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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ug 13. 2020

그 남자가 날 기억하게 하는 방법(feat. 현남친)

꽤나 성공적인 선물

나는 선물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도 어떤 물건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그 사람한테 너무 잘 어울리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쉽게 선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선물하는 재미가 살짝 줄었긴 하지만, 그래도 선물은 여전히 재밌는 취미다. 선물을 하면서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고 싶다거나, 또 다른 대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기대를 하면 나중에 속상한 것은 무조건 내가 된다. 그래서 정말 단순히 어떤 선물과 어떤 사람이 매치되면 이뤄지는 행동 같은 느낌으로 선물을 한다. 물론 내 선물을 통해 그 사람이 좀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은 가진다 :) 




최근 내가 잊고 있던 한 선물의 소식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2017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현 남자친구를 알게 됐다. 당시 음향을 처음 배우는 시기였던 나는 부산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로 일하는 남자친구의 스튜디오에 구경을 가게 됐다. 그와 그리 친하진 않았던 탓에 스튜디오로 놀러 가는 것이 멋쩍기도 했고 선물이 분위기를 풀어줬음 하는 마음으로 작은 선물을 사들고 갔다. 그때 나는 디퓨저를 굉장히 좋아했고 사람마다 취향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맡기에 좋은 향으로 구매해서 가져갔다.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스튜디오 구경도 잘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로 조금은 더 편해졌지만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내가 오스트리아로 교환학생을 떠나버려 1년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2019년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서 이전에 함께 먹었던 뒷고기도 같이 먹고 좋은 오빠-동생 사이로 지냈다. 그러다 어째 저째(자세한 내용은 그도 부끄러울 테니 비밀로)하여 사귀게 되고 그의 스튜디오로 다시 놀러 가 내가 준 디퓨저를 보게 됐다. 사실 난 그 디퓨저를 다시 보고 왜 다 쓴 디퓨저를 여기 뒀냐고 버리려고만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선물한 그 디퓨저였다. 



그는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나 대신 그 디퓨저와 함께 일하고 생활을 했었다.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튜디오를 들어올 때마다 그 향이 먼저 그를 반겨 내가 간혹 생각나기도 했다더라. 나를 생각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물한 건 아니지만 그가 나를 종종 떠올렸다 하니 꽤나 성공적인 선물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사람에서 향기를 머금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빈 통도 쉽게 못 버리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앞으로는 나도 저 디퓨저를 보면서 추억과 행복을 동시에 떠올릴 것 같다. 




내가 잊고 있었던 선물이 이렇게 돌아와 나에게 또 다른 행복을 주니 선물하기는 더더욱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작은 것으로도 서로 생각할 수 있고 짧게나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게도 만드니 참 좋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내가 선물한 것들이 다른 이에게, 그리고 크게 돌아서 나에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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