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첫째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아내가 집에서 첫째를 간호하고 저만 둘째를 데리고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을 뵈었습니다.
다음 주도 3일 연휴니 그냥 집에서 같이 보내자고 했는데, 아내는 다 같이 집에 있다가는 모두 독감에 걸릴 수도 있으니 저랑 둘째라도 내려가라고 하더군요. 어른들 드릴 선물도 미리 사놔서 바리바리 싸서 내려갔습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 저녁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여동생이 9시가 다 되어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어왔습니다. 여동생의 딸, 즉 제 조카가 화면에 나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요. 지금 내려갈게요."라고 애교를 부리더군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설마 내려오겠어? 했는데, 부모님은 원래 내려오기로 하면 그 시간에 내려와서 자정 즈음 도착한다며 아마 곧 출발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다.
부모님 예상대로 9시 반쯤 되어서 동생에게 출발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한 2주 전부터 동생이 계속 연락 와서 시부모님이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가셨다고, 본인도 고향에 갈 건데 부모님 댁이 좁으니 큰 독채펜션이나 리조트를 잡아서 같이 지내자고 계속 연락이 오던 게 생각났습니다.
숙소에 쓰는 돈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우신 아버지 성격도 잘 알거니와, 명절 당일 집안 남자들은 무조건 새벽 6시에 일어나 성묘를 가는 게 아버지 철칙이었기에 그냥 집에서 보내자고 동생에게 얘기했습니다. 또 아버지께서는 성묘가 끝난 후 요양병원에 계시는 할머니 면회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이기에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명절이 다가올 때까지 수 차례 카톡을 보내면서 "여긴 어때?", "여기 숙소 괜찮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아버지도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결국 동생은 숙소 예약을 포기했죠.
그러고 보면 동생은 참 저와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저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헐렁헐렁하게 살아왔다면, 동생은 철두철미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학창 시절이야 서로 그런 가치관이 부딪힐 일이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서로 가정을 꾸리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할 행사가 많아지니 이리저리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많이 부딪힙니다. 저는 꼬치꼬치 하나하나 따지는 동생이 못마땅하고, 동생은 뭐든 대충대충 하고 넘어가려는 제가 못마땅합니다. 서로 못마땅하니 충돌도 잦았죠. 서로 말로 상처를 준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도 동생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어쩌다 보니 가까운 동네에 살게 되고, 동생의 딸, 즉 제 조카가 저희 애들과 자주 어울려 놀다 보니 동생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동생이 주위 사람들을 정말 잘 챙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가끔 속 깊은 얘기를 하다 보니 동생이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저를 편애한다고 많이 느꼈던지라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부모님께 정말 성심성의껏 잘하는데, 무심한 성격의 아들을 부모님이 더 믿고 의지하는 것도 상처가 되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제가 더 부모님의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한 집에서 동생네 가족과 저와 둘째, 그리고 부모님이 같이 밤을 보내고, 다음날 성묘를 마치고 나서 다 함께 바닷가로 떠났습니다. 푸른 가을 하늘과 바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아이들과 어울려 모래놀이를 하고 조개를 잡으면서 오후를 보냈습니다. 동생네 부부와 조카 사진을 찍어주면서 새삼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맞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 핏줄로 이어진 인연이라는 사실도 새삼 다가왔습니다.
저는 연휴 3일째 되는 날 집에 돌아왔고, 동생은 하루 더 고향에 머무르고 올라왔습니다. 잘 올라왔냐고 물어봤더니 오빠가 부모님께 해주기로 했던 알뜰폰 신청을 내버려 두고 가서 본인이 다 하고 왔노라고, 그러느라고 차가 더 밀리는 시간에 출발해서 오래 걸렸다고 짜증스러운 카톡을 보냈습니다. 저도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다음에 내가 해드리려고 했어, 너보고 하라고 내가 시키던?'라는 문장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쳐내려 가다가 다 지우고, 다른 문장을 보냈습니다.
'아이고, 고생했네. 미안하다. 이번에 이리저리 시간이 안 나서 다음에 봬면 내가 다시 해드리려고 했어. 네가 하느라 고생했겠네. 조금 있다가 동생이 '그래도 덕분에 즐거운 명절 보냈어.'라고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성격이 서로 정말 맞지 않는 오누이지만, 그래도 같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란, 특별한 인연입니다. 그런 특별한 인연끼리 굳이 서로 날을 세워가며 상처를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 맞으면 좀 어떻습니까? 울컥하는 순간만 잘 참으면 될 일입니다. 서로 생각하고 위한다는 마음을 잘 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