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이즈 에브리웨어

바르셀로나 1

by 최열음

바르셀로나 첫날. 3개월 여행의 시작. 힘들게 당도한 땅인 만큼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자들이 가득한 이곳은 마치 예전의 명동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에 여유가 가득하다. 며칠을 왔든 몇 주를 왔든, 이곳엔 대체로 노는 사람들과 그 노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사람들뿐이다.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아저씨 말처럼, 외국은 확실히 타인의 시선에 무감한 것 같다. 무슨 옷을 입든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오로지 자기의 것 같달까. 자신의 삶을 손에 쥔 사람들은 이런 표정인가. 그게 신기하면서도 가끔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자유 같다고도 생각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 여행이기 때문에 구글맵에 몇 개 찍어둔 스팟들을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바르셀로나 시내는 크지 않아서 걸어 다닐 만하다. 그러다 고딕 지구를 가게 됐다. 둘 다 고딕 양식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고, 입구나 출구가 있는 개념도 아니라서 ’이것이 고딕인가…?‘ 추측만 하다 왔다. 무지해도 그냥 신난다.

한국에 서식하는 비둘기가 다 여기서 왔나. 차원이 다르게 많다. 여기는 비둘기 밥 주는 아줌마들도 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얘들도 더 잘 사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를 주워 먹다가 혐오받기 바쁜 애들인데. 광장이나 공원엔 사람보다 비둘기가 더 많다.


골목골목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핸드폰을 잘 내려놓지 못한다. 낮에는 햇빛이 무척 강했는데 오후가 되니 자꾸 추워진다. 노상 카페들이나 밥집에도 앉고 싶은데 춥다... 스타벅스를 들어와 보니 내부는 덥고…


그래도 익숙한 정서에 기대고 싶어서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사람이 무자비하게 많은데도 파트너들이 싫은 표정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편해 보였다. 음료 주문을 받으면 이름을 물어보는데, 친구의 이름을 말했더니 한 번에 오케이 한다. 외국 발음이라 쉽지 않을 텐데... 이제는 내가 일했던 기억도 희미해진다. 이렇게 금방 잊을 거면서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옷을 사지 않으려는 계획이 첫날에 바로 물거품이 됐다. 자라가 너무 많고 저렴하기도 해서 안 그래도 넘치는 짐에 하나를 더 얹게 됐다. 그건 바로 나시 원피스.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디자인인데 결국은 이렇게 갖는구나. 취향과 욕구는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


친구의 사촌오빠가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덕에 자주 조언을 들었다. 누군가 위협하거나 하면 절대 쫄지 말고 당당하게 걸으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자라가 어딨는지 물어보려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무서워서 먼 산만 바라보는 나. 익스큐즈미- 가 들리면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그런데 그 다음은, 웨얼 이즈 자라? 그치만 자라는 너무 많다. 자라 이즈 에브리웨어.


선글라스를 생전 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꽤 자주 쓰게 된다. 저렴한 걸로 두 개 사 왔는데 아주 만족한다. 여행자답고 백수답다. 배가 나와도 살이 삐져나와도 상관이 없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건 동양인에게 꽤 매력적인 일이다.

신혼여행을 온 커플이 많다. 자금은 비교적 넉넉한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분주한 사람들. 커플들끼리 걷고 있는 걸 보자니 남자친구가 몹시 그립다. 그와 함께 걸었다면 우리는 아주 딱 붙어 있었을 텐데. 3개월 동안 오빠를 줄곧 생각하면서 걸을 것 같다.


한국인을 가끔 본다. 특히 스타벅스에서만 세 팀을 만났다. 한, 중, 일을 얼굴이나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주 틀렸다. 한국인이다, 하고 보면 중국말이 들린다. 벌써 감을 잃다니. 그래도 진짜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반가워한다. 어디서 왔는지 묻는 질문에 잠깐 당황하다가, 청주라고 말한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다양한 의미가 내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로밍을 위해 많은 유심 가게를 방문했다. 여행지라 그런지 아주 많은 유심샵이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친절한 유심 보이를 만났다. 그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근처 맛집까지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13유로 정도의 레스토랑을 추천했다. 한국의 서가앤쿡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첫 유럽 식사를 했다. 아주 유럽다운…

이곳을 걷다가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나라를 떠난 사람들, 고향을 떠나 타지에 머무는 사람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조금 느낀다. 익숙한 무엇도 없는 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지. 하물며 냄새조차 한국과 다른 이곳에서 우리는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결국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직은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바르셀로나를 보낸다.