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현금이 없어도 페이로 하면 됩니다
"네이버 페이로 결제해도 되나요?"
"네 됩니다."
"아까 말씀해 주시지..."
대화 내용으로만 봐도 살짝 꼰대스럽다고 해야 할까 싶어 눈치가 보인다. 요즘 나의 생각이다.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그리고 화장용품 등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사건들이 외출할 때마다 생긴다.
오늘 있었던 따끈따끈한 일이다.
소포를 보내야 해서 인근 편의점으로 갔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해 둔 예약번호를 입력하여 송장을 프린트받아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카드가 든 지갑이 주머니에 없는 것이다. 아뿔싸!
"혹시 계좌이체 할 수 있을까요?"
"안 되는데요."
"혹시 직원분 개인에게 입금해 드리고 직원분이 현금을 제게 주시는 것은 어려울까요?"
"안 돼요."
나의 요청 또한 억측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궁하면 통할 수 있으니 어쩌면 그에게 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현금을 융통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지만 답변은 거절로 돌아왔다. 그럴 수 있다. 이 행위가 다소 오해를 만들 수도 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지갑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카드 지갑을 챙겨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문득 네이버 페이와 같은 걸로 계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즘 네이버페이를 주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편의점 직원에게 네이버페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한다. 조금 아쉬움에 아까 말씀해 주시지라고 볼멘소리를 내뱉어 본다. 직원은 원래 안 하시는 건 줄 알았다고 답변을 돌려준다.(그에게 할 말은 아니니 불만은 사실 없는 게 맞다)
카드페이는 그리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신용카드 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결국 두 번의 왕복 발걸음은 그냥 오늘 만보 걷기의 일부로 마음을 달래 두었다.
문득 나는 디지털문해를 담당하고 있는 스마트폰강사인데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응용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다음 스마트폰 수업 때 이 에피소드를 시니어수강생분들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올 수 있었다.
스마트폰 교재를 만들면서 네이버페이와 같은 내용도 교재에 수록하고 있다. 사실 네이버페이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수업은 하면서 사용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삼성페이, 엘지페이, 애플페이는 통신사나 단말기가 바뀌면 서로 연동이 안 되는 것을 겪은 후부터는 아예 사용을 멈췄다. 그리고 습관처럼 카드를 꺼내고 직접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는 온라인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등록은 해두었지만 계산을 하는 상황에서는 막상 사용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온라인에서먼 주로 사용했다.
두 번째 이유는 건망증 때문이다.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당장 기억이 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났었는데, 요즘은 아예 기억조차 안 난다. 늘 두던 자리에 카드지갑과 현금지갑을 같이 두고 거기에서만 꺼낸다. 같은 이유로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려고 멤버십 가입을 해둔 사실도 잊어버린다.
필자도 어느덧 나이 앞자리가 중년이라는 카테고리에 담겨 있다. 지하철을 타면 내리는 곳을 까먹기 일쑤다. 순간 기억이 증발하는 날도 있다. 친구와 대화하는 도중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자주 쓰던 기능도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한다.
총총한 기억이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한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슬퍼하고 한탄해 본 적도 부지기수다. 주변에 슬그머니 나의 증상을 말했더니 다들 겪고 있는 거란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지 대부분 비슷하다고 동감한다. 노화의 시작이며, 앞으로 겪어나갈 현재와 미래인 것이다.
부모님이 TV리모컨 작동법이 서툴러서 매번 전화를 할 때마다 짜증을 냈고, 왜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어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나이가 되어 보지 못했기에 모르는 상황이고 약해져 가는 부모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부모님이란 슈퍼히어로인데 영웅의 노쇠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디지털기기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있고 태어나보니 그런 세상인 지금의 20-30대는 이런 우리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느리게 걸음과 점차 어눌해져 가는 말투를 나조차 무심히 넘겼지만 지금 그런 세대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선배들도, 우리도 조금은 억울하다.
80년대에 처음 퍼스털컴퓨터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하고 90년대 중반에 PC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세상을 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꽤 비싼 요금을 부담해야 했기에 모든 사람이 접하기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90년대 후반부터 통신요금이 종량화 하면서 가정 내에서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09년 11월 혹은 2010년이 되어서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하여 정보를 찾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자세한 근거는 생략합니다. 대략적인 시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요점은 지금이 2024년이니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0년 전후라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기가 3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수요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니 지금의 60대 이상 시니어에게는 몇 년 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원자폭탄급의 급변화를 맞이하게 된 상황일 것이다.
사실상 나에게도 꽤 따라가기 벅차기도 했다. 번아웃이었는지 공황이었는지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비슷한 증상을 3년 남짓 겪었다. 지금에서야 그때가 그런 상황이었구나 싶다. 물어보기도 겁나고, 뭘 만지기도 무서운 기기들이 내 손바닥 안에 있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일은 더 많이 겪을 테니,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생을 조금 더 살았지만 디지털 왕초보이신 선배님들에게는 두려움 없는 길을 알려드리고, 머리가 맑고 이해가 빠른 후배님들이 우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서 조금은 속도를 늦춰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늘 네이버페이로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두 번 걸음 한 디지털문해, 스마트폰 활용 강사의 일상이야기를 내어놓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