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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2018을 가다 1

[후기라고 하기엔 쑥쓰럽지만]

대망의 브런치 첫 글이다. 대망이라고 말했지만 작가 승인(?)이 나고 며칠 뒤에야 이렇게 겨우 글을 쓰고 있어서 대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사실 잘 모르겠다. 부디 네이버 블로그보단 오래갔으면 좋겠다 하하 


간단한 소회를 밝히자면, (나의) 겉과 속의 상태가 조금 다른 이 시기에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행동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초봄이 지나갈 무렵부터 무기력+우울감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운동도 취미생활도 안 하고, 직장도 꾸역꾸역 다니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2년 전쯤에도 지금과 같은 상태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시기가 비슷했다. 다행히도 그때는 연애를 하면서 나름대로 극복할 수 있던 것 같다.(상태가 엉망이었음에도 나를 만나줬던 그분께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다만 그때와 조금 다른 점은 지금은 연애를? 그보다 앞서 낯선 누군가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3D의  인간을 알아간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심지어 나는 팔려야(정말로) 하는 입장이므로, 열심히 나를 팔아야 하는데 그건 더 귀찮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질 때도 있지만, 다행히 미드를 통해 유사연애를 하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 드라마 콘텐츠는 위대하다. 


안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가는 것과 달리 이런저런 외부활동엔 꽤나 적극적이다. 물론, 여기서 회사 일은 당연히 배제된다.(열심히 하려고 생각은 하지만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으니까) 그중에서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은 단연 염색이다. 이제껏 카키, 파랑, 하늘빛 회색을 거쳐 현재는 짙은 네이비 색이다. 이와 함께 머릿결은 꾸준히 상해가고, 지갑의 돈은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지만 어쨌든 염색을 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므로, 외부 활동 증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회사의 윗분들께서 진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직원들의 사기충천, 혹은 적극성을 이끌어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확실한 두발 자유'를 보장하면 된다. 겨우 티 안나는 밝은 갈색 정도로 사람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빨주노초파남보, 레게, 삭발, 헤어 스타일이 뭐가 대수지? 문제는 노잼이다. 앗, 물론 나처럼 머리와 관계없이 꾸역꾸역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하 본능이니까 하하

가장 맘에 들었던 머리색은 진한 파랑 이후 색이 빠져서 에쉬블루 정도가 됐을 때다. 이땐 머리를 해주신 헤어 디자이너 분께서 색이 잘 나왔다며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머리(코팅된 네이비색)를 해주실 땐 사진을 찍지 않으셨다. 마치 가발을 쓴 것 같은 색이 나왔고, 별로 어울리지도 맘에 들지도 않아서 최근에 열심히 머리를 감아 색을 빼고 있다. 다음엔 무슨 색으로 할까?


이 외에도 팟캐스트 녹음을 시작했고, 미드를 보기 시작했고, 시티팝을 듣기 시작했고, 맘에 드는 물건을 사고 있고, 여행도 다녀왔고, 친구들을 나름대로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재능 없는 꿈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 그래서 조금 무섭지만, 사실 무서워할 정도의 실력도 안되기에 이런 말 하는 것이 조금 머쓱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지금 나는 내 삶을 기록해야 한다. 왜냐고? 그냥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한다는 건 증맬 피곤한 일이다. 


다이어리는 스케쥴러가 된 지 오래다. ㄷ ㅣ지털 시대에 맞춰 가기로 했다. 어떤 툴을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고른 것이 브런치다. 글을 적고 있으니 브런치 툴이 좋다. 툴이 깔끔하고 기능이 과도하게 많지 않다. 기능이 많으면 어쩐지 모든 기능을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니까. 약간 싸이 감성과 같은 감성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기도 하고, 제멋대로 손가락 놀리기 좋은 브런치다. 


작가 신청할 땐 되게 열심히 할 것처럼 했는데, 되게 까진 아니고 꾸준히 글을 올릴 정도로만 해도 만족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 운영하시는 분들께 고맙고 약간 죄송하다. 하지만 꾸준히 하는 것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꽤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하 일하기 싫다 하하 하하 


소회가 너무 길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노잼+긴 글은 죄악이니까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주 일요일에 '인디포럼2018'을 다녀왔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됐기에 오랜만에 종로에 갔다. 멀었고 피곤했지만, 맘에 드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결과적으론 만족스럽다. 

