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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공책 Apr 04. 2023

반짝이는 거

배경음악 - 김필, 다시 사랑한다면

 작가의 서랍에 쌓여있는 2019년과 20년의 글들을 열심히 발굴하는 중이다.

아프고 지독했던 사랑의 언어들이 나를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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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또 한 번 꿈에 나왔어. 이번 꿈은 유독 오래가더라. 너는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하잖아. 반지를 끼는 손가락이 정해져 있고, 목걸이는 반드시 42cm여야 하고. 팔찌는 무조건 한쪽 팔에만 끼고, 내가 아무리 싫다 말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끼는 피어싱이 두 개 있고. 너는 무섭게도 확고한 취향을 가졌잖아. 그런 네가 언젠가 너의 보관함에서 소중히 하나 골라 내게 주었던 게 길냥이 사료 후원 후 받은 뱃지였다는 게 참 우습기도 해. 그렇게 문득, 너는 반짝이는 사람이라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해. 그래서일까, 너와 무대에서 빛날 때는 그 싫은 모양의 피어싱도 조금은 예뻤네.



 나는 반짝이는 게 필요하지 않았어. 내 삶에는 항상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거든. 한동안은 연인이었지. 나는 걔가, 내가 빛이라서 반짝거린다 생각했어. 그래서 그 새끼의 반짝거림을 맹목적으로 지켜냈지. 그 반짝임을 지켜내며 나를 지킨다고 생각했어. 결국엔 그게 내 빛을 키울 것이라는 어쭙잖은 생각으로 끝내 내 어둠을 외면했어. 닦아주기만 하면 누구보다 빛날 내 안의 보석이 있는지도 모르고 난 그 새끼를 지켰어. 그 새끼는 그게 나를 망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새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그 새끼는 시발 그래서 폭군이 되었던 걸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알지만 가끔 이렇게 어쩔 수가 없네.



 그 새끼에게서 벗어나고 나는 비로소 자유로운 동시에 때때로 무력했어. 더 이상 내가 밝힐 존재가 없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말이야. 그런 내 삶에 가로등 같은 네가 있었어. 너는 항상 빛이 났어. 너는 자체로 반짝거리는 사람이라서 내가 밝힐 필요가 없었어.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동시에 무력했어. 무슨 괴상한 컴플렉스였나 몰라. 너를 좋아할 때, 나는 네 앞에만 서면 작아졌어. 네가 나를 작게 만들어서가 아니었어. 너처럼 빛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나 자신이 싫어서였어.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너무 잘 아는 네가 가끔은 무서워서였어. 누구에게나 빛이고 싶었던 나는 이미 빛나던 네가 버거웠던 것 같아. 그런 네가 너무나 뻔뻔히, “넌 ^내가^ 옆에 둔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했던 밤이 기억나. 그때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너의 반짝임을 볼 수 있는 건 내가 반짝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 느리게 알았어. 느리게 알았지만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이 깨달음을 위해 나 참 많이 아팠잖아. 너를 붙잡고 참, 많이도 울고 많이도 화냈잖아. 너는 어쩜 내가 알아차릴 때까지 가만히 있었잖아. 너와 아니면 할 수 없을 거라고 울던 밤을 그냥 함께 지새워 줬잖아. 절대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잖아. 이런 너의 기다림을 알아차렸을 때,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 너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맘껏 반짝이는 나를 너무 사랑해.



 올해는 여행만 가면 반짝이는 것들을 사모았어. 이제 나를 밝힐 때가 되었거든.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빛을 줘야 한다는 걸 알았거든. 아, 네 것도 조금 샀어. 팔찌 두 개가 세트로 들어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반짝여서 내 취향이 아니더라고. 그건 까마귀인 네 거야. 이렇게 말하니 되게 쓰레기 처분 같지만 넌 이런 식의 선물을 더 좋아하는 인간이니까. 아 근데 네 카드로 샀지... 아무튼. 그리고 목걸이도 하나 샀어. 그놈의 “쇄골에 딱 걸리는 길이 42cm” 타령 때문에 너한텐 목걸이 선물 안 하지만 이건 그냥 가죽 줄로 묶는 형식이더라고. 비슷한 디자인이 여러 개라 고민하다가 그냥 너 준다는 명목 하에 하나 더 사고 싫다 하면 내가 두 개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샀어.



 아 꿈에 네가 나왔다고 했잖아. 그냥 한밤중에 너를 보러 달려가서, 네게 주려던 반짝이는 것들을 아주 수다스럽게 전해주는 꿈이었어. 네가 반짝여서 주는 거야, 덧붙였으려나? 나는 구태여 덧붙이는 인간이니까 분명 그랬겠지. 이 별거 아닌 꿈이 진짜 오래가더라. 내 의지로 떨어져 있는 시간인데 오늘 이 빌어먹을 꿈 때문에 유독 힘들더라. 네가 당장 모든 걸 때려치우고 서울로 와서 함께 하는 비현실적인 꿈도 아니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불가능한 꿈도 아니었는데.



 다시 사랑한다면이라는 노래 알아? 원곡은 모르고 김필이 부른 버전만 아는데 좋더라고. 가사는 좀 진부해. 그런데,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만 만들자는 부분이 계속 맴돌아. 진짜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런가 봐. 사랑 절대 맘처럼 안 되는 거니까. 가벼운 추억? 그런 건 없는 것만 같아. 가벼운 사람이 있는 거겠지. 내가 기억하는 너는 다 무거워. 너와의 시간들 중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게 없어. 그 무게만큼이나 소중해. 우리의 평범했던 밤 산책을 난 아직도 곱씹거든. 그래서 너를 꾸는 꿈은, 다 소중한 꿈이야. 비현실적인 꿈도, 불가능한 꿈도, 그저 대화뿐인 꿈도. 그래서 뭐 이런 암것도 아닌 꿈에 이렇게 힘들어하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아, 눈물 나게 반짝이는 나의 락스타야. 우리 다시 만나면 있는 힘껏 껴안고 말해줄게. 넌 내가 옆에 둔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야. 영광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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