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린 벤자민이 될 수 없으니까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든다. 나도 지금 낡아가는 중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아, 내가 국민학교 때 이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다녔었는데...'하고. 지금 내 회사가 있는 곳은 어릴 적 내가 살던 곳과 가깝다. 그래서 이곳의 옛날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다. 지하철역은커녕, 5층 짜리 건물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 동네. 지금은 모든 것이 높고 크고 넓게 새로 지어져 그때 그 이비인후과 자리가 어디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반백 년을 살았으니 이 동네도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건물이 조금 낡았다 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보도블록이 좀 낡아 보이면 그 해 어김없이 교체된다. 버스정류장에는 쉘터가 생겨 에어컨과 히터가 나오고, 고개 숙이고 핸드폰을 봐도 바닥에 켜지는 신호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낡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젊어진다. 시간은 오직 나만 낡게 만든다.
내가 사라져도 이 동네, 이 도시는 계속되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내 후세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될 테니 다행이고, 나도 오래오래 살며 어디까지 진화하는지 보고 싶기도 하다.
다만, 내 친구들 중에 나만 수능 망치고 재수하는 것 같은, 뭘 해도 낡지 않는 무언가 속에서 나만 낡아가는 기분에 약간의 무력감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새삼스럽게시리.
이 영화가 생각났다. 내가 저 여주인공이라면, 이 도시는 벤자민쯤 될까? 아니, 벤자민이 먼저 떠났으니 내가 벤자민이 되어야 하는 걸까. 자신의 시간만 달리 가고 있으니 그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는 젊어지고 나는 낡아가고 있으니 그 또한 딱 맞지는 않겠다.
어차피 우린 벤자민이 될 수 없으니까,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을 테니까, 다만 마지막은 이 영화의 결말처럼 평온했으면 좋겠다. 아직 반백 년 더 남았으니, 더 예쁘게 낡아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