종로 3가 북한음식 전문점 능라밥상에서 먹은 평양냉면과 수육. 육수에선 동치미 맛이 살풋하게 났고, 면에선 별 다른 향이 나진 않았다. 수육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차가운 평양냉면을 선호하는 편인데 얼음이 있지도, 시원하지도 않아서 아쉬웠다. 능라밥상으로 향해 걸어가는 길 한복판에 할머니 한 분이 구걸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할머니를 지나치는 순간 종이뭉치로 내 왼쪽 엉덩이를 치셨다. 왜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이로써 일전에 유럽에서 잠깐 지냈을 당시 구경 간 퀴어퍼레이드에서 다이크 언니가 내 엉덩이(왼쪽)를 주물렀던 것, 길 걸어가다 리트리버(추정)를 지나치는 순간 개가 엉덩이를 물었던 것(왼쪽)에 이어 길을 가다 영문 없이 왼쪽 엉덩이에 자극을 받은 세 번째 경험이 되었다. 엉덩이는 말랑하고 짜릿한 것.  


인디포럼2018 후기이지만, 내가 본 것은 겨우 전체에서 겨우 두 타임뿐이었으므로, 전체적인 평가가 되지 못한다. 또한, 내겐 영화를 평론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고, 이하는 그냥 보고 난 뒤의 개인적인 감상을 지껄이는 정도이므로, '호오~ 영화 좀 볼 줄 아는 놈인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내가 본 것은 '신작전 단편03 내 갈길을 가마- <첫 외출>/<지옥문>/<두환이>/<준비됐나요>'와 '신작전 장편05-<기프실>'이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작전 단편03은 내게 전부 별로였고, <기프실>은 재미있게 봤다. 어쩐지 오픈된 공간에 대놓고 별로라고 말해서 조금 멋쩍지만, 어쩔 수 없다. 네 편의 단편 모두 별로였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고(<지옥문>/<준비됐나요>), 전개는 조금 뻔했고(<첫 외출>), 전체적으로 아마추어 느낌이 들었다. 이건 조금 웃기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그냥 영화를 다 보고 나온 감상이 '전체적으로 아마추어 느낌이군'이었다. 나와 함께 인디포럼 2018에 갔지만 다른 단편 영화를 본 지인의 평가 역시 나와 같았다. 


<두환이>에서 두환이는 '전두환'을 가리키고, 감독의 말에 따르면 너무나 명확한 학살자인 전두환이 지금 이 시대에 서울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영화는 출발했다. 그래서 제목도 '어쩌구 전두환' 등이 아닌 그냥 '두환이'로 됐고, 두환이를 향한 이 영화의 입장(혹은 시선)은 너모나 명확했다. <두환이>의 줄거리 소개 중 "이 땅의 정의를 위해 ‘누군가’는 전두환을 죽여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너모나 동의된다. 하지만 너모나 감독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여서 영화 자체는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GV때 아무도 <두환이> 관련 질문을 하지 않아서 내 느낌밖에 적을 것이 없다.)


어쨌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난 뒤엔 오히려 네 편의 영화들을 한번 더 보고 싶어 졌다. 어떤 생각으로 그 장면을 만들고, 어떤 의미였는지 듣게 된 뒤다. 나는 애초부터 이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처음부터 GV를 녹음하는 노력을 감행했는데, 들었던 부분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뽑아 적어본다.(재편집해서 쓰는 것은 너무나 귀찮으므로) 


<준비됐나요>  줄거리

백호는 32살의 영화감독 지망생이다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길 꿈꾸지만현실은 새벽까지 인터넷 방송을 보며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처지다그러던 어느 날동네 놀이터에서 운동기구에 필요 이상으로 과몰입하고 있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그 남자는 백호에게 1인-지구 탈출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며 훈련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백호는 그 남자의 확신에 찬 태도에 이끌려 훈련에 참여하게 되고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지구 탈출 분야에서만큼은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고강도 훈련의 결과 백호는 인류 최초로 1인-지구 탈출을 눈앞에 두게 된다.


Q. 보통 연기를 하셨으면 자신의 배우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게 일반적일 거 같아요. 근데 연출을 지망하는 예 그런 시나리오를 쓰셨을까? 그것도 궁금합니다. 

