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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관한 어떤 것

쓰다가 나도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는 늪에 빠져버린 

놀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 쓰고 싶지만 생각하기 귀찮아서 뭐에 대해 써야 할지 모를 때' 일기를 쓴다. 따라서 이 시간에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성의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일기를 쓴다고 해도 어차피 주로 회사 얘기라(=오늘 역시 '에혀↘'했기에) 쓰는 동안 다시금 화가 나거나 노잼일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일기는 쓰지 않는다.  


몇 년 전 겨울 갔었던 알레산드로 멘디니 전시에서 봤던 작품. 배경색도 좋고 표정도 좋아서 사진첩에서 지우지 않고 있다. 알고 보니 배스킨라빈스 포장백 디자인을 한 사람이었다. SPC그룹 디자인 고문을 맡고 있다고 한다. 브런치를 시작한 뒤 시작한 일 중 하나가 글과 함께 어떤 사진을 쓸까 고민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나름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 여기까지 쓰고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그래서 지난밤에 내가 이걸 쓰게 됐는지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튼 생각났던 것들을 써보기로 한다.


일단 이번 글은 내가 지내는 곳의 환경에 대한 것이므로 두 가지를 설명해야 한다. 첫 번째, 내 방은 햇빛이 굉장히 잘 들면서, 방을 건너편이 현관이라 통풍을 해도 별로 시원하지 않다. 최근엔 저녁에 들어가도 내 방의 온도가 좀 높게 느껴진다. 우리 집은 에어컨이 없어서(엄마에게 에어컨=전기세 블랙홀) 선풍기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두 번째, 지난 상반기, 특히 3~4월에 합리적 소비가 많았던 나는 침대 옆에 두는 협탁과 이케아에서 산 조명 같은 램프, 하만카돈 스피커(오라스튜디오2), 카카오메이커스에서 팔았던 UFO 공기청정기 등을 구입했다.

 

예쁘고 영롱하므로 두 장. 스피커를 사고 나서 새로운 취미로 방의 불은 끈 상태에서 움직이는 스피커 조명을 바라보게 됐다. 조그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어쩐지 노트북에 블루투스로 연결했을 때, 가끔 연결은 되어 있다고 하지만, 막상 영상이나 음악을 틀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트북이든 스피커든 기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므로(알려는 의지도 없긴 하다), 원인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블루투스 연결하기 전에 긴장감이 든다.


협탁을 제외하곤, 모두 전자기기이므로, 당연히 전기가 필요하다. 방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가 하나뿐이라 멀티탭을 사용하고 있다. 멀티탭은 4구짜리고, 여기서부터 선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스피커, 노트북 충전기, 휴대폰 충전기, 공기 청정기 충전기(USB로 충전돼서 휴대폰 충전기에 꼽아 놓음), 조명, 최근엔 더워져서 선풍기까지 더하면 내겐 총 6개(조금 부지런하다면 5개)의 콘센트가 필요하다. 여기에 가끔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따라서 멀티탭에 꽂는 플러그가 달라지게 된다. 가령, 기본적으로 가장 오래 꽂혀 있는 것은 스피커 플러그다. 정 급한 경우가 아니면 빼지 않는다. 행여 다칠까 봐. 그렇지만 요즘 같은 날씨엔 어쩔 수 없이 선풍기가 먼저다. 그다음은 조명 플러그. 조명 특성상 시간의 영향을 받으므로, 만약 낮 시간에 콘센트가 모자를 경우가 생기면, 가감 없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결국 남은 자리는 1개, 많아봐야 2개다. 컴퓨터, 적은 자리는 상황과 급한 정도에 따라 핸드폰, 공기 청정기, 보조 배터리에 분배된다. 나는 지금 조명을 켜 놓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공기 청정기를 충전시킴과 동시에 틀어놓고, 노트북으로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노트북의 배터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알람을 받고 공기청정기의 플러그를 빼고 노트북을 충전시켰다. 

 

내 방의 콘센트 주위는 항상 선들이 얽혀 있다. 복잡해서인지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잘 끼기도 한다. 사진엔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여기까지가 현상이고, 이와 관련해서 더 쓰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버려 떠오르지 않는다. 뭐였더라. 근데 돈을 들여서 6구짜리 멀티탭을 샀으면 애초부터 됐을 일이었네. 음 근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또 굳이 그러고 싶진 않다. 조금 귀찮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5분 정도 생각했는데도 다시 생각이 나지 않으므로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4구짜리 멀티탭이라면, 지금 나한테 꼽혀 있는 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일과 관련 없는 글쓰기, 정신 차리(려고 노력하)고 살기 위해 하는 소소한 것(아직까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한데 묶어버렸다)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세 개의 플러그가 꽂혀있던 바 깨달았는데, 나는 4구가 아니가 2구 정도가 적당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도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전원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해버리는 순간부터 부담이 생겨버렸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아닌 모든, 그 어떤 모든 일과 역할들에 대해서. 심지어 덮어놓고 마냥 열심히 한 것도 아니어서 괜히 지치기만 했고, 지금이 됐다.(이 말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봐야 하지만 귀찮으므로, 언젠가로 넘긴다.)


그래도 마음의 평화는 찾아왔다. 덜 우울해져서 글을 쓴 건지, 글을 쓰기로 해서 덜 우울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다. 누가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사람은 행복의(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긍정적인 말) 힘으로도 살지만, 폐허의 힘으로도 산다고 했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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