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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민지 Feb 05. 2022

나의 얼레벌레 서비스기획 이직기.txt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나 어렵고 무서운 줄 알았다면 자라가 토끼 간을 가지러 육지까지 나왔을까?

이것은 기획의 기자도 모르면서 얼떨결에 직무를 마케터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바꿔버린 용감무쌍한 나의 우당탕탕 전직 스토리다.

사실 이직한 지 2년이 다돼가는데 이제서야 이직기를 작성하는 이유는, 이제서야 새삼

'이렇게나 아는 게 없었던 내가 얼레벌레 이직에 성공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직무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이직을 고려하는 분이 있다면... 내 글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길 바라며 2년 만에 brunch를 켜본ㄷr..☆

2년 전의 나 : 예? 합격이요? 제가요? (어리둥절)


발단.

사실 나는 이전 직장에서 완전한 마케터도 완전한 기획자도 아닌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었다.  

입사는 마케터로 했지만 거기에 점점 기획업무를 곁들인...(사실 기획, 디자인, 운영, 마케팅 전반을 다 담당하는 짬뽕 인력에 가까웠다.) 새삼 나 자신.. 가성비 넘치는 신입이었네...(탄식)  

그래서일까. 개발자와 머리를 싸매고 얼레벌레 서비스를 만들어가긴 했지만 앞구르기 뒷구르기 오백 번 하면서 봐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 서비스 개발부터 자잘한 버그 수정까지 동네 단골 철물점에 수리 맡기듯이 "어이 김씨 이것 좀 해보슈" 하고 무작정 들이밀면서도, 늘 이런 식으로 컴을 하는 게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왕 서비스 기획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제대로 해보자 라는 (큰일 날) 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전개

자 그럼 이제 서비스 기획자가 되려면 어떻게 이직 준비를 하면 될까?   

일단 퇴사부터 했다. (..ㅎ..) 그리고 나서 패스트 캠퍼스에서 <웹/앱 서비스기획 올인원 패키지> 강의를 들었다. '라떼는 말이야'하는 꼰대는 되고 싶지 않지만 2년 전에 비해 요즘은 서비스기획 관련 컨퍼런스나 강의, 책 등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정말 치킨 몇 마리 값 아껴서 아무거나 골라 들으면 된다.

강의를 추천하는 이유는 하나다. 서비스 기획은 인턴이나 신입을 잘 뽑지 않기 때문에 기획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프로세스로 서비스가 만들어지는지 몸소 체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로 대략적인 기획자의 역할, 업무 프로세스를 간접 체험해보기, 기존에 나와있는 서비스 역기획 해보기, 디스크립션 작성해보기  그리고 '아 씨 이 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헛된 희망 품어보기 를 추천한다.

여타 직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실전에서 몸빵으로 부딪혀서 알아야 하는 것들까지 주니어에게 바라진 않기 때문에 도메인 지식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보다는 다른 걸 강조했던 것 같다. (몰라..일단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건 없지만 뽑아는 주라 회사놈들아!!

내가 자소서 및 포트폴리오에 담았던 것은 다음 4가지이다.

1. 커뮤니케이션 능력  

2. 시장 및 유저 리서치 경험

3. 프로덕트 제작 경험

4. 스타트업에서 (심하게) 구른 경험      

이 4가지의 공통점은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스타트업에서 기술자들을 위한 채용 플랫폼을 직접 기획부터 배포, 운영까지 담당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이 과정을 자소서에 적었지만, 만약 그 경험이 없었다면 코드스테이츠 같은 곳에서 부트캠프라도 신청해서 일련의 과정을 체험해봤을 것 같다.      


* 내가 알았던 것 : 프로덕트 하나를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의 시장, 고객, 문제가 무엇인 지 정의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솔루션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여러 가설들을 빠르게 검증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pm은 why와 what을 정의하고 개발자/디자이너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함께 how를 찾아간다.    

