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까마득한 그 날의 그에게

마음 같지 않은 세상, 마음 같은 취미 하나

by 구어령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가 물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을까요?"

"뭐하고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

"뭐... 내가 하고 싶은 거겠죠"

"넌 하고 싶은 게 뭐야?"

"..."


술이나 마시자고 잔을 들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두려웠다. 꼰대로 보이는 것보다, 내 말이 틀렸을까 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술과 함께 삼키고 끝날 쓸모없는 이야기가 될까 봐.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까마득했던 후배는 까마득한 선배가 됐고 난 이제 반 백 살이 목전이다.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나는 과연 그 질문에 잘 답하며 살았을까. 오늘의 나는 틀리지 않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여전히 틀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전히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젠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동안 나름의 답으로 꽤 멀리 걸어왔고 적어도 나에게는 맞았음이 증명된 셈이니까.


나는 대기업도 중기업도 아닌 소기업 직장인이다. 소기업 직장인은 선천적으로 작은 혹은 아주 큰 사회적 열등감을 갖고 사회로 나온다. 재택근무는 딴 세상 이야기이고 사표를 내도 대기업 직장인의 사표처럼 이슈가 되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는 명함은 같지만 그 안의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다른 까닭이다.


그런 나의 태생 탓에 모든 이야기는 그곳, 그리고 그곳 사람들을 향한다. 그래서 가끔은 '요즘도 이런 회사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취미가 답이다."


하루하루 마음이 널뛰는, 그렇지만 사표는 사치인, 그래도 재미있게 살고는 싶은데 당장은 직장생활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어때서 그래


'직장인'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주목할 단어는 '규칙'이다. 규칙은 나와 상대방의 동의하에 만들어진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규칙은 규칙이 아니다. 내가 동의했고, 회사가 동의했기 때문에 직장인이 된 것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 규칙을 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규칙을 깨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 더 나은 생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규칙 안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오늘 직장인인 이유는 그저 그것뿐이다.


나는 왜 이런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이런 고민이 들 때면 꼭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어떤 과정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이다.


생각해보면, 다 이유가 있다. 열심히 했지만 운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알면서도 정말 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날씨를 바꿀 수 없듯, 운은 내 능력의 영역이 아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은, 그때는 그것 말고도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늘 우리 삶의 최선이다. 이것밖에 못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오늘이 된 것이다. 그래서 회사와 합의하여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가 될 때까지'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기로 한 것뿐이다.


가끔은 내가 못나 보일지도 모른다. 나쁜 마음이 아니다. 건강한 돌아봄이고 고민이다. 걷기 위해 한 발은 늘 뒤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고민에만 빠져있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늘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몹쓸 말은 하지 말자. 질문과 고민은 오늘이 아닌 내일의 나를 향하면 된다.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이 불만족스러운데 즐거운 내일이 찾아올 리 없다.'라는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처럼, '오늘이 당신의 최선의 날이다.' 역시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제 그 '팩트'를 받아들일 때이다.

그래야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있다.

그래야 '나를 위한 즐거움'을 찾아 떠날 수 있다.


왜 취미일까?


"취미가 뭐예요?"


언제 들어도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이나 소개팅 자리에서 주로 듣는 질문이고, 그래서 '내 취미를 뭐라고 해야 할까?'라는 맥락 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취미는 온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한 행위이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질문을 받아야만 내 취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그나마도 질문이 끝나면 다시 떠올리지 않는다. 남들은 그렇게 관심 많은 내 취미에 정작 나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무관심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학교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기까지 단 한순간도 '나의 즐거움'이 중요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직장인의 취미는 중요하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볼 '규칙적인 일상과 월급'이 생겼으니까.


"내 취미는 무엇일까?"


이제는 남이 아닌, 내가 나에게 질문해 보자. 자기소개서에 쓰던 그런 취미 말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보자. 마음 같지 않은 직장생활은 그대로 두고, 마음 같이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즐거움을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분명 '노력'이란 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는 '연애의 노력'은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니까. '직장인 취미론'은 그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주 한잔에, 이야기 하나


오래전 후배와 마주 앉았던 술자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와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고 한다. 그 친구가 이야기하고, 나는 답한다. 오늘 그에게 있었던 일, 그가 했던 생각들을 이야기하면, 거기에 대한 내 생각, 바람, 희망을 덧붙여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모든 이야기들은 기승전 '취미'를 향한다. 그 사이 나의 즐거움을 찾는 '노력'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을, 소주 한 병에 7잔이니까, 과음은 하지 않도록, 7가지 작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직장 / 취미를 찾기 전, 직장생활 바로보기

2. 취미 / 직장인에게 취미란 무엇일까?

3. 관계 / 사람 사이의 관계 다시 보기

4. 시간 / 시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

5. 돈 / 취미 하나에도 돈 탓은 그만

6. 마음 / 내 마음속 잡상인 내쫓기

7. 내일 / 즐거운 오늘 심은 데, 즐거운 내일 난다


그리고 몇 가지 취미를 소개한다. 영화감상이나 운동 같은 취미는 아니다. '이런 게 취미야?'라는 것들 위주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도 취미가 될 수 있음을, 어쩌면 나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취향도 취미가 될 수 있겠다는 힌트를 주고 싶어서이다.


"취미나 하나 갖고 살면 되지 뭘."


이 한 마디면 끝날 것에 참 많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서이다. "끓는 물에 데쳐 양념 적당히 넣고 버무리면 돼요."같은 막막한 이야기처럼 들릴까 봐. 그래서 재료의 성질은 어떻고 얼마나 끓여야 하고 양념은 어떻게 만들고 적당히가 얼마만큼 인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이 마음이 모든 꼰대들의 속마음 일수도 있겠다. 나는 '아직'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이미'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이 그렇다. 가능한 하나하나 짚어가며 꼼꼼히 알려주고 싶다. 단 한 줄의 이야기라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장생활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쓰면 쓸수록, '이미'가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이, 여전히 그렇다.


두렵다. 정말 한 줄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쓸모없는 얘기들만 늘어놓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거창해 보이는 밑그림을 그린 것도 그런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즐겁다. 이 글이 나에게는 하나의 '취미'이니까. 글을 써 내려가는 것만 놓고 보면 두렵기는커녕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다.


두 마음 사이에서, 단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힌트가 되기를 바라며, 똘똘똘똘똘- 첫 잔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