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우린 언제부터 서로 어색해졌을까요?

아버지와의 등산, 그리고 셀카

by 안온재관리소장

올해 봄부터 약 10 킬로그램을 감량하면서 등산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이른 새벽 시간, 새소리만 들리는 숲길을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무척 좋았죠.


주말마다 오전 여섯 시가 되면 일어나서 집 근처 산들을 하나 둘 올랐습니다.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는 휴가 기간 중 최소한 3번 이상 산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세웠었습니다.


첫 번째 등산은 아이들과 간단히 2박 3일 여행을 간 곳에서 혼자 새벽에 올랐다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등산은 아버지와 함께 했습니다. 이번 여름휴가 중간에는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갔거든요.(모두 한동네 사십니다.)


처음부터 아버지와 산에 오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고향집에 도착한 첫날에 내일 아침 일찍 집 근처 산을 오를 거라고 말했더니 멀리서 들으시던 아버지께서 "나도 같이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그래요."라고 얼른 말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죠. 아버지와 10분 이상 단 둘이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질 않았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그 나이대 대부분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무척 무뚝뚝하십니다. 제 학창 시절에도 오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죠.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와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저녁은 대부분 야근 중, 또는 회식 중이었지요. 사실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신 적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새벽 두 시에 들어오시면 일찍 들어오신 거였으니, 말 다 했죠.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버지가 회사 생활 하시면서 워낙 술을 많이 드시고 다녀서 그렇지, 저희가 어렸을 때는 이리저리 좋은 곳 많이 데리고 다니시고 참 다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사 생활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시더니 점점 더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기가 IMF 시기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주변의 동료들이 하나 둘 직장에서 짐을 싸서 떠나게 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도 불안감을 항상 지니고 사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엔 그저 무심한 아버지라고 느꼈었죠,


제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께서 위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수술이 끝나고 나서야 어머니께 전화로 소식을 듣고 3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병원에 갔죠. 그때 저를 보신 아버지의 첫마디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왜 왔냐?"


그땐 참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괜찮으시냐, 얼마나 진행이 되었던 거냐, 몇 마디 나눈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나야 했습니다. 더 나눌 대화가 없었거든요. 곁에 있던 어머니도 아버지 눈치 보느라 저랑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죠.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께서는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매우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 후 10년 가까이 돼 가는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어찌나 큰 충격을 받으셨던지 그 좋아하시던 술과 담배를 일순간에 끊으셨습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진대, 아들에게는 별 일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는 식으로 말씀하셨으니, 아버지의 마음은 참 복잡 미묘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여름휴가에는 무려 이틀 연속 아버지와 고향집 뒷산을 올랐습니다. 왕복 3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인데,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에는 몇 마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마주 앉아서 하는 대화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나누는 대화가 더 편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이어오고 계시는 직장 생활에서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는지, 앞으로 어떻게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시는지 많은 얘기를 이틀 만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 올라서는 괜스레 아버지와 셀카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둘이 셀카를 남겼습니다. 같이 사진 한번 찍자는 제안에 "남사스럽게 뭘 그런 걸 찍냐?"라는 핀잔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포즈를 취하셨습니다. 어깨동무조차 없는 어색한 사진이지만, 마음이 뭔가 흐뭇해지는 사진이었습니다.




이런 여름휴가를 보내고 왔다 하더라도, 어색했던 아버지와의 사이가 금세 가까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뭔가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가끔 아버지와 전국의 명산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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