A.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거든여. 그걸 영화라는 소재로 표현하고 싶었고, 제가 이제 그냥 살아가면서 느끼는 게 믿음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거창할 수 있고, 그렇지만 어쨌든 믿음이라는 게 변해가는 것을 사람들은 보잖아요. 근데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잘 안 들림)할 수도 있지만, 저는 변해간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좋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믿은 신념으로 ~~~(안 들림) 변해가는 게 저는 모르겠어요. 그거를 크게 나쁘다고 생각을 안 해요. 다만 그 사람에 대한 조금 심도 깊은 성찰이나 소통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이 이제 변해갔고, 옛날에 믿음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아가야 할 노력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제 연기에 대한 것보다는 그런 게 더 했던 거 같아요. 


위 질문과 답을 읽는 느낌은 내가 <준비됐나요>를 읽는 느낌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재미있으면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한 인물과 그 인물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신비한 인물, 결과적으로 신비한 인물은 사라지고 신비한 인물이 하는 행동을 전자는 믿고, 이해하고, 이어받는다는 설정은 어딘지 익숙하다. 신비한 인물이 하고자 했던 일을 이어받는 행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결과적으로 '복잡한 장면'이라는 답변을 들어서 더 아리송했다. 영화적 해석은 보는 사람 맘이지만, 듣고 나서도 좀 해석이 안 됐다. 이런 느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걍 재밌었다.  


<첫 외출> 줄거리

FTM 트랜스젠더 진수는 친구 나영에게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진수는 덥수룩해진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간다. 나영이 미용실로 찾아오고, 진수는 커밍아웃을 할 타이밍을 엿본다.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미용사가 여자 커트 가격을 요구해서 진수는 화가 난다. 나영이 돈을 내버리고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진수는 나영과 싸우고 만다.


Q. 굉장히 독특한, 처음 자신에 대한 선언을 하는 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시간을 포인트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신 이유도 궁금한데요.

A. 어~~~~~ 뭐 시간을 포인트로? 그니까 처음에 구상을 시나리오를 뼈대를 잡으면서 처음으로 말하는 날을 그리고 싶다, 그때의 감정이 가장 이제 관객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고, 처음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떤 억압들을 겪고 있는지도 가장 잘 보일 것 같아서 뼈대를 잡고 나니까 다른 것들이 잡히더라고요. 이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설정이면 좋겠고, 이런 설정들, 낮에 나갔다고 다시 밤에는 들어오고, 이런 시간들이 주제를 이제 확실하게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들로 매칭이 되더라고요. 


<첫 외출>을 볼 때, 주인공이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어쩐지 화면을 계속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는데,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원래 민망한 장면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못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냥 음음 정도), 납득 가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 설정도 크게 낯선 것은 아니지만 커트비가 소재가 돼서 소소하게 신선했다. 나영이 같은 친구가 나와줘서 좋았고 뭐 그렇다. 


<지옥문> 줄거리 

갑자기 숨이 막혀 죽은  저승으로  동휘심판관은 '사람을 죽였으니 지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한다동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증명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 많다.


<지옥문>과 관련해선 딱히 마음에 남았던 코멘트가 없고, 줄거리 자체가 나의 감상이다. 애니메이션인 줄 몰랐는데 애니메이션이어서 재밌었고, 짧은 시간 보기에 그림체도 독특해서 좋았다. 무고함을 증명할 서류를 가지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마치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는 것처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풍자인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주인공이 지옥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고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역시 지옥은 지금'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놀랍게도 이 글을 쓰는데 도합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에 3시간을 쓰다니 으음. 다시 읽어보니 만든 사람들이 기뻐할 만할 후기는 아닌 것 같지만 으음. 다시 쓸 기운이 없으니 그냥 뭐 으음. <기프실>을 따로 써야 하지만, <기프실>은 무척이나 재미있게 봐서 쓸 기운이 난다. 


첫 글인 만큼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 추종하고 있는 케이트 젠킨슨(Kate Jenkinson)의 사진을 첨부하기로 했다. 너무 귀엽고, 예쁘고, 매력 있고, 세상 좋은 거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한다. 맘 같아선 사진을 4353423120장 정도 더 올리고 싶다. 다시 글을 훑어보는데 오늘의 글의 핵심은 지금 이 문단이다. 미괄식이었다. 팔자주름 짜릿해, 인중 점 최고야, 녹안은 늘 새로워! Aㅏ 앓느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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