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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Feb 04. 2024

리더의 결을 처음 발견한 그때

컴퓨터 동아리 회장 만장일치로 추대받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살면서 리더 자질이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 글 속에 묻어 나오는 엄마의 무책임한 언사 그대로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다고?라는 생각이 늘 무의식 저 아래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돕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요즈음 나의 화두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니까... 


눈칫밥으로 살아온 터라,  제대로 실행 못하는 내가 미워서 중도에 그만두려 했던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다시 이어 가는 중이다. 이어서 나다움도 찾아보는 중이다. 명상하듯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해 가장 인색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후배에게는 거하게 밥 한 번 사는 것도 잘하는데, 나에게 거하게 쏴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서 특장점을 찾아봤다.


문득 떠오른 몇 개의 기억이 있다.

또 "레드썬"을 호출한다.


대학 3학년, 행정학과에는 과네 동아리가 2개가 있었다. 

하나는 독서동아리 <토우회>인데, 책 읽는다고 하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가 달라붙던 끝자락의 시대였다. 그때 내 가방에는 <태백산맥>이 들어있었다. 내용이 꽤나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었는데 어느새 나에게는 운동권의 꼬리표가 붙는다. 뭐 아무렴 어떠냐 싶지만, 학생회 선거나 여타 학과 내 행사에서 후배를 대하는 선배들의 이중적 모습과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싫어서 나왔더니 동기와 후배들이 다 나왔단다. 그것까지는 몰랐다가 나중에 선배들의 질책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넌 나가려면 조용히 나가면 될 것을 왜 애들을 끌고 나가냐?

"지들 선택이죠. 내가 나오란다고 나올 애들도 아닐걸요? 내가 그렇게 인지도가 높지는 않을 텐데요? 나 나간 거 모를 텐데..."


다른 동아리는 컴퓨터 동아리다. 우리 가족 중 일인이 컴퓨터를 구입했고, 덩달아 나도 컴퓨터에 관심이 생겨서 들어갔다. 사실 그냥 친목으로 유지되던 곳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동아리를 개설한 선배들이 입영하게 되고 다음 학년인 여학우들이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릇 선배라 함은 후배들 밥도 술도 사줘야 하던 시절이라 통금까지 있던 나는 방장은 하지 못한다고 고사했다. 그리고 내 동기는 자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가 진행되고 꽤 높은 비율로 방장이 되어 버렸다.

그냥 어영부영 일 년 보내면 되는데, 방장으로 선출된 후 묘한 책임감이 불타오른다. 


방송반과 같은 연합동아리는 군기라는 것도 꽤 센 편이었고, 뭔가 전통스러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일반 동아리원의 입장이었다면 구석에 숨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할 성향인데, 막상 내 이름 옆에 "장"을 붙이니 사업계획이라는 것도 세워야 할 것 같고, 커리큘럼도 짜야할 것만 같다. 이 파트는 같이 선거에 참여한 동기(여학우)에게 교육부장을 맡겨두었다. 


첫 번째로 진행한 것은 오리엔테이션이다. 일단 후배들이 거의 남학우이다 보니 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듯했다. 상상해 보면 말이지. 나는 아담하기 그지없는 키에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으니 후배들에게 쉽게 보일 것만 같다는 걱정이 토우회에서도 안 생기던 투쟁의식을 불태웠다.


<협동과 단결>을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했다. 

B가 A의 무릎에, C가 B의 무릎에 앉는 식으로 원형을 만든다. 한 명이라도 무너지면 그 원은 균형이 어긋나고 결국 무너지는 것이 내용이다. 한바퀴 돌면서 균형을 흐트려본다. 다행히도 잘 버텨낸다.

다음은 5분의 시간 동안 명상의 시간을 준 후, 모두가 팔을 모아 한 명을 하늘로 높이 들어준다. 그때 들어 올려진 사람은 4년간의 학교생활동안의 목표, 혹은 인생목표를 하늘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것을 소리 높여 외친다. 때가 되어 대학생이 된 것이 아닌, 각자의 목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몇 가지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한 후 우리들의 동아리방으로 모여서 소감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반응이 꽤 좋았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죽도록 달려야 하지도 않았고, 악을 써야 하지도 않았고, 뭔가 뭉치면 큰 힘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의 인생 목표를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았단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리더가 앞에 있는 작고 아담한 선배라는 사실이 좋단다.


자식들. 저녁은 삼겹살이라니 아부라니..라고 말했지만 내심 기뻤다. 나름 머리 쥐어짜면서 만들었던 기획인데, 저렇게 답해주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학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서 2학년을 꽤 굴렸다. 바로 아래 2학년 후배 녀석들에게 무척 감동했다. 이 녀석들은 평소에는 호칭만 선배지 내가 지들 후배인 것처럼 편하게 대하는 녀석들이라 혹시나 반발할 까(뺀질거리기가 우주 대마왕이던 녀석들이다)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의리는 지켜준다. 


'그래 니들이 뽑았으니 니들이 맞춰줘야지'


마지막으로 나에게서 리더의 자질을 발견한 것은 내가 아니라 대구에서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알게 된 어떤 언니로부터다.

"OO아 너는 리더형이야."

"언니. 그건 아니어요. 내가 얼마나 소심한데..."

"아냐, 넌 아무리 못해도 중간리더는 해야 하는 성향이야. 그러니까 너를 잘 이끌어 봐"

좋은 말씀 해주시나 보다 치부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 것은 살아오면서 자주 떠올랐다.


영상 편집자에서 프로듀서가 되었던 것도, 컴퓨터 교육 회사에서 팀장을 했던 것도 그 언니가 말했던 그 자질이 내게 있었다고 자각하게 되었다.


굳이 이 말을 하려는 것은 내게 말해주고 싶어서다.

"너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재능도 능력도 때가 되면 무르익고, 세상에 나오게 될 텐데 일부러 억누르면 필요할 때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돼.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꿈을 꺼내기 시작했잖아. 그동안의 누름이 지금의 너의 출발을 더디게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네가 가진 타고난 능력의 양만큼 하고 싶은 거 신나게 해 보자~"


인정하기 차마 민망했던 것들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이렇게 출발하는 거다. 

현실의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마음의 나이는 시대와 노화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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