* 내가 몰랐던 것 : api, DB구조, 프로그래밍 언어, GIT, SQL 등 모든 개발 지식..ㅎ..

 


위기

사실 모든 면접 과정이 나에게는 위기였다. 몇 번의 빡센 면접을 치르는 동안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고 내가 왜 기획을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에이 개발자처럼 코딩 테스트를 보는 것도 아닌데 뭐!' 하고 호기롭게 나갔던 pm 면접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애자일'의 사전적 정의를 글로만 공부한 것과 '애자일 하게 일해본 경험이 있는 것' 은 역시 달랐다.

단순히 pm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하고 저는 그 역량이 뛰어난 짱짱맨입니다!라고 우길게 아니라 프로젝트 실무자와 일정 때문에 갈등을 빚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 스킬이 있는지 구체적인 경험을 말해야 한다. 디스크립션은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기획한 기능이 배포된 후 유저의 앱 체류 시간이 급감한 것을 발견했을 때 어떤 과정을 통해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경험이 없다면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강의나 책, 컨퍼런스, 현업자들의 brunch, 커리어리 글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간접 경험과 어느 정도의 개발 기초 지식을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면접을 보다가 대표님한테 "맡고 싶은 도메인이요? 어..아무거나요..ㅎ.." "근데 pm과 po가 무슨 차이죠?"라고 되묻기까지 했던 것 같다. ('아.. 에반데..' 하시며 눈을 질끈 감으셨을 대표님 얼굴 아직도 선명...)  

면접 준비할 시간이 없는데 나 같은 추태를 부리고 싶지 않다면 유명한 2종 세트 book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은 꼭 미리 읽고 가길 바란다.     


면접 보는 내내 나의 상태


절정

합격만 하면 끝일까? 일단 이 영상을 보고 오길 바란다.

https://youtu.be/2D1LsFPkcFs 

여러 채용공고를 보면 알 수 있듯 pm이 가져야 하는 능력은 너무나도 많다.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리더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조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능력

개발과 ui/ux 지식

동시에 여러 이슈나 프로젝트를 f/u할 수 있는 능력

it 서비스에 대한 관심

일정 관리 능력

문서 작성 능력

보살 같은 마음씨

그런데 이 능력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생기느냐? 절레절레 전래동화...

위의 역량을 모두 갖춘 pm이 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길고 험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솔직히 대표님, 팀장님과 1on1 미팅에서 주니어 pm으로써의 고민(pm 못해먹겠다는 얘기)을 털어놓을 때마다 두 분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말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다 보면, 경험해보다보면, 프로젝트를 한 바퀴 돌려보면 다 알게 될 거라는 얘기처럼 개발자가 하는 소리를 못 알아듣겠으면 1시간짜리 회의를 전부 녹음해서 3시간씩 다시 들으며 단어 하나하나를 구글링 해서 찾아보거나 생판 모르는 개발자 멱살을 잡고 토이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어떻게든 직무 능력을 쌓으려고 노력했더니 조금씩 기획자로써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 가서 서비스 기획자라고 말하는 게 조금은 덜 머쓱한 수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크고 뿌듯하다.


결말

시시하지만 '얼레벌레 주니어 기획자의 수난시대'는 아직도 -ing'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 "혼란하다 혼란해."를 외치며 1인분의 몫을 해내려 이리저리 뒷수습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직무를 바꾼 게 정말 잘한 짓일까에 대한 대답은 아직도 확신이 없고 가끔은 '나 따위가 정말 pm을 할 수 있을까' 자책하며 깡소주를 들이붓고 싶은 날도 많다. 그러나 2년 전과 확연히 다른 점은 같은 데미지를 입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맷집과 담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pm에게 실패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인지하고 거기에서 lesson learned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하루일 때가 기분이 더 이상해지는 수준에 이르렀음)

어쨌든 결론은 세상 물정 모르고 무작정 덤벼드는 게 때로는 더 나을 때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게 pm이다? s...t...a...y...)

이렇게 어마어마한 게 숨어있을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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