만 남아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깨우친 듯 이불을 걷으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버지가 보낸 문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에게 일요일 오후 두 시는 준비의 시간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주를 뒤로하고 앞으로 펼쳐질 더 숨 가쁠 한주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전사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칼을 닦는 것처럼 말이다. 일요일 오후와 같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교수님이 들어오지 않은 강의실, 누군가는 시계를 쳐다보며 멍하게 앉아있지만 누군가는 책을 펴서 수업 내용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준비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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