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 들어가며 >
제 브런치 시리즈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현재 남태평양에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 외교관은 아니고,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으로서, 우리나라와 남태평양 국가들 간의 해양 분야 협력을 위해 남태평양의 중심국가인 피지에 파견되어 근무 중입니다.
나우루 출장은, 해양외교관으로서 제 첫 해외출장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우루는 한때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부유했던 자원 부국이었지만, 자원 고갈 이후 빠르게 몰락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서, 나우루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로운 ‘또 하나의 역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1940년대, 나우루에 수백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 나우루 노인의 노래 >
"이봐, 너 어디 갔었어?"
"한국인 캠프에 담배 사러 갔었지."
나우루의 역사를 연구하던 학자가 한 현지 노인에게서 들었다는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랜 세월 구전되어 온 일종의 민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놀라운 건, 인구 1만 명 남짓한 작은 섬나라, 대한민국에서 6천km 떨어진 이 섬에서 ‘한국인 캠프’에 대한 노래가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한 여인이 건넨 논문 >
이 노래는 나우루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도중에 한 여성이 건넨 논문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 여성은 자신을 '주나우루 독일 명예영사(Honorary Consul)'로 소개하면서, 한국 측에서 흥미로워할 만한 자료가 있다며 논문 한 편을 제게 건넸습니다.
"잊혀진 나우루의 한국인 노동자들(The Forgotten Korean Labourers on Nauru)"
그 논문은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논문 속에는, 매우 구체적인 기록들이 담겨있었습니다.
< 500명의 한국인, 나우루에서 발견되다 >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호주군은 일본군이 주둔해있던 나우루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에 의해 동원된 약 500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호주군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일본군의 일원, 즉 전쟁포로로 취급했고, 방침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호주는 전쟁 이후 농산물 수요가 세계적으로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에 따라 나우루가 가진 풍부한 인산염의 가치와,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주목했습니다.
< 다시 시작된 노동, 그리고 저항 >
이에 따라, 한국인 노동자들은 고국이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호주 정부의 결정에 따라 인산염 채취를 위한 노동에 다시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호주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중국 노동자들과 유사한 임금을 주었습니다. 호주 노동자 평균 주급의 약 10분의 1정도 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았다고 하니, 당시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 일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본국 송환이 늦어짐에 따라 작업을 중단하는 등 저항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호주군 또한 한국인 노동자들을 전쟁 포로로 여기고, 그들의 본국 송환을 주장하였습니다.
< 그리던 고국으로, 그러나... >
결국 호주 정부는 1946년 4월, 5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본국 송환 조치를 내립니다.
호주 정부가 작성한 명부 중 일부 기록이 남아있는데, 한국인 이름에 대한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처음 작성된 명부는 매우 부정확했지만, 수 차례 수정을 통해 "장하권, 이보식, 조근식"과 같은 한국식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노동의 대가로 받은 호주 통화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통화들이 본국 송환 당시 명부에 기록되어 맬버른으로 옮겨졌습니다.
호주군은 이 돈을 한국의 연합국 최고사령부(SCAP)를 통해 개인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청했고,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이 돈이 주인에게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마치며 >
나우루를 떠나는 날,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섬은 고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섬 어딘가에, 한때 정든 고향을 떠나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묵직해졌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 포로'와 '노동자' 사이 어딘가에 존재했고, 해방 이후에도 조국의 품에 곧장 안기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록 몇 줄, 불완전한 이름, 회수 여부조차 모호한 급여 내역으로만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나우루 출장은 업무를 넘어, 잊고 있었던 하나의 역사적 진실과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