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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Apr 06. 2020

봄을 영어로 말하면 스프링이다.


나는 1만이라는 숫자 앞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떠나버린 사람, 이젠 바꿀 수 없는 기억들. 그중에서 이 글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서 쓰는 글이다. 



대학 시절, 내 학업의 페이스메이커는 ‘개강’과 ‘종강’이었다. 1학년 땐 사회학을 주전공으로 시작해 3학년 땐 언론학을 복수 전공했다. 기초학문을 바탕으로 실용학문을 얹어야 취업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지극히 오산) 두 학문을 동시에 수강하니  수업도 과제도 모두 두 배였다. 학기 내내 수업과 과제, 팀플과 시험의 쳇바퀴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막 굴리다간 뇌까지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골든타임 끝자락에 ‘종강’이 찾아왔다. 종강 이후엔 밀린 잠을 몰아 자고, 고향에 내려가 따뜻한 집밥을 챙겨 먹으며 숨을 골랐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잤다. 그러다 문득, 내 옆에서 프링글스를 집어 먹는 누나를 보며 앉은 ‘이러다 우리 코끼리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때면, 때마침 ‘개강’이 찾아왔다. ‘개강’과 ‘종강’의 사이클은 아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문제는 룰(rule)에 익숙한 인간은 자유(free)가 찾아왔을 때 쉽게 방황한다는 점이다. 2020년 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학생들은 4월이 지난 지금까지 개강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빠릿빠릿한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챙겨 들으며 자신만의 레이스를 시작했겠지만, 근 10여 년간 초중고 시절을 거쳐 ‘개강’과 ‘종강’에 바이오리듬이 맞춰진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직도 이불속을 헤매고 있을 터. 심지어 몇몇 수도권 대학은 1학기 수업 모두를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평일엔 침대산과 소파산을 하염없이 등반하다 주말이 지나서야 온라인 강의를 몰아 볼 것이 뻔하다. 학업의 시작,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캠퍼스의 낭만 등 등 등. 우리에게 2020년 1학기는 잃어버린 시간이다. 



‘축적이 가능한 사회’ 이재승 고려대 교수가 말한 우리 사회 지향점. 지식은 축적됐을 때 힘이 배가된다. 반복된 경험과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무형의 자산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저력을 갖고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모두 필요하고 그것들은 대게 상호 보완적이다. 즉, 실패한 시스템을 리셋하지 않고 미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렇다면! 현재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미래로 가져갈 만한 포인트가 있을까? 


 

있다. 온라인 강의다. 코로나 19는 전국 대학교수들이 거부감을 갖던 온라인 강의 방식을 순식간에 받아들이게 했다. 사실 온라인 강의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이미 상당한 궤도에 올라있는데 우리 사회가 수용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코세라’ 영상 플랫폼에는 4000여 강좌가 올라와 있다. 대학 교과목이 거의 다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온라인 강의가 일방적인 동영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소위 ‘에듀텍’ 기술이 활용되면서 학생과 교수 간의 상호 토론, 학생 간의 대화, 심지어 강의 중 수시로 퀴즈 및 중간고사까지 시행된다. 



물론 미국의 온라인 강의 열풍을 한국이 무조건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는 대학 교육의 판을 흔들 수 있는 카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90여 전공의 학사학위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등록금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과정의 30% 정도. 3만 명이 넘는 학생이 등록한다고 한다. 만약 한국도 지방에 사는 학생이 100만 원의 등록금으로 수도권 대학의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면? 비싼 등록금,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 교육 불균형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어쩌면 우리는 대학 교육 대전환이라는 기회 앞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대학 온라인 강의 만족도 7% 불과… 학생들 “등록금 돌려달라”> 물론 대면 강의에 익숙한 한국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온라인 강의를 일정 수준까지 올려놓지 않는다면, 훗날 또다시 불어올 바이러스 앞에서 맥없이 잃어버린 1학기를 맞게 된다. 불편함이 없다면 혁신도 없다. 나는 1만이라는 숫자 앞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떠나버린 사람, 이젠 바꿀 수 없는 기억들. 2020년의 봄, 잠시 주저앉아도 좋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땐 더 높게 도약해야 하지 않겠는가. 봄을 영어로 쓰면 스프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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