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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2018을 가다 2

[사실상 <기프실> 후기]

회사 업무로 인해 퇴근하지 못하고 당직을 서는 금요일 밤, 밀린 딴짓을 하기에 제격이다. 밖에 잠깐 나갈 일이 있어 다녀왔는데 온도와 습도가 밤 산책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다.  


어쨋든 전 편에 1이라고 붙였으니 마지막 편인 2편을 써야 한다. 본격적인 딴짓에 앞서 노래를 듣기로 한다. 오늘의 곡은 Takako Mamiya(間宮貴子)의 Chinese Restuarant, 알아듣는 부분은 '차이니즈 레스토랑' 뿐이지만. 일본의 중국집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본어를 못해서 알 수 없다. 


역시나 뭔가 빨리 질리는 경향이 있는 나는 며칠 만에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어쨋든 여전히 젠코의 덕후이므로 힘을 내기 위해 젠코의 사진을 먼저 올린다. 

회사에서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와서 강제 덕밍아웃이 될까 두렵다. 역시나 덕후에게 집 밖의 세상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다. 그와 별개로 역시 오늘도 젠코님은 완벽하다. "미녀에게 사모하는 정이 있지 않다니 참으로 가엾다."- F.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아, 가여운 일반인들이여!



여튼 크게 감흥이 없었던 단편선 타임이 끝나고 간단하게 멍을 때리다가 기대없이 <기프실> 관을 찾았다. 

나는 팥도 좋아하고, 차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팥차는 별로였다. 차 자체의 농도가 진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팥 특유의 냄새와 텁텁함이 계속되어 입에 팥물을 머금고 있는 느낌이어서 개운함이 필요했던 내게 맞지 않았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는 마법....★


<기프실>의 관람시간은 저녁 일곱시 사십분 쯤이었고, 일요일 저녁이라 관람석엔 사람이 굉장히 한산했다. 따라서 핸드폰 불빛에 방해를 받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내 대각선 뒷쪽에 앉았던 여성분이 어쩐지 영화시작 30초 만에 울기 시작해 영화 끝나기 30초 전까지 우셨다. 당시의 나는 상당히 컨디션이 좋은 상태였으므로 그로 인해 크게 기분이 나빠졌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영화 마지막 즘엔 너무 궁금해졌다. 


그녀는 왜 울었을까? 우는 소리와 영화 장면을 맞춰 생각해보면, 자연 풍경이 나오는 화면에서는 딱히 울지 않았던 것 같기에 아마도 아는 사람이 영화에 나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그 사연이 너무 궁금했지만, 일요일 밤의 오지랖은 상당히 별로이므로 참았다. 사실은 그냥 낯 가리는 소시민이라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기프실> 시놉시스 

할머니 댁이 있는 기프실 마을이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변해가고 있다. 10가구 남짓 남은 기프실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마을 주민들은 기한 없이 미뤄지는 이주를 앞두고도 뜯겨난 땅에 또다시 삶을 일구고떠나가는 이웃을 배웅하며 함께 생활한다나는 그분들과 섞여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는 기프실의 모습과 황폐해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다그리고 검은 물속으로 잠기는 마을과 마음을 보며 내 안에 숨겨둔 기억을 꺼낸다.
(출처: http://ozifilm.tistory.com/entry/기프실2017 [오지필름])


영화는 영주댐 공사로 인해 수몰될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을이라는 작은 장소, 혹은 공동체에서 살았던 기억이 거의 없는 나는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한 도시에서 15년 정도 살았고, 지금은 이사를 와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기프실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상한 소리지만, 기프실은 '기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몰되는 것이 어울렸고, 완벽한 제목이 됐다. 지긋이 나이가 든 기프실의 마을주민처럼, 한때 시끌벅적한 마을이었던 기프실도 조용히 나이를 먹어갔고 누군가들에 의해 '묻혀야 하는 지역'으로 분류됐다.(이주 대상인 주민들에게 자신이 보상금 500만원을 더 주기 위해 503에게 얼마나 어필했는지 떠들어대는 국회의원이 나온 장면은 개인적으로 명장면 중 하나였다, 웃기면서 경멸스러웠다)  


묻혀야 하는 것, 사라지는 것은 상처다. 상처를 내는 것은 보통 나쁘다. 특히 마을이 수몰되는 것,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굉장히 나쁘게 여겨진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한 마을 할머니들, 공동체를 구성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공동체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하루 아침에 어른들만의 합의로 억지로 시집을 가게 됐다거나). 


