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가오는 2주년, 이제는 우리가

[퇴사일기 프롤로그]

주말에 일을 할 때는 조금 반항적으로 하는 편인데, 유튜브로 이런저런 노래를 틀어놓은 채로 일을 한다. 

작업 효율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주말의 업무란 그런 것이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답답하게 덥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날씨다. 사진은 제주도에 있는 제주에일 공장. 테스터로 준 맥주엔 제주 감귤 껍질이 들어가서 맥주에서 귤향이 났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한창 메뉴 개발 중이었을 때, 작업자들이 껍질을 벗기고 나면, 감귤 알맹이는 다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껍질만 쓰니까) 부러웠다.



어쨌든 노래를 듣다 보면 사람 마음이 조금 말랑해질 때도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퇴사를 결심하고 난 뒤 마음이 '시원섭'하다. 시원섭섭에서 섭섭이 하나 빠진 것은, 그것은 이미 내가 육 개월 전쯤에 이미 한 번 그만둔다고 한 적이 있어서 그때보단 덜 싱숭생숭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정말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성공한 누군가처럼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는 과정에 제가 있어서 기쁩니다, 스톡옵션을 받게 돼서 더 기쁘군요, 하하'라는 소감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처음 1년은 어리벙벙 일을 배우고, 내가 속한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연했다. 1년이 지나고 나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고, 조직 내부에선 그로 인한 문제들이 분명히 발생하고 있었다. 문제는 개선되지 못한 채, 몇 차례 친했던 동료들이 떠나갔다. 일을 하는 것을 익숙해졌고, 월급에 불만도 없다. 그런데 내겐 기력이 없다.


여기서의 기력이란, 이 일을 계속해도 될 것이라는 확신과 내가 있는 이 곳이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 내 위의 최종 보스는 내가 따를만한 사람이라는 확신 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확신 대신 불안감이나 무기력함만이 가득한 내가 이런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소식과 정보를, 때론 올바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정의나 진리 추구, 사회적 가치 실현 같은 훌륭한 취지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낀다. 


얼마 전 팀장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조만간 직접 대표에게도 전할 예정이다. 이 나이까지 진로 고민을 하고 있을지 10년 전의 나는 몰랐다. 어휴~~한싐아~~~~~!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믿기에 나 자신이 불쌍하다거나 뭐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븅신 같을 뿐) 같은 맥락에서 곪아버린 지금의 내가 속한 회사나 대표를 걱정하거나 동정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나를 포함해 우리는 고칠 기회를 묻어버리고,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넘겨버렸다. 집 나간(이젠 애초에 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리더십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첫'이라는 것은 기록돼야 하고, 마침 나는 일이 아닌 것으로 타자기를 두드리고 싶다. 내 첫 직장 생활은 끝나가기에 퇴사일기는 시작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주말에 일해서 딴짓거리 하고 싶어서다. 주말근무 꺼져

샤로수길 미미청에서 먹었던 마라샹궈, 중화비빔면, 마파두부 덮밥. 마파두부 덮밥이 인상적이었는데, 약간 된장 베이스가 들어간 맛인지 뭐랄까 진하고 고소했다. 다 맥주랑 먹으면 어울리는 요리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디포럼2018을 가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