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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사를 구분 못해서 어쩐지 화가 나는데

[제목 짓는 것이 가장 어려운 퇴사일기 첫 번째]

사람은 화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기 시절에 약간 다혈질 증세(유전인듯하다)를 보였던 나는 여전히 이런저런 일들에 화가 난다. 물론 지금은 청소년기가 아니므로, '나 화났다악~~~~~'이라는 뉘앙스를 쉽게 풍기지 못한다.(청소년기 때도 그러면 안됐지만, 귀여운 틴에이져였으므로 용서가 됐음) 지금은 이전보다 횟수나 정도 면에서 화가 덜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다 그런 것이므로. 다 그런 게 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그렇다. 


가령 보자마자 화가 났던, 아마 출근할 때 봤었던 유진메트로컴의 지하철 광고. 내가 이 광고를 보자마자 화가 났던 이유는 누가 봐도 문구가 거지 같기 때문이다. 저딴걸 쓰고 설마 광고비를 받았나? 왜 무료한 출근시간에 핸드폰을 보고 심심함을 달래려는 가련한 직장인에게 '거북이가 친구 하자 해요'라는 거지 같은 비꼼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뒤에 붙은 'ㅠㅠ' 때문에 더 얄밉게 느껴지고, 또 '...', '^^' 이딴 이모티콘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거북이 목이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사람들이 거북목이 되는 것이 안타까우면 차라리 이런 사진을 보여주란 말이다. 차라리 이게 더 직관적이고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외에도 유진메트로컴의 광고 문구는 정말 그지같은 것들이 많은데,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은 '주위를 둘러보세요~ 인연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라는 것도 있었다. 이때 그림은 아마 하트였고, 배경은 연한 핑크색이었는데, 너무 후져서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유진메트로컴이 연루된 여러 가지 사건이 아니더라도, 광고만 보더라도 그 회사는 정말 후지산 높이만큼 후졌다.

(이 유모어 보다 후지다!\)



이렇듯 나는 예민하진 않지만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화가 나는 사람이다. 물론 정의감이 투철하다거나, 의협심이 강하다거나 특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서가 전혀 아니다. 그냥 성격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게다가 말싸움이나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굉장히 못하는 편이어서,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뒤에서 나와 같은 의견인 사람들과 불평불만을 잘 늘어놓는다. 이렇게 쓰고 나니 유진메트로컴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녔군. 퇴사일기를 가장한 회사 욕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렇다. 


주제에 맞게 퇴사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2년 내내는 아니지만, 적어도 근 1년간 내 마음 속에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회의감이 쌓여갔고, 화가 났고, 결과적으로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이미 퇴사를 결심한 상태인 내가 회사를 삐딱하게 바라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것은 맞다. 그런데 함께 근무했던 다수가 "그 회사는 사람을 쓰고 버리잖아요"라고 말해준 바 있어 뭐 또 그렇게 미친 듯이 틀린 것도 아니다. 


리더가 리더십을 보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일을 미친 듯이 하거나, 직원들이 부딪힌 문제를 잘 경청하고 해결해주거나 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주던가. 리더가 아니라서 이 정도밖엔 생각이 안 난다. 그나마 내가 이걸 생각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선 두 가지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고, 그래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는 부분은, 바로 윗 문단을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회사가 성장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대체 이 회사를 성장시킬 생각은 있는지, 어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계획이 뭔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못 알아 먹었다고 하기엔, 제대로 설명받은 적이 있나 싶기도 하고. 



다시금 이제서야 본론이다. 퇴사를 하진 않았지만, 이런 이유로 점점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마음이 사그라드는 와중에 나는 화가 나는 일들을 마주했다. 이 '화가 나는 일'들은 윗 문단의 이유와는 조금 다른, 굳이 표현하자면 부가적인 이유에 속한다. 


리더는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조직원에게 영향을 끼친다. 나와 일했던 직원들은 회식자리 술에 만취해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거나, 본인이 한 말의 앞뒤가 달라 실수한 직원에게 폭언을 한다거나,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여 강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대꾸한다거나, 남들 앞에서 비꼼을 당하거나 단순히 웃음을 위한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중 일부를 나도 당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그 정도와 횟수에서 굉장히 약한 편이었다.  


나는 공과사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잘 받기도 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들을 보면 화가 났다. 절이 아니라 주지스님이 싫어서 절을 떠나는 중들이 생겨났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직접적으로 위의 일을 당한 적이 없거나 적었고, 상당한 게으름으로 인해 이직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게 내가 이 회사를 2년이나 다닐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내가 입사한 뒤 지난 2년 동안 열명 가까운 이들이 퇴사했다(인턴 포함). 순전히 윗윗 문단에 있는 이유로  퇴사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표가 세상 둘도 없는 소시오패스나 진성 또라이는 아니다. 나보다 경험도, 지식도 많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가 환멸을 느끼는 부분은 겉으론 '수평적인 조직'을 말하지만,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표가 또라이가 아닌 것처럼 직원들 역시 마냥 노답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다들 지금 멀쩡히 다른 회사 잘 다니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때 근무조건이나 네임드는 지금 회사보다 훨 나은 곳들이다.  


당연히 새 직장이 마냥 쉽고, 재밌고, 보람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곳엔 또 다른 새로운 고통이 있다.ㅜㅜ(그 사실을 아는 나는 뒤 없는 퇴직을 택했다 하하) 다만, 내가 "그렇게 지금 다니시는 곳이 힘드시면, 여기(내가 다니는 회사)가 더 나았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100의 10000이 0.0000001초 만에 "당연히 그건 아니죠^^"라고 대답할 뿐이다. 


증맬로 재미있는 모습니다. 한쪽에선 '소통~~~~'을 외치는데, 다른 쪽에선 소통이 안된다고 느껴서 몸을 틀어버린다. 이쯤되면 진짜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일상적 소통이든 업무 진행 과정에서의 소통이든, 진짜 사람이 문제든.


문제가 있다면 한시간 이든 열시간 이든 대화를 하고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 물론 진짜 '대화'라는 전제 하에서. 직원이 할 수 있는 건 터놓든지, 아니면 터놓다가 속이 터져서 터놓길 포기하고 떠나든지다. 중이 무슨 힘이 있냐고. 


오늘 나온 속담과 어울리는 불경의 구절.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머물면 포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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