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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 퇴사 2일 차

[어정쩡하게 쫄아버린 퇴사일기 두 번째]

퇴사가 결정됐다. 


그제 오후께에 팀장과 퇴사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팀장과의 영원한 작별은 아니지만서도, 어쨌든 어제가 공식적인 출근의 마지막 날이었다. 보통 마지막이라 하면 어쩐지 아련함, 아쉬움과 비슷한 감정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쩐지 아련한 풍경. 낙산공원 정상에서 찍었다. 



크게 아련하진 않았지만, 이곳에서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화 중간 중간 팀장과 나는 서로에게 "고생 많았어요"와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두세 번 정도 한 것 같다. 내 경우엔 그 어느 때의 어느 말보다 진심이었다. 무능하고 성에 차지 않았을 나를 가르치고, 감정적이지만 생각을 제대로 말로 내뱉지 못한 채 씩씩대기만 하던 나를 상대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에야 잘 정리돼서 이렇게 말하지, 이 말도 현장에서는 잘 정리가 안돼서 "힘드셨죠"라고 정도만 말했다. 어버버 어버버 


참고로 대표에게서는 그 어떤 말이나 연락이 없었는데, 마지막까지 '에휴'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부분이다. 대표에게 고마운 것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난 저러지 말아야지' 방면의 것들이어서 굳이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팀장과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한 일은 지인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리는 것이었다. 귀찮아서 나보다 먼저 퇴사했던 퇴사 선배들과 지인 몇 명에게만 퇴사 소식을 알렸다. 그만둘까 말까 고민만 하면서 행동은 하지 않았던 나에게 조언과 응원을 해주었던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축하한다는 전화를 해주기도 하고, 여튼 다들 좋아해 줬다. 한 가지 찔리는 바가 있다면 아직 엄마에게는 퇴사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엄마에게는 이야기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분명한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걱정시키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고,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엄마는 나의 퇴사를 환영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크고, 다음 계획은 나도 모르겠어서 안심시킬 자신도 없기 때문 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장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실직한 가장이 된 느낌이다. 




그런데 아직 나는 완전히 퇴사 처리된 것은 아니다. 제목에 있는 완전 앞에 (불)이 붙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게 남은 휴가를 다 털어버려야 하기에 표면적으로 아직까진 '휴가 중'이다. 


또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퇴사 처리된 이후에도 회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이달부터 적용되는 사항이고, 언제까지일지 당장 다음 달에도 계약이 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여튼 적어도 이달까지는 내가 하던 일을 하게 됐다. 따라서 나는 아예 돈을 벌지 않는 완전한 무직의 상태가 아니긴 하다. 


이에 대해 친한 지인 중 하나는 '반만 그만두시다니 정말 너 답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놀리기도 했다. 한창 회사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불만이 많았을 땐 마치 뒤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굴다가, 정작 어정쩡한 결론을 내버린 내가 쫄보라는 것이다. 비웃음 당했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쫄보인 것은 사실이므로.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나를 쫄보라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차라리 나약한 직장인이라 불러다오. 쫄보인 나도 나지만, 퇴사를 고민하게 된 가장 큰 배경에는 회사가(도?) 있었다. 정직원 계약을 하던 날, 호기롭게 응답받았던 회사와 나의 성장이 어느 순간부터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몇 번의 '다시 시작해보자', '제대로 만들어보자', '확실히 재정비하자'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이렇게 부들부들 하지만 나는 쫄보가 맞다.(쫄보라도 부들부들할 순 있다) 퇴사 이후에 마냥 행복해하면서 퇴사 라이프를 즐길 자신이 없으니 마치 보험과 같은 제안을 선택해버렸다. 이걸 자신감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쫄보라서 자신감이 없는 것인지, 자신감이 없어서 쫄보인지 모르겠다. 


쫄보는 신중하지 않다. 자기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자꾸 확인하고 싶어 한다. 퇴사에 대해 고민으로 지인들과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진즉에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받은 지인들은 항상 나 대신 "넌 뭘 해도 잘할 것"이라고 나를 격려해준다. 그 말을 들은 쫄보는 잠시나마 안심을 한다. '내가 완전 쓰레기는 아니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는 여기에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생산적인 일(=이직 준비)을 하면 되는데, 의심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인들은 나를 좋아하니까, 혹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우니까 저래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 실은 그것이 맞다. 하하 나를 싫어하거나 상당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아예 안 꺼낸다. 재작년 초 난생처음 사주팔자를 보러 간 자리에서 "넌 사주가 게으르며, 뭘 하든 게으름이 문제"라는 말을 듣고 "정말 용하군"이라고 느낀 뒤 다시 갈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든 퇴사 후 생활에 대한 의심, 불안과 같은 것들이 선천적인 게으름과 맞물려 나는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돼버린다. 여기에, 연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찾아오는 극심한 무기력 시즌에는 그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아 이젠 정말 끝을 내야 할 때, 지금 끝내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못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일이 있었다. 윗 문단과 같은 상황이 몇 차례나 반복되고 난 어느 날이었다. 대략 3주 전이었는데, 그날도 카톡으로 지인에게 징징대고 있었다. 


내 일은 매달마다 업무가 바쁜 시기가 비슷한 편으로, 그 때엔 생활리듬이 약간 엉망이 된다. 징징대던 날은 그 시기가 끝난 이후였다. '몸이 편해지니 퇴사고 뭐고 걍 가만히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말을 그대로 지인에게 전했다. 그랬더니 지인이 '그 마음땜에 그만두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받는 조언자와 피조언자. 왜 두 번 죽고 싶었는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내 기억에 저런 식으로 말해준 사람은 그 지인이 유일했다. 지인의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저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만둬야 했다.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걍 가만히' 있는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뭐 가진 것도 없는 내가 할 줄 아는 것까지 없으면 안 된다는 확신 정도는 있다.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회사 입장에서도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위기를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 짬 겨우 있는 무기력자보다 짬 없는 열정맨이 나을 것이다. 여기에 때마침 무기력 시즌도 끝나가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묘하게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퇴사 2일 차를 맞고 있다. 사실 이 일기도 첫날에 올리려고 했는데, 잠이 드는 바람에 완성하지도 못했다. 퇴사 1일 차의 기분이 어땠냐면, 20살이 되던 날이나 혹은 1월 1일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별생각 없고,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물론 어떤 식이든 큰 변화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팀장의 프리랜서 계약 제안이다. 백수지만 돈이 필요하다. 쫄보 특성상 모아놓은 돈을 마구 팡팡 쓰지도 못한다, 불안하니까. 괜히 일일이 잔고 생각하느니 버는 게 낫다 싶다. 


지금 마음 같아선 최소한 11월까지 놀고 싶다. 어차피 나는 일을 해야 하고, 직장인의 삶은 고되므로 미리미리 쉬어두는 것이다. 운동을 하고, 진로 고민을 하고(정말 대체 언제까지?), 심리 상담을 좀 받고, 길지 않은 여행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무엇보다 가끔이라도 좋고, 어떤 무엇에 대해서든 읽고 써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요새 새로 하게 된 게임이 있어서 피시방에 자주 간다. 이상한 점은 그 게임을 5시간 정도 하다 보면 구토가 나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느낌은 예전에 오버워치를 잠깐 했을 적에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너무 입체적이라서 그런가. 사진은 피시방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길에 배고파서 삼각김밥을 사 먹었는데 그만 밥풀을 흘리고 만 사진. 다행스럽게도 알짜배기가 들어있는 가운데 부분이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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