"이 영화는 사라지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 잘못된 정치 뿐만 아니라 이런 공동체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보는 사람에게 양가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 독특한 영화다." -관객과의 대화 中

어릴 적 외할머니 손에서 큰 나는 영화의 등장인물로 할머니(특히 엄격하지 않은 외할머니)가 등장하면, 어쩐지 좋으면서도 보는 것이 두렵다.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왠만하면 보지 않고, 보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난 뒤에야 본다. 다만 이번 영화는 주 소재가 할머니가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정말 TMI) 


<기프실>은 2012년부터  테스트 촬영을 시작해서 2018년도에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촬영을 시작하고 2년 정도 한 달에 한번 감독을 기프실에서 2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 중간에 감독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오래 전부터 아파서 요양병원에 계셨다고 함)


할머니의 집을 중심으로 촬영했지만, 할머니 본인이 갑작스레 돌아가셨기에 장례식을 촬영했고, 그 과정에서 감독은 자신이 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프실은 마치 이전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가도 마을의 공동체와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다큐영화가 재미있고 독특한 점은, 감독 본인의 퍼포먼스가 영화 안에 꽤나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엔 감독이 직접 수몰(예정) 지역인 할머니의 집 터에서 흙을 퍼 담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할머니의 집을 기억하고 싶은 감독의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행동이었고, 감독은 이를 통해 '기억'한다는 것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왼쪽이 문창현 감독. 오른쪽에 있는 사회자 분(이름을 모른다)께서 훌륭하게 영화 해석을 해주셔서 그것도 좋았다. "이 영화는 정보들을 구조화하여 쌓아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정서적 리듬'을 가지고 봐야 하는 영화"라는 평을 남겼는데, 굉장히 공감했고 마음에 들었다. 가히 훌륭하시다. 


내가 재미있게 느겼던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감독의 나레이션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장면 등을 포함해 세 번 정도 감독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할머니가 등장했던 꿈에 이야기라던가 또 다른 이야기(지금 생각이 안남)를 하는데, 아무래도 꿈의 이야기여서인지 뭐랄까, 조금 몽환적인 내용이다.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질문을 했다. 그냥 감독에게 나레이션이 들어갔던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다. 나의 생에 첫 GV 질문이었다.(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었다. 내게 칭찬의 박수 짝짝짝) 감독님의 귀한 답변은 편집 없이 그대로 적는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촬영을 못했던 그 즈음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이 영화를 어떻게든 어, 다시금 제가 마음을 담으면서 영화를 만들 수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를 고민하게 됐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전에는 할머니라는 존재는 그렇게 많은 고민의 대상은 아니었는데, 자주 떠올리지도 맛했던 인물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됐고, 떠올린 기억 안에는 좋지 않은 기억들밖에 없더라구요. 할머니라는 존재가 저한테는, 할머니가, 제 아버지 형제가 9형젠데, 손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 어렸을 때에도. 


그러면서 저는 이제 예쁨받고 싶은 손녀였는데, 할머니 무릎에는 항상 손자들만, 이제 할머니 무릎에 앉을 수 있는. 그러면서 저는 할머니한테 조금 관심 밖의 존재였었다, 라는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게 됐고, 그 첫 나레이션의 내용이 그런 거에요.


제가 어렸을 때 생일이 7월달이여서 할머니 댁에서 휴가를 보냈었는데, 할머니 댁에서 생일파티를 했던 그때 할머니는 거기 없었던. 그런 제가 어렸을 때 찍혔던 사진을 각색을 해서 할머니께  좀 관심밖에 있엇던 사람이었다라는 내레이션을 하나 구성을 했고. 


어, 할머니라는 인물을 굉장히 고민을 했어야 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할머니라는 존재 또한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 안에서 요양원에 10년을 계시면서 굉장히 관심밖에 놓여진 인물이 되어갔고, 할머니 죽음이 곧 사라져가는 기프실의 모습이랑 저는 좀 비슷하게 느겨졌었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기프실이라는 마을도 이제 사라져가고 있고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 안에서, 어떻게 보면 약간 소외된 존재로써 사라지셨고 그런 인제 고민들을 여러 방면으로 하다가 보니, 인제 저라는 사람과 할머니, 그리고 기프실이라는 이 세 개의 존재가 다르지 않다라는 마음이 인제 좀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그니까, 으,  내레이션을 구성하는 데 가장 큰 마음이었고, 어, 음, 할머니를 계속 떠올리다 보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제 꿈속에 인제, 에, 할머니가 자주 나타나셨어요. 


빨간 립스틱 바르고, 할머니가 나타나셨었는데, 그때 이제 할머니가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았었는데, 꿈에서 그게 할머니 손을 처음 잡았던 기억인 거에요, 저한테.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잡아본 기억이 없고, 뭐, 어릴적에는 더군다나. 그런 어떤 할머니와 제가 마주했었던 어떤 기억들을 두번째 나레이션으로 좀 녹여냈고.


세번째 나레이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좀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 그런 기억이 있는 할머니를 제가 어떻게 기억하고, 잘, 어, 떠나보낼 수 있을까를, 제 안에서 계속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어,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저한테서 정리가 됐어요. 그래서 할머니를,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할머니를 잘 떠나보내는 제 마음일 수도 있고, 그런 인제 세 가지의 내레이션을 구성으로 제 나름대로 기억, 하는 어떤 방법을 내레이션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했던 질문의 답을 듣고 나서야, 전 타임의 단편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이 많았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됐다. 영화에서도, 영화에 대한 감독의 답변에서도 모호한 것 밖에 느낄 수 없어서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싶어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 이해력이 똥이든가.(이게 더 정답에 가까울 수도)  


금요일 밤에 썼으면서 월요일 오전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너무나 피곤해서 주말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래 목적은 내 질문에 대한 문창현 감독의 답변을 올리는 거였으니, 급하게 마무리 해도 만족스럽다. 그리고 월요일 싫다, 회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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