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동네에는 미국의 코이카 평화봉사단(피스코), 일본의 코이카 자이카 단원들도 활동했다. 내 윗기수 선배들 임기가 종료된 후에는 코이카 단원의 추가 파견이 없어서 한국인 단원은 나 혼자였다. 덕분에 피스코, 자이카 단원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어느 날 피스코 단원인 Peter랑 세계지리에 대해 대화하다가 피가 끓어오른 적이 있다. 세계 지리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각자 가보았거나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 도중 'EAST SEA'라는 표현을 썼는데 Peter가 바로 알아듣질 못했다. 구글맵을 켜서 지도를 보여주자 '아~ 일본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Peter에게 나도 모르게 눈에 불을 켜고 대답했다.
"일본해 아니고 동해!!!!!!"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당황한 Peter. 너무 흥분했나? 사실 나도 살짝 당황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한국에서 이에 관해 민감한 건 알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일본해'라고 말해야 알아듣는다고 설명해 줬다. 한국인, 일본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사실 별로 관심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Peter의 선배인 Sam네 집에 놀러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보고 'SEA OF JAPAN'은 틀린 표현이라고, 'EAST SEA'라고 정정해 준 적이 있다. Sam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기관에 있는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동해가 'SEA OF JAPAN' 일본해로 표기 되어있다. 프놈펜에 볼일이 있어 나갔을 때 서점에서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동해가 'SEA OF JAPAN' 일본해로 표기 되어있다.
캄보디아의 많은 학생들이 세계 지리에 대해 잘 모른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 베트남, 라오스 조차도 지도에서 찾지 못한다. 캄보디아 교과목에는 세계 지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창 세계 지도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다른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봤다. 그 학교는 프레이벵 시내에, 그것도 바로 교육청 옆에 위치하기에 살짝 기대를 했는데 하얀 백지의 순수한 눈망울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외국인 선생님이다. 보건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긴 하지만 외국인 선생님한테 교육을 받는 만큼 더 넓은 세상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계 지도와 국기를 이용한 수업을 계획했다. 그리고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되어 있는 지도를 이용해 수업했다. 지도는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영어약자로서 1999년 1월 인터넷상에서 전 세계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사이버 외교사절단)에서 지원받았다.
캄보디아에는 일본 봉사단원도 많이 있다. 함께 어울려 지내는 만큼 한, 일 양 국가 간 민감한 사항들은 언급을 피한다. 아이들에게 일본이 나쁘다고 가르칠 수도 없다. 또한 수업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세계에 여러 나라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기에 동해에 관한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다. 대신 반크에서 지원받은 세계 지도를 곳곳에 붙여 놓았으니 아이들이 오며가며보며 EAST SEA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담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저 때 어떻게 했었어야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이카 단원 CHIEMI랑 독도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CHIEMI는 '독도'에 관한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국제기구에서 판단해 줄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캄보디아어로도 영어로도 그 무거운 주제에 관해 내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 외에 한국어로도 표현할 내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해외여행, 해외출장, 어학연수, 국제캠프, 국제자원봉사 등을 계기로 전 세계로 떠나거나, 해외 펜팔 등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친구를 사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내 고장과 대한민국의 꿈을 담은 한국홍보자료 꿈날개를 지원한다. 이 자료들은 반크 홈페이지에 들어가 "21세기 광개토태왕 꿈 날개 프로젝트"에 신청하여 받을 수 있다. 이런 훌륭한 자료가 있다는 걸 한국에서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걸 한창 캄보디아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알았다.(늦게라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느린 인터넷으로 캄보디아에서 신청하고, 동생에게 국제 택배를 부탁해서 힘들게 구했다. 이 글을 보시는, 해외 출국을 앞두고 있고, 현지인들과 활발한 교류 예정이신 분이라면 미리미리 신청해서 준비해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